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3> 송능한 감독 딸 셀린 송 자전적 경험 녹여내
크리스토퍼 놀란과 마틴 스코세이지가 극찬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20년간 내가 본 최고의 데뷔작”이라 칭했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기대를 모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수상은 불발로 그쳤지만 만남의 타임라인을 차분히 따라가는 영화는 ‘첫사랑’이나 ‘로맨스’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관계’의 다층적인 면을 충분히 깊게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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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Matthew Dunivan[사진 제공: CJ ENM] |
1988년생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주연 송능한 감독의 딸이기도 한 셀린 송 감독은 노미네이트 소식에 대한 가족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고 온 가족이 신났다.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며 심플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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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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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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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영(노라) 역의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에 대해 셀린 송 감독은 “내 첫 영화이기 때문에 매일 두려움을 이겨내고 하루 찍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또 하루를 찍었는데, 그 두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영화 속 내 파트너였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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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백 개의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 수십 명의 배우를 만났는데 셀린 송 감독은 아이부터 어른의 얼굴을 모두 지니고 있는 유태오 배우를 보자마자 주인공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뉴욕에서 35년 활동한 영화 프로듀서, 내 영화로 오스카 첫 후보된 것 감명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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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린 송 감독ⓒMatthew Dunivan |
그분들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평생 보고 살았는데 직접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감사하고 믿기 어려운 영광이다. 데뷔작에서,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경험’이었다. 그걸 채워줄 수 있는 프로듀서를 만나고 싶었다.
뉴욕 시티 인디펜던트 영화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이노호사, 크리스틴 배콘(<캐롤><메이 디셈버> 등 작업) 등 35년간 영화를 해오신 분들이 프로듀서로서는 처음으로 오스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돼서, 그 부분이 매우 감명 깊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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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작으로 오스카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운 셀린 송 감독(사진 제공 CJ E&M) |
극중에서 ‘인연’에 대해 설명하는 신이 있는데, 해성과 나영의 관계를 설명할 단어가 ‘인연’밖에 없었다. 해외엔 그런 단어가 없지만, “아, 나 그 감정 느낀 적 있는데, 그 감정에 이름이 없어서 몰랐어”라며 모두가 이해하더라. 영화를 본 서양 관객들이 어설픈 발음으로 ‘인연(In-yun)’이라고 이야기할 때 감동했다.
멀티유니버스 같은 판타지 영웅담이나, 이민자의 디아스포라가 아니더라도 우린 다들 살면서 한번씩 이사를 가거나 나이가 들며 다른 시공간으로 움직이지 않는가. 내가 내 인생의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신기하고 특별한 인연의 순간을 만나기 때문에 다들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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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 인터뷰로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셀린 송 감독(사진제공 CJ E&M) |
파리 사람들에게 ‘파리적인 어떤 것’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아무도 에펠탑을 떠올리지 않는다. 로케이션 매니저에게 부탁했던 것은 실제 로컬들이 살고 방문하는 장소들이었다. “만약 이 미팅이 끝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라고 물었고 그렇게 방문한 소줏집이 너무 훌륭했다. 대학, 취업, 군대 등 ‘서울’이라는 도시에 많이 기댔던 것 같다. 군대 에피소드 역시 실제로군대를 다녀온 스태프 AD팀의 막내에게 부탁해서 정확하게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예비역들이 보고 놀리지 않도록(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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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이스트빌리지 길은 둘의 타임라인을 드러낸다. |
노라와 해성이 택시를 향해 앞쪽(왼쪽)으로 걷는 이스트빌리지 길이 바로 세월의 ‘타임라인’이다. 해성을 데리고 현재에서 과거로 걸어가는 거다. 거기서 해성을 떠나 보낸 노라는 뒤로 돌아서서 남편이 기다리는 현재로 걸어온다. 해성이가 탄 택시도 오른쪽으로 달린다. 해성이도 괜찮아져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처럼 자고 있는 나영은 옆에 없지만, 마음으로는 어린 나영이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태오 배우도 그 신에서 뭔가 후련하다고 얘기했었다.
“세 사람 모였던 자전적 과거에서 모티브 얻어…내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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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린 송 감독ⓒMatthew Dunivan[사진 제공: CJ ENM] |
사실 별다른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모든 가족이 너무 좋아해줬다. 촬영 때문에 한국의 영화 만드는 분들을 만나고 크루를 꾸려서 다시 영화를 만들게 됐을 때 아빠에게서 영화 수업을 들은 제자들도 만났다. ‘홈커밍’의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고 그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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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포스터 |
어느 날, 어린 시절 친구가 뉴욕에서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와서 남편과 셋이 바에서 술을 먹게 됐다. 서로 언어가 안 되니까 내가 통역을 해주다 보니, 내 아이덴티티나 역사, 스토리를 두 부분으로 해석하고 있더라. 내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한 방에 모여 술을 먹는 느낌? 굉장히 신기하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 느낌이 특별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그래서 굉장히 한국적인 요소라든가, 뉴욕의 연극하는 사람들의 디테일 같은 것, 이런 저런 것들을 농담처럼 영화에 넣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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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뉴욕에서 극작가 일을 10년 이상 해왔는데, 늘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관객에게 가 닿더라. 다른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이나 작품을 보러 와서 의미를 느끼려면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시작은 자전적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글로 쓰여지고 몇 백 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만들며 객관화된다.
영화를 만들 때는 영화와 영화 안의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버하거나 너무 드라이하지 않게. 를 찍으면서 내가 뭘 말하고 싶고,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공부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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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내 아이덴티티, 내가 쓰는 언어나 문화에 대해서 훨씬 더 열려 있
[글 박찬은 기자 사진 판시네마㈜, CJ ENM]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