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이 열린다.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 두 사람 다 재선에 도전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론 조사에서 앞서고 있지만 점점 그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경제 성장, 중동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낙태법 등 이번 대선 이슈는 다양하지만, 트럼프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벌어지는 불법 이민자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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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난 3월 26일 미국 메릴랜즈주 볼티모어 퍼탭스코강의 프랜시스 스콧키 다리가 무너졌다. 화물선이 조종 불가능 상태가 되면서 교각에 부딪친 것이다. 양방향 4차로 매일 약 3만5000대의 차량이 오가는 이 교각 붕괴에 희생자가 적었던 것은 충돌 90초 전 화물선 조난신호를 수신한 경찰이 다리 진입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다리 도로 수리를 하던 6명은 생명을 잃었다. 이들은 온두라스, 엘살바도로 등에서 온 남미계 이민자 출신이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와 새벽까지 일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3 텍사스주는 지난해 12월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를 주 사법당국이 체포·구금하고 텍사스주 판사가 출국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이민법 SB4를 제정했다. 캐나다 국경지역 뉴햄프셔주는 불법 입국 혐의를 받는 사람에 대해 경찰이 무단 침입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플로리다주는 무면허 운전이나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불법체류 이민자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법안을 제정했고 테네시주는 학교 부지에서 살상 무기 등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른 불법 체류자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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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멕시코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 길이는 무려 3,144㎞이다. 이 통제 불가능한 긴 국경선을 통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 밀수 등 ‘모든 것’이 흘러간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불법 이주민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집권시절 이 국경을 통한 중남미 이민자의 불법 월경을 막기 위해 국경선 약 30%인 1,049㎞ 구간에 철제 장벽을 세웠다. 높이 9m, 이 장벽은 중국 만리장성의 절반에 해당되는 길이다. 그야말로 ‘철의 장벽’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의 행렬은 끊기지 않았다. 사막, 강, 땅굴, 심지어 철의 장막까지 자르고 하루에 1만 명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더구나 이 국경선을 넘는 이들은 중남미 출신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중국, 인도 등 다양하다.
미국은 멕시코에 ‘국경 통제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멕시코는 시큰둥하다. 멕시코에서 미국 불법 이민은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잡았고 더구나 멕시코는 미국 내 멕시코 이주민들로부터 막대한 외화를 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을 넘는 이들은 자신보다 아들과 손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들은 미국에서 아무리 더럽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한다. 2023년 멕시코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들이 멕시코로 보낸 돈은 600억 달러, 무려 81조 원이라고 한다. 이 돈의 규모만 봐도 미국행은 막을 수 없는 지경이다.
지금이 미국 불법 이민의 피크 시즌이 된 것은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미국 이민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 해서 미국행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3월 3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미국 조사전문기관 푸리서피센터 통계를 보자. 2021년 미국 내 불법 이민자의 수는 멕시코 405만 명, 엘살바도로 80만 명, 인도 72만5,000명, 과테말라 70만 명, 온두라스 52만5,000명이었다.
특히 인도계의 증가가 눈에 띈다. 인도인의 불법 이민 증가는 경제적 이유와 자녀 교육 때문이다. 인도는 영어가 공용어라 미국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기에 약 4만~10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 미국행을 감행한다. 이들의 이민 루트는 대체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와 튀르키에 이스탄불을 거쳐 멕시코로 간 다음 멕시코 사업자를 통해 입국한다고 전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 불법 이민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권기인 2019년 1,020만 명이었던 불법 이민자 수가 바이든 대통령 시기인 2021년에 1,050만 명으로 증가했고 또한 불법 이민자의 총기 사건으로 미국민의 사망, 뉴욕 등 대도시에 넘쳐나는 이민자로 인한 백인 주민들의 불편 등을 열거한다.
트럼프는 “내가 재집권한다면 그 첫 조치는 국경을 봉쇄하고 이민자들의 침공을 막은 뒤 수백만 명을 추방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을 말하며 “미국 역사의 뿌리는 이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뉴욕, 시카고, LA 등지의 범죄가 최근 감소하고 있다며 ‘이민자가 범죄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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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2월 1일부터 20일까지 미국인 1,01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현재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28%가 이민을 1순위로 꼽았다. 다음이 정부 20%, 경제일반 12%, 인플레이션 11%, 빈곤노숙 6%이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57%가 이민 문제를 1순위로 뽑아 트럼프의 강경 기조를 뒷받침했다. 또 응답자의 55%가 불법 이민 문제가 ‘미국의 핵심 이익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답했다. 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민 문제에 있어서는 공화당 지지자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조차 ‘과거 트럼프가 이민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설문조사를 보자. 바이든 대통령 2년 동안 경제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31%, 개인 재정사정이 좋아졌다는 43%로 증가했다. 그러면서도 20%의 응답자가 11월 대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민이라고 답했다. 이는 경제 이슈 14%를 훨씬 넘는 수치이다. 이는 대선에서 경제, 국제 정치, 두 개의 전쟁, 후보자 고령 등보다 미국민이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상황을 인식한다는 증거이다. 해서 바이든 대통령 역시 불법 이민 대처에 전략적 고민을 하고 있다.
같은 날 멕시코 국경을 찾은 바이든과 트럼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군을 투입해 이민자 추방 작전을 예고했고, 재임 시절 도입한 국경 망명 신청 중지 규정 ‘타이틀42’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 발표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국경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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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도 쏟아지는 이민자 문제에 사실상 손을 들었다. 뉴욕시는 1981년부터 유지해 온 ‘쉼터 권리right to shelter’를 최근 수정했다. 이 정책은 노숙자나 이민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쉼터를 제공하는 것. 어려운 사람들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이 최우선적 공적 가치라는 이념으로 시작된 정책이다. 그러나 재정 부담과 시민들의 불만으로 뉴욕시는 이민자 성인이 30일까지는 쉼터에 머무를 권리를 보장하되, 30일이 지난 후에는 ‘특별한 사정’을 제외하고 재신청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수정했다.
뉴욕시는 2023년에 이민자를 위해 14억5,000달러(1조9,300억 원)을 썼으며 2025년까지 총 120억 달러 15조9,7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이다. 20세기 초까지 매년 20만 명이 넘는 유럽 이민자들이 뉴욕을 통해 미국으로 들어왔고 지금도 약 350만 명의 시민들이 이민자 출신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이민자가 몰려들면서 뉴욕은 진보적인 도시라는 시카고와 더불어 이제 이민자에게 점점 문을 닫을 처지가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 이 단어는 아직도 통용된다. 마약과 총기, 고가 의료제도, 물가 상승 등의 내부 문제를 비롯해 세계 유일 패권국가 지위가 흔들리는 미국의 위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민자에게 가장 문호가 개방된 국가이다. 그것은 미국의 역사가 이민자이고 그들에 의해 미국이 건국되고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 이민자들은 대통령 후보에게 ‘더러운 피’, ‘불법 외계인’이라는 모욕적인 발언까지 듣는 지경이다.
물론 이해도 가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가 2022년과 2023년 집계한 불법 월경 건수는 각 200만 건 이상이었다. 이 이민자들이 일으키는 범죄와 불법행위도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이다. 이민자 대부분은
이제 몇 달 후면 미국 대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바이든의 재선이든, 트럼프의 당선이든, 그 결과에 따라 미국의 이민 정책에서 온도차가 드러날 것이다.
[ 글 권이현(라이프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2호(24.6.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