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창조성은 단지 ‘편집’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던 전작의 연장선에서 저자는 또 다시 창조성의 본산지를 찾아 나섰다. 바로 독일의 바우하우스다.
↑ 김정운 지음 / 아르떼 펴냄 |
천재 수집가 월터 아이작슨의 평전 『스티브 잡스』에서 그는 소니의 열렬한 팬이었던 잡스가 어느 순간 우중충한 소니를 버리고, 대안으로 독일 바우하우스에 빠진 걸 발견했다. 애플의 전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가전 회사 브라운의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를 존경한다고 했는데, 그가 나온 울름조형대학은 바우하우스 학생이었던 막스 빌 등이 바우하우스 정신을 되살리려 세운 대학이었다.
저자가 독일 유학시절 매일 지나다니던 길가의 특이한 건물이 바로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였다. 세계적으로 지탄받는 ‘기능주의 건축’의 대명사였던 그곳을 다시 보게 된 것. 1919년 바이마르에 설립돼 1933년 나치 정권에 의해 폐쇄되기까지 바이마르, 데사우, 베를린을 전전하며 14년간 존재했던 이 종합예술학교는 혁신적인 예술가들의 ‘요람’이었다.
그는 잡스 덕분에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극적으로 부활한 바우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추상화’를 꼽는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던 회화는 사진의 출현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인상파, 포비즘, 큐비즘, 표현주의를 거쳐 마침내 회화는 추상화에 도달했다. 더는 모방할 수 없으니 새로운 대상을 창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음악은 화가들에게 ‘추상’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됐다. 음악을 참조해 재현이 아닌 추상의 세계를 창조했던 화가들이 바우하우스 선생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오스카 슐레머, 라즐로 모홀리-나기 등이었다. 심지어 재현에 그쳤던 회화는 역으로 대상에 스며들 수 있었다. 바로 ‘근대 디자인’의 출발점이 바우하우스인 이유다.
사람들이 아이폰에 열광했던 이유는 ‘터치’라는 촉각으로 일으키는 시각과 청각의 변화에서 왔다. 이런 감각의 교차 편집을 처음 실험한 곳이 바우하우스다. ‘색을 듣고, 소리를 보는’ 실험 등을 반복했다. 저자는 18세기 산업혁명의 본질은 증기기관이 아니라 소통되지 않던 장인들의 기술과 학자들의 과학이 결합한 ‘지식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2차 지식 혁명은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가르친 바우하우스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김정운이 운명처럼 만난 바우하우스 여행의 면면은 개인적인 인상비평을 넘어, 사회철학으로 비약한다. 파울 클레의 그림으로 장식된 호텔에 누워 그는 촌구석 학교가 예술가를 죄다 불러 모은 이유를 발견한다. 이들이 설계한 건축은 강철 기둥과 유리벽이라는 공간 혁명을 가져왔다. 왕과 귀족만 내려다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던 시기에 ‘시선’과 ‘빛’을 민주화시킨 것이다. 이 시선혁명은 건물의 안과 밖이 사라지는 혁명적 전환이라 강조한다.
↑ 메건 오로크 지음 / 진영인 옮김 / 부키 펴냄 |
의학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게 발달하고 있지만, 인류의 질병과의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20대 초반부터 정체불명의 병에 시달렸던 작가 메건 오로크가 10년 동안 써 내려간 투병기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기도 했지만, 약을 먹어도 병은 낫지 않았다. 검사 결과에 문제가 없다며 도리어 환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의사들을 뒤로하고, 스스로 미스터리의 답을 찾아 나섰다. 면역계의 활동과 의학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온갖 치유법(때로는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도)을 시도하고, 의료계 전문가들과 동료 환자들을 만났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파고들수록 이것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자신의 고통에 이름을 붙이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여정은, 만성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9호(23.7.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