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비’는 현대 사회가 ‘분초分秒’를 쪼개며 매우 바쁘게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선정한 2024년 10대 키워드 중 하나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단절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가성비, 가심비에 주력했지만 지금 소비 트렌드는 소유에서 경험과 그 경험의 공유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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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1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 결과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는가’에서 69.9%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유(중복 응답)는 ‘빨리 결론을 알고 싶어서’ 41.6%, ‘봐야 할 영상이 많고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36.5%, ‘다른 할 일이 많은데 보아야 할 영상도 많아서’ 31.9%, ‘깊은 사고가 필요하지 않은 콘텐츠라서’ 30.3%,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이 영상을 가성비 있게 소비하는 방법이라서’ 23.7% 순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자원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82.4%가 ‘시간’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에는 60.6%가 ‘관심이 있다’고 답했으며, 절약된 시간은 65%의 응답자가 ‘자기 계발’에 쓰겠다고 답했다.
#2 일본에는 경제경영, 자기계발 서적 등을 10분 정도로 요약해 읽어주는 모바일 독서 앱 ‘플라이어’가 있다. 이 앱 구독료는 월 2,200엔(약 2만 원)이다. 이 앱 회원수가 2019년 50만 명에서 2022년에는 110만 명으로 증가했다. ‘오디오북재팬’의 이용자 수 역시 2019년 100만 명에서 2022년 250만 명으로 늘어났다. 보편적으로 ‘키키나가라’(‘들으면서’라는 뜻으로 책의 내용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책 읽어주는 서비스)가 등장한 것. 이 역시 ‘한정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3 숏폼이 대세다. 지난해 11월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이하 와이즈앱)가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를 표본 조사한 결과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유튜브 시청시간은 1,044억 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가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와 진행한 조사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4개국 Z세대 약 93%가 쇼츠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틱톡 역시 성장세를 기록했다. 원동력은 역시 ‘숏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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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의 활용
이제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고, 책 한 권도 10분이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역시 이제 몇십 초 만에 하이라이트와 결말까지 알 수 있는 숏폼으로 대체된다. 이는 잘파(z+알파)세대에 국한된 예가 아니다. 전 연령층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들의 미디어 소비는 그 시간과 호흡이 대단히 짧아지는 추세이다. 해서 주말드라마 18부작, 본방 시청이면 9주가 걸리지만 지금은 ‘빨리 감기 정주행’으로 불과 몇 시간 만에 전작을 모두 시청한다. 이는 바로 시간 대비 성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時성비’이고 이 시성비는 소비 트렌드의 주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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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시성비는 현대 사회가 ‘분초分秒’를 쪼개며 바쁘게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트렌드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선정한 2024년 10대 키워드 중 하나이다. 우리는 소비 트렌드로 많은 신조어를 접했었다. ‘가격 대비 성능’의 ‘가성비’,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의 ‘가심비’ 등이 그것. 우리가 가성비를 접했던 것은 2012년경이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만에 소비 트렌드의 주류가 3번 변화되었다. 물론 이 10여 년 동안 세계는 급변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컸다.
홀로 살기와 단절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가성비, 가심비에 주력했지만 지금의 소비 트렌드는 소유에서 경험과 그 경험의 공유로 전환되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은 주어진다. 이 한정된 24시간 안에서 더 효율적이고, 실패 없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경향이 더 짙어졌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가성비를 뜻하는 ‘코스파Cost Performance’ 시대에서 이제는 ‘타이파Time Performance’ 시대라고 한다. 작가 이나다 도요시의 저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그는 ‘빨기 감기’의 이유로 ‘타이파’를 예시로 들었다.
즉 보고 싶고, 봐야 할 콘텐츠는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전부 ‘경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더구나 현대는 SNS를 통해서 대화, 즉 경험의 공유가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과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빨리 감기 타이파’가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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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직장인은 이사나 경조사, 병원 가기, 관공서 일 보기 등에 연월차를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은 반차, 반반차 심지어 반반반 차가 흔하다. 반차는 4시간으로, 그보다 짧게 약 2시간 정도 필요하다면 반반차를 사용한다. 심지어 반반반차를 사용해 단 1시간만 쓰기도 한다. 이 모두 시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현상이다.
‘무엇을 한다’보다 ‘무엇을 했다’가 더 중요하다
Z세대의 모니터는 M세대의 모니터와 다르다. Z세대는 데스크탑과 노트북, 탭과 스마트폰을 동시에 사용한다. 또 모니터에는 많은 ‘창’이 열려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어폰을 사용한다. 업무를 처리하며 SNS를 확인하고 음악도 듣는다. 이는 Z세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들에게는 한정된 시간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빠름’에서 뒤떨어지는 소비 패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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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이는 사회가 소유경제에서 경험경제로 전환되었다는 뜻이다. 소유경제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물론 경험경제에도 돈은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그들에게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는 너무나 흔하다. 이 모든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바로 시간이라는 공통 자원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시성비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데는 SNS가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소유경제 시대에는 물건을 구매해 소유하고 이를 SNS에 올려 인증하는 것이 중요했다. 시성비 시대에는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경험을 SNS에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더 빠르게 경험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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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픽사베이) |
시성비 시대의 포인트가 있다.
시성비의 본질이다. 그것은 ‘시간이 없어서’보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이다. 즉 시간을 낭비하고 혹은 시간을 들였는데 그 결과가 실망스럽지 않기 위한 심리이다. 이는 ‘디토 소비Ditto Consumption’로 연결된다. 디토 소비는 ‘나도 그래’라는 의미다. 많은 것 중 선택의 고민 시간을 없애거나 단축하려는 심리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먼저 경험한 것을 따라 함으로써 실패를 줄이려는 행동이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에 등재된 메뉴의 수는 2022년 약 2,683만 개라고 한다. 배달의민족에서 주문 패턴을 분석했더니 대표메뉴, 추천메뉴 선택 비율이 일반메뉴보다 1.9배에 달했다. 이는 경험한 이들의 선택 시 작용되었던 기준에 동의하고 남들의 소비를 따라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소비를 위한 선택, 과정이 목적이 아니게 됐다는 점이다. 즉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시간 대신 이미 증명된 것을 따라하면서 ‘나도 했다’는 소비 경험을 결과로 얻는 것이다. 해서 이제는 유명한 핫플이나 맛집 앞의 웨이팅도 이용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식당 예약 앱이다. 마이크로밀 엠브레인 패널빅데이터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예약 어플 캐치테이블, 테이블링은 2022년보다 각각 122%, 48% 성장했다. Z세대는 앱으로 예약하고 웨이팅 시간에 쇼핑을 한다. 기다리는 시간을 역시 아껴서 다른 것을 위해 그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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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 픽사베이) |
영상 콘텐츠의 금기는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영상 콘텐츠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5~10분 내외의 요약본, 리뷰에 결말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것조차 영상 도입부에 버젓이 자리한다. 결말을 알고 영상을 보는 목적은 영상을 감상하고, 감동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 ‘영상을 봤다’는 경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해서 몇 시간이 투자되는 극장 가기, 드라마 정주행 등은 이제 드문 영상 소비 형태가 된 것이다.
시성비 시대, 이는 한정된 자원으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속성에 딱 부합된다. 누구에게나 유일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인 시간을 유용하게 쓰려는 현상이다. 이는
21세기 들어 경제위기와 경기침체 그리고 팬데믹의 경험이 초래한 ‘미래 사회에 대한 불안감’에 쫓기는 젊은 세대의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 없어지는 계층 사다리에 지쳐버린 젊은 세대가 가장 공정, 공평한 시간에 대해서 갖는 애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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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이현(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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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인용 『트렌드 코리아 2024』(김난도 외 10인 지음/ 미래의 창 펴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6호(2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