롯데의 2세 경영 체제 전환은 주요 그룹 중 가장 늦었다. 대부분 그룹은 이미 2세 또는 3세 체제로 전환했지만 롯데는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고령의 나이(89)에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면서 1세 경영을 유지해왔다.
이번 인사에서도 신격호 회장은 `명예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총괄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경영 현안을 직접 챙겨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신동빈 회장을 그룹 사령탑으로 전격 승진시킨 것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오랫동안 고심해온 후계 구도를 확정지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롯데의 후계 구도는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일본롯데는 장남 신동주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맡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업 규모가 일본의 10배나 되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애정이 더 컸던 만큼 `경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현재 롯데쇼핑의 지분 구조만 봐도 그렇다. 롯데쇼핑 지분은 신동주 부회장이 14.58%, 신동빈 회장 14.59%, 호텔롯데 9.58%, 신격호 총괄회장이 1.01%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호텔롯데 지분 구조가 관건이 되겠지만 이번 인사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한국롯데의 후계자`로 신동빈 회장의 손을 확실히 들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부터였다. 195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77년 아오야마가쿠인대(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생활했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으며 1981년 노무라증권에 입사해 1982년부터 1988년까지 6년간 영국 런던지점에서 근무했다. 일본롯데에서 일한 것은 1988년부터 2년뿐이었다. 그는 1997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고 2004년 정책본부 본부장을 거쳐 한국롯데 입사 21년 만에 회장에 취임하게 됐다.
신 회장은 한동안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가 어눌해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을 펼치지 않은 탓이다.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을 그대로 빼닮은 그는 신문이나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2006년 2월 한국과 런던증시에 롯데쇼핑을 동시 상장하면서 그는 은둔 이미지를 말끔히 벗었다. 상장은 롯데가 `글로벌 경영`이라는 화두를 펼칠 수 있는 `돈줄`을 마련한 일대 사건이었다. 그는 이를 진두지휘해 3조5000억원을 마련했다. 신 회장에 대한 주변 평가는 `겸손하다` `반듯하다` `탈(脫)권위적이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한때는 신 회장 경영 능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인 롯데닷컴, 롯데홈쇼핑 초기 실적이 부진했고 롯데백화점의 러시아 시장 진출도 성공적으로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정책본부장을 맡으며 서서히 두각을 드러냈고 지난해부터 그룹 안팎에서 그를 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해 총매출 61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을 뿐 아니라 그가 적극 추진한 해외사업 역시 전년의 3배가 넘는 성과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롯데그룹은 재계 서열 5위를 확실히 굳혔다. 신 회장의 미래비전은 `글로벌 시장`에 있다. 2009년 수립한 `2018 아시아 톱10 글로벌 기업`은 사실상 그가 그린 그림이다.
[심윤희 기자 / 정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