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중동부에 있는 이 도시는 고대와 중세시대 중국과 인도 무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해 예로부터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및 문화 중심지였다. 티무르 왕조의 르네상스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는 사마르칸트에는 티무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고대 도시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도시의 중심부에서부터 시장과 사원, 왕의 무덤, 맛집에 이르기까지 유서 깊은 고대 도시 탐험을 시작해본다.
↑ 사마르칸트 북동쪽에 위치한 영묘 ‘사하진다(Shah-i-Zinda)’ 의 입구 모습. ‘사하진다’는 ‘살아 있는 왕’이라는 뜻이다. |
2011년 8월 개통된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는 2017년 추가로 2개가 편성되었고,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 우르겐치, 히바에 이르기까지 우즈베키스탄 실크로드를 완성하기 위한 고속철도 연장계획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고속철도는 최고 속도 160㎞/h으로,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4시간가량, 일반열차와 비교하면 정확히 그 시간을 반으로 줄여준다.
↑ 사마르칸트 기차역 전경 |
↑ 사마르칸트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여러 도시로 연결된다. |
사마르칸트역을 포함해 타슈켄트와 카스피해를 연결하는 철도망은 지역의 주요 경제원천이자 교통자원으로 쓰이며 현재도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그것의 파워가 여행자의 이동까지 빠르고 편리하게 이끈다.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 매우 칼같이 지켜져 여행의 시간이 모처럼 짜임새 있게 채워졌다.
↑ 전 세계 이슬람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레지스탄의 독특한 건축양식 |
14세기 티무르(Timur) 왕조는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현대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중앙아시아 주변에 티무르제국을 세웠다. 투르코-몽골 정복자였던 그는 무패의 사령관이라는 명성과 함께 위대한 전술가, 또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1세기 현재 티무르제국의 고대 도시 사마르칸트의 명성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은 바로 도시 중심부의 레지스탄(Registan)이다.
↑ 레지스탄 광장에서의 조명 쇼 |
전 세계 이슬람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레지스탄은 거리의 특성을 단숨에 끌어올린다.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지나 초록빛 컬러가 한둘씩 걷히고 나자 이슬람 최고 건축물의 면면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왔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봐야 할 만큼 눈이 부시다 못해 빛의 섬광이 느껴지던 그 순간, 레지스탄의 강렬한 첫인상을 완성했다.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절대 잊을 수 없게.
↑ 시계방향)마드라사 중앙에 배치된 안뜰, 레지스탄의 독특한 건축양식, 셰르도르 마드라사 |
중앙아시아 마드라사에는 일반적으로 가장자리에 두 개의 높은 첨탑이 있으며 상단에 하늘색 돔이 있는 구조다. 내부에는 모스크와 도서관, 강의실 등으로 구성되며, 중앙에 배치된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학생을 위한 방이 2단으로 세워져 있다. 레지스탄 광장에서 매일 밤 일몰 후 대략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조명 쇼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음악과 함께 도시의 밤을 풍성하고 화려하게 물들인다.
↑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사진 왼쪽)와 틸리야카리 마드라사 |
음식과 소품 등을 파는 가판대가 일렬로 자리한 곳에서부터 시압 바자르(Siab Bazar)까지 약 2㎞ 남짓 이어지는 거리에는 사람들과 자전거로 혼잡한 질서가 관광지의 특성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주말 오후 이곳 거리의 풍경은 외국인보다 현지인의 수가 압도적이다. 타슈켄트에서 2시간 안팎 소요되는 고속 열차의 등장은 사마르칸트가 현지인들의 주말 여행지로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 힘을 싣는다. 번잡함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평일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좋겠다.
↑ (좌로부터 시계방향)비비하눔 사원 내부 건축양식, 시압 바자르 입구 모습, 채소, 과일 등 다채로운 농산물이 거래되는 시압 바자르 |
사마르칸트에서 레지스탄에 이어 가장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로 꼽히는 비비하눔 사원은 티무르 아내의 이름을 딴 모스크다. 티무르 르네상스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15세기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모스크로 명성을 떨쳤다.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사원인 이곳은 480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는 아케이드와 연결되는 구조가 특징이며, 가로 167m, 세로 109m의 직사각형 회랑에 40m 높이의 거대한 미나렛과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돔이 독특한 건축양식을 나타낸다.
↑ (좌로부터 첫 번째, 두 번째)채소, 과일 등 다채로운 농산물이 거래되는 시압 바자르의 모습 (우측 첫 번째 사진)비비하눔 사원의 40m 높이 미나렛(minaret: 모스크의 일부를 이루는 첨탑) |
↑ 사마르칸트 남서쪽에 위치한 구르 아미르 광장 전경 |
손자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405년 중국 원정 중 전사한 티무르의 시신까지 묻히면서 가족 영묘단지로써 기능이 확장됐다. 영묘는 동쪽에 나 있는 다중 돔 회랑을 통해 입장이 가능하다. 기하학적 구조에 구리와 금이 사용되어 화려함과 우아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대표적인 사하진다의 건축양식이다. |
이 단지는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8세기에 걸쳐 건립되었는데, 현재 20개 이상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중앙아시아의 예술품과 디자인의 정수를 발산하는 화려한 색상과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된 궁전을 닮은 웅장한 무덤이 특징. 특히 그중 ‘사디 물크 아가(Shadi Mulk Aga)’ 무덤은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기념물 중 하나로, 이 구조는 1371년에 지어져 대부분의 원래 장식 조각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 (우로부터)20개 이상의 건물로 구성된 사하진다 단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 기하학적 구조에 구리와 금이 사용된 돔 장식, 검은색이 티무르의 무덤이다. |
고대 도시에선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전 세계에 떵떵거리며 이름을 날렸을진 몰라도 오늘 현재를 살아가는 이 도시의 사람들에겐 기념품 하나라도 더 팔고 싶은 간절함이 더 우위에 있다. 살아있는 왕의 무덤 그 반대편에선 물건값을 흥정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번잡함 속에서 상인과 여행자 그리고 왕의 무덤은 오늘도 그렇게 함께 살아 숨쉰다.
↑ 20개 이상의 건물로 구성된 사하진다 단지 |
레지스탄 광장 맞은편 줄지어 자리한 식당에는 처음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무시하는 편에 가까웠다. 크고 화려한 관광지의 여느 식당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직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이곳 식당 중 한곳이 ‘샤슬릭’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숙소 주인으로부터 듣게 되었고, 그렇게 찾은 곳이 레지스탄 스트리트 가운데에 자리한 ‘라비 고르(Labi G’or)’ 식당. 메뉴는 샤슬릭 외에도 현지 음식이름이 목록에 빼곡했는데, 숙소 주인은 이곳에서 무조건 ‘샤슬릭만 맛볼 것’을 당부했다.
↑ 숙소 주인에게 추천 받은 ‘라비 고르’ 식당 |
국물 없는 라그만이 있다고?
우즈베키스탄의 국수요리 ‘라그만’은 대개 쌀국수나 잔치국수처럼 국물이 있는 요리로 인식된다. 한데 볶음국수와 같이 국물 없이 볶아서 요리한 라그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마르칸트에 와서 알게 되었다. 타슈켄트 거리에 자리한 ‘이캣 부티크 카페 & 레스토랑(Ikat Boutiques Cafe & Restaurant)’에서 판매하는 이 음식은 ‘튀긴 라그만’이라는 뜻의 ‘코부르마 라그만(Qovurma Lagman)’. 일년 중 어느 때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특히 이곳 현지인들은 더운 날 시원하게 먹기 좋은 음식으로 여긴다.
↑ 여름철 별미인 튀긴 국수 요리 ‘코부르마 라그만’ |
모던 카페도 있다
이탈리안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수소문한 곳이 바로 ‘모네 카페 & 베이커리(Mone Café & Bakery)’다. 사마르칸트 서남쪽에 자리한 이 카페는 이 도시의 가장 모던한 카페. 카페 내부 사진만 보고선 ‘이게 가장 모던한 카페라고?’ 반문할지 모르나 이렇게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게다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뽑아내는 곳은 사마르칸트에서 굉장히 보기 드물다는 사실.
↑ 사마르칸트 서남쪽에 위치한 ‘모네 카페 & 베이커리(Mone Café & Bakery)’ |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