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설립한 지 6개월 만에 현대자동차와 콜라보
12분 59초짜리 단편 영화 ‘밤낚시’가 5주차 연장 상영을 이어간다. 배우 손석구가 출연뿐 아니라 직접 설립한 제작사 (주)스태넘에서 제작자로서 처음 선보인 영화다. 단편으로선 이례적으로 극장 개봉을 한 데다, 웬만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1만 명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적 관객 4만 명을 돌파했다. 1,000원에 보는 10분짜리 단편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연유를 그에게 물었다.
현대자동차 쪽에서 ‘자동차의 시선’으로 새롭고 혁신적인 콘텐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연출 제안이 왔고, 어떤 포맷이든 상관없다고 해서, 나에게 가장 친숙한 ‘영화’를 떠올렸다. 연기, 제작, 연출 모두 다 도맡기보다 배우와 제작으로 참여하고 감독은 직접 섭외를 해 보고 싶어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던 문병곤 감독을 제안했다. 장편을 함께 준비 중이어서 손발을 맞춰볼 좋은 기회였다.
기존의 광고 느낌 대신, 어떻게 하면 독립적인 콘텐츠로 만들까가 가장 고민이었다. 과연 현대자동차가 우리가 구상하는 콘텐츠를 이해해 줄까 반신반의했는데,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보니 나만큼이나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고,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도도 높았다. 단편이라는 형식, 자동차 콘텐츠를 영화로 찍는 것도 신선해 했다. 현대자동차가 기획과 투자를, 우리가 제작과 연출을 한 셈이다. 굉장히 색다르고 즐거운 시도였다.
Q. 공간이나 설정 등에서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어떻게 구상했나?
영화의 설정은 전적으로 문병곤 감독의 아이디어다. 자동차에 내장된 카메라로 찍었지만 단순한 광고물이 아닌 영화라는 점을 고려해 촬영 기법에도 신경 썼다. 경찰들이 범죄 현장이나 작전을 수행할 때 쓰는 보디캠 느낌을 활용하면, 영화적으로 더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12분 59초의 영상이지만, 어디선가 발견된 잃어버린 또는 잊혀진 풋티지(footage, 사건 자료 화면) 같은 콘셉트를 가져와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카메라도 7개나 사용을 해야 되서, 편집이 들어간 보디캠 풋티지의 느낌으로 구현하기 위해 톤앤무드를 맞췄다. 단편 영화다 보니, 인서트나 클로징 개념이 없기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 콘셉트이기도 했다.
↑ 영화 ‘밤낚시’ 스틸컷 |
할리우드 관계자들과 셀럽이 많이 참석해 ‘밤낚시’에 대한 피드백을 줬다. 질문도 많이 해주고 그들 역시 이 작품 같은 포맷에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도 출연한 세계적인 카체이싱 액션의 대가인 성강 배우는 “자동차를 활용해서 이런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신선하고 멋지다”라고 했다. 너무나 감명받았고 아직도 잊지 못할 순간이다.
손석구 “10분 짜리 스낵 무비로 극장 오는 재미 다시 느꼈으면”
내가 직접 제작과 함께 홍보마케팅 회의에 참여를 하면서 끝까지 고민하고 요구했던 것이 우리 콘셉트가 관객에게 단번에 직관적으로 가 닿을 수 있는 단어였다. 오랜 고심 끝에 ‘스낵무비’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간 우리가 봐 왔던 단편 영화와 다르게, 1,000원만 내고 극장에서 손쉽게 보고, 그게 상업적 가치를 지닌 숏폼 콘텐츠 영화라는 점이 ‘스낵무비’와 절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문학적이고 작가적인 주장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와는 다르게 시간은 짧지만 대중 친화적인, 상업 영화로서의 기능을 하는 숏폼 영화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처음부터 그걸 기획한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우리의 첫 번째 시작점이 된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는 저는 이미 거뒀다고 생각한다. 10분짜리 영화를 극장에서 1,000원에 보는 것 자체가 영화계에 활력소가 되고, 숏폼 영화가 극장 상영을 할 수 있는 도전 과제를 이룬 것 자체가 큰 성과 아닐까.
Q. 직접 제작사를 설립하고 제작자로서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됐다.
스스로 제작할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올 1월 ㈜스태넘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했는데, 6월에 하나의 작품이 나오게 될 수 있는 건 굉장히 행운이다. 어떻게 보면 배우 크레딧과 입지가 어느 정도 작용했겠으나 많이 배우게 된 계기였다. 편집, 믹싱, 제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경험해야 제작사 대표라는 크레딧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스태프들이 야간 작업 등 제 스케줄을 많이 배려해줬고 덕분에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제작과 창작 전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많이 배웠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일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여러 가지 관계를 만들어가야 다들 작업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니, 한편으로 좀 인간적으로도 성숙하게 된 계기였다.
Q. 이번 영화엔 자동차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자동차의 시선으로 촬영하는 방식은 어떤 건가.
자동차에 내장된 카메라로 인물을 잡아주고 배경과 사물을 찍으려면 앵글이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떤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것이 큰 제약이다. 그러나 제약이 클수록 그 안에서 더 큰 자유가 온다고 늘 생각한다. 그 제약을 극복했을 때 오는 자유는 굉장히 크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아이디어를 내야 되기 때문에 참신하고 신선한 게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촬영의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이 참신한 소재가 나왔다고 생각을 한다.
그게 없었으면 보디캠 콘셉트의, 미지의 외계 생명체를 잡는 요원이라는 설정이 안 나왔을 것 같다. 난 늘 이런 걸 긍정적 한계라고 표현한다. 카메라 자동차의 시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 한계점과 제약이기에 현대자동차의 제안이 반가웠고, ‘영화’라는 플랫폼을 흔쾌히 받아들여준 것도 아티스트와 기업 간의 올바른 협업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 영화 ‘밤낚시’ 스틸컷 |
‘극장 가는 것=재미’ 만드는 게 목표
친하다 보니 촬영 전부터 많은 의견이 오갔다.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캐릭터가 잘 잡혀 있어야 했다. 정체 불명의 외국에서 온 전쟁 베테랑 전사 같기도 하고 웨스턴 카우보이 같기도 한 느낌으로 캐릭터를 만들었고, 전반부에 일부러 미스터리나 서스펜스적인 측면도 넣었다. 후반부 액션이 나오기 전에는 초반 캐릭터가 모호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공통 의견이었다.
하여 의상이나 대사에도 절제미를 보여주려 했고, 글로벌 관객들을 위해 대사도 최소화했다. 비주얼 측면에서는 독특한 캐릭터와 액션뿐 아니라, 주인공이 싸우는 매개체도 동물이나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로 지정했다. 이런 지점들을 영화의 재미를 위한 요소로 발전시키며, 캐릭터 디벨롭에 대해 많이 얘기를 나눴다.
기존에 없었던 액션을 보여주는 것에 가장 시간과 공을 들였다. 낚싯대로 하는 액션은 들어본 적이 없고, 게다가 그 낚싯대 끝에는 뭐가 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1:1로 맞서는 대결 액션이 아니라 위로도 날아가고 부딪히기도 하고 무언가를 뚫고 지나가는 액션 동선을 택했다. 자동차를 중간에 두고 할 수 있는 액션들은 다 한 것 같다. CG가 무척 중요했는데, 제작에 참여한 마켄프로덕션 대표가 인연이 있는 독일 CG팀과 협업하게 됐다. 사운드 믹싱은 영국에서, 그리고 CG는 독일에서 진행했다.
Q. 거의 1인극으로 극을 이끌며 거기에 더해 연극적인 매력도 돋보인다. 어떻게 준비한 건가?
외국에서 처음으로 연기와 공연 생활을 시작을 했는데, 그때 제가 처음에 도전했던 공연 네다섯 개가 모두 다 1인극이었다. 그래서 ‘밤낚시’의 포맷이 낯설지 않았다. 연기를 하는 사람이 몇 명 나오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는 보통 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의 뒤에 서서 그 사람의 시선으로 그 상황들을 겪어 나가는 게 대부분의 영화니까 웬만한 건 다 1인극 형식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극장에서 보는 2시간 전후의 상업 장편 영화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극장도 이제 변화해야 하는 과도기다. 전통적 포맷은 유지하되, 제2, 제3의 스낵무비가 나오고, 또 다른 기업과 콜라보해 또 다른 포맷의 콘텐츠가 나와서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라고 느끼게 하는 게 제일 큰 목표다. 이번을 계기로 새로운 영감을 받은 다른 아티스트가 다른 형태의 스낵무비를 보여주면 좋겠다.
Q. 관객들에게 한마디?
영화 자체의 재미도 재미지만 극장에서 보내는 10분이라는 새로운 경험 자체를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기존 영화 감상
[글 박찬은 기자 사진 ㈜스태넘, 마켄필름아시아(유)]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8호(24.07.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