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傳貰, 주택 임대차 계약 중 가장 많고 또 익숙한 한국의 독특한 문화이다. 전세는 임차인이 일정금액을 임대인 즉 주택소유자에게 예탁하고 일정 기간을 거주하는 형태이다. 거주 기간은 보통 2년이다. 기간이 만기가 되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받았던 예탁금 100%를 돌려주고 임차인은 집을 비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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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2 서울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이는 전셋값 하락으로 역전세, 깡통전세 등으로 전세금을 못 돌려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승해 수요자들이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이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을 살펴본 결과 2023년 5월까지 서울(단독, 다가구, 다세대·연립, 아파트) 주택 전월세거래 22만9,788건 중 월세거래는 11만7,176건으로 51.0%이다. 또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평균 월세보증금은 2023년 5월 기준 1억4,695만 원이며 주택 평균 월세는 105만 원.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임금근로자 평균소득은 333만 원. 서울 월세 임차인들은 월급의 33%를 월세로 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월세보증금은 1억9,788만 원, 아파트 평균 월세는 124만 원이다.
#3 대한민국 상위 0.1% 즉 약 50만 명은 집값과 전셋값 하락, 역전세난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정보제공사이트 ‘아실’에 따르면 2023년 계약된 서울 아파트 전세가 순위 10위까지는 전셋값이 서울 강남권 아파트 시세가를 넘는 고가. 나인원한남 75평형 60억 원, 한남더힐 91평형 57억 원, 아크로서울포레스트 60평형 55억 원, 갤러리아포레 90평형 50억 원, 삼성동 라테라스 73평형 45억 원, 아아파크삼성 73평형 43억 원, 반포자이 91평형 40억 원, 압구정 현대6~7차 80평형 40억 원, 아크로리버파크 71평형 40억 원, 래미안퍼스티지가 39억4,000만 원에 거래되었다.
#4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다. 원 장관은 “전세 대출을 끼고 갭투자를 하고, 경매에 넘기는 것 빼고는 보증금을 돌려줄 방법이 없다. 대출받거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 여러 채를 살 수 없게 하는 방안이 있다. 담보 가치가 남아 있는 부분의 일정 비율만큼만 전세 보증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도를 두는 방안도 있다. 임차인이 보증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확보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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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액이 2023년 3월 기준 1,017조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증가세를 보였다. 이 중 전세 대출은 2022년 6월 기준 국내 17개 은행 전세자금 대출자 수는 133만5,090명, 대출 총액은 167조510억 원으로 나타났다. 2019년 98조7,315억 원, 2020년 132조3,101억, 2021년 162조119억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특히 2012년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12년에 비해 2배 증가했는데 전세대출 잔액은 약 20배가 증가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수치가 있다. 바로 전세보증금 총액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추산한 전세보증금은 2022년 말 1,058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전세보증금 1,058조 원, 상상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현재 전세가의 월세 기준은 약 5% 내외. 이는 1억 원당 50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보증금 1억에 월세 250만 원은 전세 6억 원이다. 가정해보자. 만약에 지금 전세제도를 폐지한다면 당장 임차인들은 월세 전환 금액 약 5,200억 원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임차인의 입장이다. 적게는 월 50에서 많게는 월 300만 원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 임차인은 드물다.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당장 전세보증금 1,058조 원을 마련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전세금 전액을 은행에 저축하고 언제든지 임차인에게 돌려줄 준비를 한 임대인의 비율은 50%도 되지 않을 것이다. 대개는 받은 전세금으로 주식, 펀드 혹은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자금으로 쓰기 때문이다. 또한 임대를 준 주택의 구매를 위해 받은 은행대출금의 원금을 일부 갚거나 대출금 이자 부담에도 전세보증금을 쓸 것이다. 해서 이 전세보증금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한민국이 가진 ‘비공식 폭탄급 가계 부채’인 것이다.
이렇게 전세보증금으로 주택을 구입하고 다른 곳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은 전세보증금이, 이를 바탕으로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은 변수가 많다. 국제 경제, 정치적 변화에도 민감하고 IMF나 금융위기 등 상상도 못할 일도 벌어진다. 해서 집값은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타고 전세금 역시 흔들린다. 상승기에는 임차인들이 애를 먹는다.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까지 일으키고 하락기에는 임대인들이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빚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세대란, 역전세론, 깡통전세, 뻥전세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전세 제도 자체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 20세기부터 주택구매를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 혹은 거주 안정을 위한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로 그 명성을 이어온 전세 제도는 과연 수명을 다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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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그래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세 제도를 보고 의아해한다. ‘집 주인을 어떻게 믿고 수억 원이라는 거금을 줄 수 있는가?’, 혹은 ‘아니 내 집에 몇 년간 살다가 나가는데 왜 돈을 다시 돌려주는가?’라고. 이 전세 제도를 금융으로 보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돈을 주고, 임대인 집에 거주하고 나갈 때 그 돈을 받아 나가는 것이다. 이는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이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월세를 받지 않는 것이 된다. 즉 현금과 현물의 기간을 정한 ‘상호채권·채무 관계’ 즉 사적인 ‘현물교환거래’가 된다. 이에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전세금을 2년 뒤에 전액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임차인의 믿음, 2년간 임차인이 집을 깨끗하게 쓰고 나간다는 임대인의 믿음이다. 그 근본은 전세금보다 높은 주택 가격이다. 이는 최악의 경우 주택을 담보로 자신의 채권 권리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 역시 마찬가지다. 2년 뒤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때 2년 전 전세가와 동등한 혹은 그보다 더 비싸게 새 전세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이 전세 제도는 유지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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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1980년대, 아파트가 공급되면서 전세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청약, 분양 등 자가 마련이 늘었다. 이 자가 구매자들은 고금리의 은행보다 손쉽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전세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는 형태, ‘갭투자’가 시작된 시점이다. 이는 자가 마련의 주요한 루트가 되었다. 매매가 10억 원의 아파트를 살 때 전세가는 보통 시세의 40~60% 정도, 해서 평균 5억 원만 준비되면 전세를 끼고 10억 아파트를 구매한다. 2년 뒤 아파트 시세가 15억 원으로 상승하면 전세금 역시 8억 원을 상승해 집주인은 2년 동안 막대한 차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세 황금기에 경험치 못한 일도 벌어졌다. 바로 1998년 IMF사태. 당시 주택가격은 급락하고 전세가 역시 폭락했다.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의 전세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태, 즉 ‘역전세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 이는 집주인, 세입자는 물론이고 주거 안정화 대책으로 전세 제도를 나름 활용했던 정부도 한번도 경험치 못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이른바 ‘튼튼한 제도’로 인식되었던 ‘전세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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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또 하나 전세의 역습은 보증금 불안감에서 나온다. 전세는 일종의 사적 금융이다. 즉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거액의 현금을 받는 ‘일종의 대출’이다. 집주인은 그 대신 집의 거주를 세입자에게 보장한다. 이는 ‘집주인에게 주는 전세금의 이자를 포기하고 거주의 보장을 받는 것’이다. 세입자는 이자를 포기하는 것이 되지만 사실은 월세 대신이기에 이득은 아니다. 당연히 집주인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집주인은 이를 이용해 갭투자를 시도한다.
예를 들면 10억 아파트를 6억 전세를 주고 은행 대출을 받아 산다. 그리고 약간의 여력이 있으면 다시 10억 아파트 한 채를 전세를 끼고 구매한다. 이렇게 집을 매입하는 것이 갭투자이다. 이 갭투자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집값 상승이다. 10억 아파트가 20억 원이 된다. 그러면 집주인이 갭투자로 아파트 3채를 보유했다면 그는 3채 총액 60억 원의 자산가가 된다. 물론 전세가를 평균 10억 원을 계산해도 전세가 총액 30억 원, 전세금으로 모자라는 금액을 은행에서 대출 20억 원을 일으켜 구매했어도 10억 원의 시세 차이를 2년 만에 실현할 수 있다. 이는 부동산 불패를 근거로 한 것이다.
반대 경우도 있다. 집주인은 3채의 집을 갭투자와 은행 대출로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 10억 아파트 3채 총액 30억 원, 각 전세금 6억 원, 은행 대출 각 3억 원이다. 그런데 집값이 7억 원으로 하락했다. 주택 3채 총액은 21억 원, 전세금 총액은 18억 원, 은행 대출금은 9억 원이다. 집을 팔아도 21억뿐인데 돌려주거나 갚아야 할 채무는 27억 원이다. 그러면 역전세난을 넘어서 이른바 ‘깡통 전세’가 된다. 이 경우 은행이 우선순위 채권자가 되면 세입자는 경매로 넘어간 집에서 전세금을 온전히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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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까운 시기에 전세 제도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점 보완이 필요하다. 갭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자금출처 확인, 일정 금액 이상 전세금은 일부를 공탁금 형태로 보관하는 방법 등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싸고 질 좋은 주택, 즉 공공 장기임대주택의 확대다. 재개발, 재건축 시 임대주택 비율을 높여야 하고 이 역시 분양아파트와 공간, 디자인 등에서 구분하는 행태도 없애야 한다. 또한 이 임대주택의 도심 진입도 고민해야 한다. 청년, 신혼부부, 다자녀 가정 등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경우도 실용적인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9평에서 30평형까지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에 약 20~30년간 장기 거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이란 말도 있다. 세상살이에서 제일 서러운 것이 집 없는 설움, 남의집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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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92호(23.8.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