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차 많아 정약용 ‘다산()’ 호 짓게 만든 강진 만덕산
다산초당과
가우도와 동백이 있는 백련사 유명
뭍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만을 이뤘다. 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독특한 지형이 만든 풍경 하나 하나가 특별하다. 닿는 곳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무진한 사연들이 있고, 붉은 동백으로 피어나는 다산의 숨결이 있는 강진. 그래서 강진은 백련사의 붉은 동백이 흐드러질, 딱 이맘때 가봐야 하는 곳이다.
강진의 이른 봄을 거닐었다. 먼저 강진만의 담청색 바다를 눈에 담고,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다산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고결한 선비의 숨결을 가슴으로 느껴볼 요량이다.
↑ 설록다원 강진 |
국내 미항마다 대명사처럼 따라붙는 ‘한국의 나폴리’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마량(馬良)’은 ‘말을 건네주는 다리’란 의미가 담겨 있다. 7세기 무렵 제주에서 실어 온 말들을 잠시 방목하던 목마장이 이곳에 있었다. 말은 이곳에서 일정 기간 길을 들인 뒤 한양으로 옮겨졌다.
↑ ‘말을 건네주는 다리’라는 뜻을 지닌 마량항 |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이면 마량항에 마량놀토수산시장이 펼쳐지고 야외 공연장에서 ‘마량미항 토요음악회’가 열려 인파가 몰려든다. 들리는 얘기론 가수 임영웅도 이 음악회를 찾아 자주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마량에 가고 싶다’란노래를 부른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마량항에는 ‘마량에 가고 싶다’ 노래비가 서 있고, 비석에 달린 노래 버튼을 누르면 언제든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마량항엔 언제나 ‘너와 내가 만나서 사랑을 맹세한 마량의 까막섬~’ 하는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 (위로부터)7세기 무렵 제주에서 실어 온 말들을 잠시 방목하던 마량다리, 마량놀토수산시장, 임영웅이 불러 알려진 ‘마량에 가고 싶다’의노래비 |
청자박물관은 고려청자의 발생과 발전, 쇠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박물관이 있는 대구면과 인근 칠량면 일대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청자를 만든 가마가 있던 곳이다. 이 지역에서 조사된 청자요지는 모두 188개소로 국내에 남아있는 청자요지의 절반 정도.
↑ 고려청자 |
현재 청자박물관 일대는 ‘강진청자축제’로 들썩이고 있다. 올해로 52회째, 3월3일까지 펼쳐지는 축제에서는 청자를 테마로 한 화목가마 장작패기, 청자성형물레체험 등 다양한 체험이 마련돼 있다.
↑ 고려청자박물관 전경 |
↑ 한국민화뮤지엄의 춘화방 |
↑ 강진 가우도 |
↑ 강진만생태공원 |
문득 바람이 불자 갈대가 일제히 ‘쏴~’ 하는 소리를 내며 일렁인다. 조심스레 걸음을 멈추고 갯벌에 집중해본다. 생태공원 안의 온갖 생물들이 건네는 인사가 반갑다. 가끔 강진만의 상징과 같은 짱뚱어가 뛰듯 날듯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놀라움에 두 눈이 번쩍 뜨인다.
↑ 고려청자박물관, 한국민화뮤지엄, 강진만생태공원 |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저잣거리를 벗어나 산속으로 거처를 옮기는데 보은산에 자리한 고성사 보은산방이 그곳이다. 당시 백련사 주지였던 혜장스님의 도움 덕이었는데 두 사람의 인연은 혜장이 38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각별하게 이어진다.
↑ 다산초당과 동백꽃 |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한 곳은 동암이다. 초당 왼쪽 산비탈에는 다산이 초당을 떠날 때 ‘정석(丁石)’이란 글자를 새겨 놓은 바위가 있다. 동암을 지나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초입에는 강진만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일각’이란 누각이 있다. 다산이 강진에 살던 시절엔 없던 것으로,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운 누각이다. 산 중턱에 올라 흑산도에 유배 중이던 형 정약전을 그리워했을 다산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위함일 것이다.
↑ (위로부터 시계방향)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집필한 다산초당 동암,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누각인 ‘천일각’, 다산이 초당을 떠날 때 새긴 ‘정석(丁石)’, 제자들이 머물던 다산초당 서암 |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은 야생차가 많아 예로부터 다산(茶山)이라 불렸는데 이곳으로 유배를 온 정약용이 ‘다산’이란 호를 지어 사용한 것도 그에 연유한다.
↑ 백련사에서 바라본 강진만 |
나무에서, 땅 위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세 번 핀다는 동백. 3월3일까지 펼쳐지는 백련사의 첫 번째 동백축제에 맞춰 이곳의 동백은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풍경이다.
↑ 백련사에서 3월3일까지 동백축제가 열린다. |
조선 중기의 처사 이담로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 새기고 만들어 가꾼 별서 ‘백운동원림’이다. 별서란 본가와 별도로 은거용으로 지은 일종의 별장이다. 백운동원림은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강진향토문화유산 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진다.
↑ 담양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백운동원림’ |
백운동원림에서 벗어나면 월출산 자락을 뒤덮고 있는 초록빛 차 밭이 펼쳐진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월출산은 일교차가 크고 강한 햇빛을 막아줘 야생 차 재배지로도 유명했다. 유배 생활을 할 당시 강진의 차 맛에 반한 다산은 고향에 돌아간 뒤에도 강진 차를 즐겨 마셨는데, 강진의 제자들이 스승인 다산에게 차를 보내는 전통이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 강진의 차 역사를 보여주는 설록다원강진 |
설록다원강진 인근에는 백운차실이 있다. 이한영 전통차문화원이란 이름이 붙은 백운차실은 한국 최초의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를 만든 이한영 선생의 후손이 운영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차 역사의 산실인 이한영 생가와 찻집으로 꾸며져 있다. 직접 제다와 다도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백운옥판차를 비롯해 다산 정약용이 마셨다는 떡차도 맛볼 수 있다.
↑ 강진 백운동원림과 백운차실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