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 영국 북동부 3부작 마지막 시리즈
폐광 마을 노조 위원, 난민이었던 배우 직접 출연
섣부른 봉합보다 팍팍한 현실 속 희망 보여줘
거장 켄 로치 감독이 로 4년 만에 돌아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에 이은 영국 북동부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아마도 거장의 마지막 장편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는 그의 필모 중 가장 강력한 한방을 선사한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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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극 중 배경이 되는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 마을은 과거 주요 산업이던 광산의 몰락 이후 활기를 잃어버린 곳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마련했던 가족의 보금자리는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사람들로 북적였던 학교와 교회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반려견 ‘마라’와 함께 지내며 마을의 유일한 공동 공간인 펍 ‘올드 오크(Old Oak)’를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는 어느 날 마을로 들어선 난민 버스에서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를 만난다.
그녀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카메라를 통해 세상의 ‘희망’을 바라본다. 마을 주민들은 불쑥 찾아온 야라네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반기지 않지만 TJ는 야라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며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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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제7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뜨거운 기립 박수를 이끌어낸 <나의 올드 오크>는 88세의 켄 로치 감독이 “내 마지막 장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언급, 약 60년간의 작품 활동의 마지막을 암시한 영화다. 무엇보다 수십 년간 열 다섯 작품을 함께 해 온 작가 폴 래버티와의 호흡이 눈에 띈다. 영국 사회 내 노동과 복지 등을 다루는 이른바 ‘북동부 시리즈’라 불리는 작품들을 만들며 뿌리 깊은 빈곤과 차별에 집중해온 두 사람의 주제의식은 이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2016년 당시 집값이 싸고 미디어가 거의 주목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이유로 난민들을 더 많이 수용하게 된 영국 북동부 더럼 주가 영화이 배경. 당시 시리아 난민들이 처음 이주하던 상황에서 벌어진 갈등 등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실제 광산이었다가 폐광이 된 머튼(Murton)과 호덴(Horden), 이징턴(Easington) 등의 마을에서 촬영했으며, 감독과 작가는 실제 북동부 지역에 정착한 시리아 가족들을 상당수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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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포스터 |
영국 더럼 주의 소방관이었다가 마을의 노조 위원으로 일했던 데이브 터너가 <나의 올드 오크>의 펍 주인 ‘TJ’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미안해요, 리키>의 짧은 출연에 이어 수차례 오디션 끝에 <나의 올드 오크>로 정식 배우 데뷔를 치른 것. ‘야라’ 역의 에블라 마리는 시리아 배우를 찾고 있던 켄 로치 프로덕션의 수소문으로 오디션을 치른 뒤 영화에 합류했다. 무엇보다 실제 이야기와 그 사건의 주변에 있었던 실제 주민들이 영화에 참여한 데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이 영화의 강렬한 힘이 나온다.
노장 감독은 80년대 국영 탄광 폐쇄로 쇄락한 마을에 전쟁으로부터 도망친 야라와 이방인들을 덧붙이며 세계에 만연한 폭력의 트라우마와 혐오, 인종주의 등 현 국제 사회의 단면까지 담아낸다. 영화는 각자의 터전을 잃은 두 공동체의 갈등 구조를 중첩시키고, 희망의 실마리를 내비치지만 섣부른 봉합으로 나아가는 대신, 빛나는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누구나 갑자기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때론 말보다 더한 위로를 전해주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때야말로 시기와 불안을 넘어 진정한 연대의 힘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영화는 역설한다. 러닝타임 113분.
[글 최재민 사진 ㈜영화사 진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