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GPT>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작 ·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 기자의 어린이 시절 (출처 = 본인)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식의 문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을 것 같진 않은 성정의 어른들에 치이며 비뚤어진 마음일까요. 그보다 반박의 여지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란 이런 겁니다.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였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바로 뒤 덧붙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누구의 첫사랑도 아니었던 어른들도 모두 어린이였을 것입니다. 어린이책 편집자와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일해온 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한때 그 세계를 누비던, 지금은 다 커버린 어른들을 위한 어린이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시 지나왔던 그 시절을 통과 중인 이들을 일터 안팎에서 만나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으로 담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여러 어린이는 함부로 마냥 귀여워할 수만은 없는 어엿한 동료 시민이자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사뭇 진지하고 사려 깊은 그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아이를 울고 웃게 합니다.
저자는 미래 세대의 주역이 아닌 현재 한 세대로서의 어린이를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고 말하며 묻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그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지. 마땅한 성장을 응원하고 있는지…. 가정의 달 5월,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해 볼 '어린이학개론서'로 <어린이라는 세계>만한 책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대면하는 일은 어른들과의 습관적인 그것과는 다릅니다. 될 대로 되라는 듯 살던 대로 살던 자세를 고쳐앉고 더 나은 답을 생각해 보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게 저 작은 인간이 자신의 궁금증으로부터 받은 생애 최초의 응답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상호작용 속 가르침은 어른에게서 아이로 흘러가야 할 것만 같은데, 예기치 못한 감동에 눈물을 글썽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건 자주 어른 쪽입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느리고 서툽니다. 신발의 왼쪽, 오른쪽을 구분하는 것도 아직 버거운 현성이. 신발 끈 묶기는 인생에 닥친 또 다른 큰 난관입니다. 저자는 '어른이 되면 차차 쉬워질 거야'라고 위로하는데, 돌아온 건 씩씩한 대답입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할 수 있어요. 어른들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들은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예기치 못한 말대답을 그냥 넘기지 않고 기록해 둔 저자 덕에 우리는 어린이의 속도를 존중하며 기다려주는 어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많아지는 세상은, 분명 어른들에게도 그 반대보다 따뜻할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걱정이 적고 과감합니다. 동네 놀이터를 지나다 만난 하준이에게 눈을 감고 하는 '정글짐 술래잡기' 이야기를 듣다가 '떨어져서 다치면 어떡하냐'라고 묻자 하준이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선생님을 안심시킵니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모래가 없다면 한발이라도 삐끗했다간 다칠까 봐 마음껏 뛰놀기 어려웠을 텐데. 어린이의 시원시원한 낙관이 상처입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건 세상의 '모래' 좋은 어른들일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허세스럽습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 어른이라면 술 몇 잔을 들이켜도 털어놓기 힘들 포부도 진지하게 꺼내놓습니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덕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꿈을 품게 된 하윤이에게는 걱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옥스퍼드에 갈지, 케임브리지에 갈지. 하나는 학교에 다니다 보면 한국말을 잊어버려 자신을 찾아 영국으로 온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나 있을지. 저자는 말합니다. 결정적으로 그 허세 때문에 하윤이가 옥스퍼드 (또는 케임브리지)에 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하나의 선언일 것입니다. 이미 영국 명문 대학 교정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아이의 표정을 상상하다 보면 그런 가능성을 비웃기보다 응원해지는 어른이 되고 싶어집니다. 더불어 잊고 있던 스스로의 그 시절 당찬 꿈은 무엇이었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자는 자신이 어린이 시절 받았던 아주 오래된 환대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가족들과 탔던 만원 버스 속 창가 쪽 좌석의 부모님 무릎에 앉은 채 이동했던 날. 바로 옆에 섰던 청년은 탑승객이 점점 많아지면서 손잡이가 아닌 저자의 좌석 근처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힘을 주고 버티며 들릴 듯 말 듯 말했다고 합니다. "애기가 짜부라질까 봐…." 부모님도, 이모 삼촌도 아닌 처음보는 어른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써주던 순간의 감동은 수십 년 후 어른의 마음에도 생생히 새겨져 책이 됐습니다. "나는 짜부라지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어린이와 대화하고, 더 나은 답을 찾아 전하는 과정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 답을 나 자신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앳된 얼굴에는 과거 비슷하게 천진했을 내 얼굴이 겹칩니다. 그들을 마음 다해 존중하면서 우리는 어린이에게 하지 못할 말은 나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다정한 어른의 길로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아동의 모습, 노키즈존, 아동학대 등의 이슈를 다루며 우리 사회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를 단호하게 비판합니다. 어린이는 단지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귀여워하는 데에 그치며 '구경'하고 '감상'할 존재가 아니고, 품위를 지켜줘야 할 엄연한 사회의 한 세대라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노인으로의 과도기라고 여기지 않듯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있다고. 나라의 앞날은 둘째치고 나라의 오늘부터 어른들이 잘 짊어지자고 말입니다. 무엇보다 식당, 카페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노키즈존'이 허용되는 세계에서 어린이가 스스로를 미래 사회의 주역이라고 느낄 리도 만무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는 법은 당연히 공공장소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배워야 하고, 어른들은 그 과정을 기다려줄 의무가 있다는 게 그녀가 내린 결론입니다.
또, 처음 만나는 낯선 어린이들에게 반말보다는 존댓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성인 동료나 고객에게 일정한 거리를 지켜 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듯 어린이를 동등한 존재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른은 말을 편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은연중 귄위를 얻게 되고, 존댓말을 쓰는 어린이는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상대의 감정에 대응하는 위치에 서 의견을 내세우기는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도 100년 전, 꼭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존경(repect)'의 어원이 바라보다 (respicere)라며, 그 의미가 흔히 생각하는 두려움 섞인 우러러봄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알며,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이 감히 어린이를 존경하게 만든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지난 2019년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이사 (출처=MBC) |
수년 전, 90년대 초반 출생 어린이들의 종이접기를 책임졌던 김영만 선생님이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등장하며 다 커버린 '코딱지'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종이접기야 눈 감고도 할 수 있게 됐지만 세상에는 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더 어려운 과제들이 많다는 걸 알아버린 코딱지들. 그럼에도 선생님에게 배웠던 것들, 다 접기를 기다려주던 다정한 말투, 원하던 모양을 만든 후 행복한 감정은 모두 우리의 일부로 남아있습니다.
윤가은 영화감독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오랫동안 꽁꽁 숨겨 뒀던 '가장 작고 여린 마음'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은 여린 스스로의 내면을 향해 있다는 것. 이야기 속 등장한 어린이 친구들도 수 년 후엔 어른이 되어 어린이 하나씩을 마음에 품고 살겠지요. 자신들이 받았던 대접도 기억할 것입니다.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일은 분명 상대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고, 사회 전체의 품위를 높이는 데에 기여합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린이들이 조금 다르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