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이 목숨을 바치며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은 천주교와 관련한 신간이 나왔습니다. 류은경 작가는 지난 2009년 가을 전북 완주 초남이(초남리) 마을에 있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생가를 찾은 이후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바쳐온 김진소 신부를 비롯해 서종태·김영수 박사, 로셀리나 수녀 등과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초기 한국 천주교 포교와 박해의 역사를 더듬었습니다. '불멸의 노래'가 구상되고 집필된 지 12년 만에 전 3권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불멸의 노래'는 모진 박해에도 아랑곳없이 한국 천주교의 씨를 뿌린 선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특정 인물 중심의 영웅 사관을 지양하고 '불멸'하고자 하는 두 세력을 대척점으로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주자의 하늘' 아래서 불멸하고자 하는 기득세력과 그에 맞서 '새로운 하늘'을 열고자 하는 개벽세력이 충돌합니다. 천주교의 '복음'을 통해 평등사상을 깨치고 실존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이 개벽의 불길을 냅니다. 이를 두려워한 지배계층은 무자비하게 박해하고, 그 박해를 기화로 정적을 대거 숙청합니다.
'호남 최초의 천주교도'로 알려진 유항검과 그 일가는 '불멸의 노래'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그는 진산사건으로 최초의 순교자가 된 윤지충과 더불어 초대 조선천주교회의 핵심인물입니다. 1784년, 유항검은 권철신·권일신 형제를 통해 천주교 교리를 접하고서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습니다. 그는 1786년, 가성직 제도를 설립한 이승훈으로부터 신부로 임명되지만 가성직 제도의 시정을 요청하고 그 오류를 정죄(淨罪)하도록 촉구했습니다. 한편 유항검은 주문모 신부를 초남이로 초대해 포교에 힘쓰는 등 천주교 발전에 혼신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던 1801년(순조 1), 신유박해의 거센 회오리가 초남이를 덮쳤습니다. '사학(邪學)의 괴수'로 낙인찍힌 유항검을 비롯해 성직자와 신도들 수백 명이 역도(逆徒)의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 끝에 처형됐습니다. '불멸의 노래'의 무대는 호남으로부터 시작돼 중앙정계(한양)로 옮겨갑니다.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세운 조선은, 중종 재위(1506~1544)를 계기로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대부가 정치변혁을 내걸고 대거 중앙정계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혁이란 왕권정치를 신권정치로 바꾸는 것에 불과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기존체제를 공고화하는 주자학의 도그마에 빠져 사변으로 흐르면서 정치는 오히려 초기의 사상적 유연성을 잃고 사회변혁 대신 당쟁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게다가 사민계급(四民階級)에 따른 신분제가 더욱 공고화되면서 사회는 생기를 잃고 국가는 문약에 빠졌으며 관료들의 수탈은 날로 극심해져 백성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주자의 하늘' 아래에서 지배계층은 살졌으나 피지배계층은 날로 말랐습니다. 이런 사정은 '불멸의 노래'의 시대 배경이 된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불멸의 노래'는, 조선 정조 이후 본격화된 노론세력의 천주교 박해를 씨줄로 삼
류은경 작가는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단편소설 '가위'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습니다. 작품으로는 '이산 정조대왕', '선덕여왕', '노견만세', '무신', '해미' 등이 있습니다.
[이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