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알마티 외곽에 흩뿌려져 있는 보석을 찾아 떠났다. 지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형성된 호수부터, 화산 용암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천천히 쌓여 형성된 협곡까지 신비롭고 장엄한 자연 풍경 앞에 절로 무릎을 꿇었다. 작은 배에 몸을 실은 채 호수를 가로지르고 험준한 좁은 골짜기를 두 발 꾹꾹 찍어 탐험해본다.
↑ ‘자작나무 호수’라는 뜻의 카인디 호수 |
지난밤 출발해 이동에만 꼬박 시간을 다쓰고, 아직 투어라곤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셈인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분주하고 바쁜 심신은 도깨비투어의 영향 때문이라 표현할 수밖에. 간밤 온통 검은색이던 마을 풍경은 새날과 함께 푸르른 초록과 새파란 하늘로 180도 반전을 이룬 모습이다. 여전히 꿈속에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배경을 가로 질러 마을 입구에 주차된 투어 차량에 올랐다.
↑ (위)사티 마을의 아침 풍경, (아래)오프로드에 최적화된 10인승 승합차 |
약 30여 분 달렸을까. 오프로드를 달리는 덜컹거리는 움직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려는 찰나 차량 시동이 고요함에 이른다. 색깔과 사양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승합차가 나란히 줄지어 있는 곳에 차가 멈춰 서자 지난밤 같은 버스의 동행자들이 이미 도착해 하나둘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호수까지, 약 2km 구간은 도보 혹은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투어그룹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겠지만 나는 말의 힘 대신 두 발의 힘을 빌려 호수로 향하기로 했다.
↑ 1911년 지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형성된 카인디 호수 |
차가운 온도의 호숫물은 다양한 수생 식물로 자란 나무 줄기를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며, 이곳 기후와 호숫물의 온도에 따라 나무 줄기 색이 변하는 특징이 있다. 마치 가시가 촘촘히 박힌 듯 공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소름 돋는 호수의 첫인상은 보면 볼수록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여기에 청록 빛깔의 호숫물이 신비로운 에너지를 뿜어내며 물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기한 기운이 느껴지는 경험임은 분명하다.
↑ 카인디 호수 주변 하이킹 코스 |
호수가 위치한 콜사이 호수 국립공원은 카자흐스탄의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천산산맥 북쪽 경사면에 위치해 있는 이 호수는 ‘천산(Tian Shan)의 진주’라 불리며, 가파른 산비탈로 둘러싸인 세 개의 호수가 각 해발 높이에 따라 상부, 중부, 하부 콜사이 호수로 나뉜다. 하부 호수는 해발 1,800m, 중부 호수는 해발 2,250m, 상부 호수는 해발 2,800m에 위치해 있다. 도로로 접근이 가능한 하부 호수를 둘러보는 것이 여행자들의 일반적인 관광코스다.
↑ (좌)콜사이 호수 보트 선착장, (우)보트 타기는 콜사이 호수 최고의 액티비티다. |
호숫물은 태양광선에 따라, 보트의 움직임에 따라 색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뤄졌다. 은은한 파란색부터 짙은 에메랄드 초록빛까지 한시도 틈을 주지 않는 분주한 변화의 움직임이 호수의 고요함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자연의 놀라운 색상을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마주한 호수는 같은 듯 다른 얼굴로 정체성을 분출해냈다.
↑ (좌)투어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캠프파이어, (우)‘달의 협곡’이라 불리는 루나 캐년을 이루는 카인디 호수 |
“투어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바로 오늘밤에 있을 이벤트입니다.” 콜사이 호수 투어를 뒤로 하고 사티 마을 홈스테이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한껏 실려 있었다. 투어 일정표를 확인해보니 ‘캠프파이어’가 오늘밤에 있을 이벤트의 중심이었다. 여기에 게임과 라이브 뮤직, 댄스타임 등이 덧붙여 나열되어 있었다. 가이드의 확신대로 지난밤의 뜨거운 열기와 여운은 투어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될 것만 같다.
일몰과 함께 다시 찾아온 산골 마을의 칠흑 같은 밤, 모닥불을 중심으로 강강술래하듯 둥그런 형태로 선 여행자들, 오싹할 만큼 한기가 느껴지는 밤의 추위는 거센 불길에 종적을 감췄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댄스타임을 한바탕 치르고 나자 외투를 벗고 싶을 만큼 온몸에 차오른 땀을 감출 수 없었다. 다양한 게임을 연달아 겨루고 난 뒤 다음날의 일정을 고려해 자정 무렵 캠프파이어가 마무리되었고, 여행자들 각자 숙소로 향하는 발길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아쉬움의 불길이 번져갔다.
↑ (위로부터)검은색으로 뒤덮인 깎아지른 바위가 특징인 블랙 캐년, ‘달의 협곡’이라 불리는 루나 캐년, 블랙 캐년 사이로 흐르는 차린 강 풍경 |
블랙 캐년(Black Canyon)은 사티 마을에서 동북부 방향으로 약 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 형성된 협곡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검은색으로 뒤덮인 깎아지른 바위가 수천만 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힘을 강하게 내뿜는 곳, 협곡 사이로 흐르는 초록빛깔의 차린 강(Charyn River)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깊고 좁은 협곡과 우뚝 솟은 절벽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블랙 캐년을 탐험하는 것은 낮과 밤의 시간대에 따라 차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낮에는 협곡과 강, 주변 식물 등 각기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반면 일몰 이후 협곡을 드리운 그림자의 영향과 밤하늘을 밝히는 별의 불빛으로 인해 입체적인 풍경이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 낮과 밤에 따라 바뀌는 두 얼굴의 블랙 캐년, 둘 중 어느 것을 보더라도 입을 다물 수 없는 경관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쯤에서 놀라긴 이르다.
↑ 차린 캐년 중앙에 난 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
차린 강과 쿨룩타우 산맥(Kuluktau Mountains) 가운데 위치한 루나 캐년은 지질학적으로 달의 풍경을 닮은 특별한 암석 지형의 영향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수천만 년에 걸쳐 물과 바람으로 형성된 독특한 바위 모양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 (좌)예술의 조각품과도 같은 독특한 형태의 화산 용암 바위들, (우)차린 강 유역을 따라 약 80km에 걸쳐 형성된 차린 캐년 |
이번 투어의 진짜 주인공을 만나러 갈 차례다. 역시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 투어 프로그램의 마지막 장소, 대망의 차린 캐년(Charyn Canyon)을 보기 위해 들뜬 마음이 머리끝까지 벅차 오른다. 여행 첫날, 케겐(Kegen)에서 셰어택시를 타고 알마티로 향하는 길목에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차린 캐년 국립공원 안내판 사인을 다시 마주했다. 마침내 국립공원 안으로 두 발자국을 찍었다.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약 220km 떨어진 차린 캐년은 알마티 외곽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의 정점을 찍는 자연의 놀라운 풍광을 선사하며 여행자를 뜨겁게 환영했다.
차린 캐년의 역사는 1,2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이 주변 돌을 천천히 침식하기 시작한 것이 차린 캐년의 출발이었다. 협곡 바닥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어두운 층은 화산 용암 바위이며, 그 위에 세월의 흔적과 함께 화산 용암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천천히 쌓여 마치 예술의 조각품과도 같은 현재의 모습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협곡의 길이는 대략 154km에 달하며, 차린 강 유역을 따라 약 80km에 걸쳐 협곡이 형성되어 있다. 강의 총 길이가 393km인 것을 감안하면 약 4분의 1가량을 차린 캐년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 차린 캐년 중앙에 난 길을 따라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
↑ 차린 캐년을 통과하는 오프로드 차량 |
사실 차린 캐년 때문에 알마티 여행을 결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협곡의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기분을 안겨준다. 그 곁에서 비로소 여행자의 사고도 바로 선다. 캐년의 가슴 설레는 풍경과 함께 이렇게 알마티 여행을 마무리해본다.
↑ 차린 강 유역을 따라 약 80km에 걸쳐 형성된 차린 캐년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7호(24.07.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