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과 프로듀서를 맡은 <두 세계 사이에서>는 최하위 노동 취약계층의 현실을 담은 180일간의 르포르타주 영화다. 위장 취업을 통해 유명 작가와 경력 단절 청소 노동자, 두 세계 사이를 오가는 주인공은 ‘식자로서의 오만’과 ‘우정’이라는 두 세계 역시 오간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스틸컷
저명한 작가 ‘마리안’(줄리엣 비노쉬)은 고용 불안을 주제로 한 신작 집필을 위해 프랑스 남부의 연고 없는 항구 도시 ‘캉’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마리안은 어린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된 일을 하게 된 ‘마릴루’(레아 카르네 분), 세 아들을 키우면서 하루 세 번 여객선 청소 일을 하는 ‘크리스텔’(헬렌 랑베르 분) 등과 우정을 쌓는다. 신분을 숨긴 채 청소부로 일하면서 노동자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그들의 현실을 직접 보게 된 마리안은 그러나 정체를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
“답보다 질문이 더 많은 동시에 돈 없는 삶의 본질을 민감하게 파악한 영화. 항구에서 밤새 일하고 맞이한 아침에 바다를 보며 휴식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인생처럼”(-「파이낸셜 타임즈」)이라는 외신의 평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준다. 영화는 종군 기자였던 ‘플로랑스 오브나’가 2009년 2월부터 7월까지, 실업자에서 시급 8유로의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위스트르앙 부두: 우리 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라는 책이 원작이다. 플로랑스가 노동 현장에 직접 침투해 겪은 내용을 생생하게 적은 책을 영화화했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과는 달라졌지만 결국 영화 속 주인공 ‘마리안’이 바로 원작의 플로랑스 오브나를 대변하고 있다.
↑ 영화 스틸컷
이 작품의 영화화를 원했던 줄리엣 비노쉬는 원작 작가인 플로랑스 오브나를 설득하기 위해 유명 TV 시리즈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를 영입했다. 1986년 발표한 데뷔작 『콧수염』으로 “문학의 천재”(-「르 몽드」)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카레르는 <두 세계 사이에서>로 16년 만에 각본가이자 감독으로 돌아와 작가 출신다운 섬세한 연출을 선보인다.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최초 수상자이자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BAFTA), 세자르까지 석권한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 배우 ‘마리안’ 역을 맡았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포스터
영화의 프로듀서로도 활약한 그녀는 물론 현존하는 최고의 명배우지만 <두 세계 사이에서>에선 그녀의 존재감보다는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싱글맘 등 실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연기하는 생생하고 현장감 있는 캐릭터들이 더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줄리엣 비노쉬 외의 인물들이 비 전문 배우들로 캐스팅된 영화에서 특히 ‘크리스텔’ 역을 맡은 실제 노동자이자 신인 배우 헬렌 랑베르의 활약은 영화 초입에서부터 날카로우면서도 격렬한 에너지를 부여한다.
↑ 영화 스틸컷
영화는 계급 간 괴리, 사람 간에 형성
될 수 있는 깊은 우정과 유대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넘을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글감을 찾는 인텔리의 속물근성 등을 가볍지 않게 다룬다. 특히 섣부른 희망보다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주는 르포르타쥬 형식은 영화에 더욱 신선함을 부여한다. 러닝타임 103분.
[글 최재민 사진 ㈜디오시네마]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