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이 느리고 고요한 연주를 하는 이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
영화 속에는 인생이 있다 『씨네프레소』
거장들이 느리고 고요한 연주를 하는 이유 『살아 있는 것은 모두 게임을 한다』
500년 전 튜더 왕조 시절 영국 남성은 셔츠 전체를 덮는 재킷을 입었다. 일을 하지 않아 셔츠를 쉽게 깨끗한 상태로 관리할 수 있었던 신사들은 깃과 소맷부리를 술로 장식하기 시작했고, 재단사에게 재킷에 긴 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입은 흰 셔츠가 얼마나 눈부신지 타인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셔츠가 더러워지기 쉬운 농부나 노동자와 자신을 분리할 수도 있었다. 블루칼라라는 말이 생긴 이유는 때와 기름 자국을 효과적으로 숨기기 위해 파란색 셔츠를 입어서였다. 말하자면 흰 셔츠는 남성들에게 공작새의 ‘긴 꼬리’ 역할을 한 셈이다.
![모시 호프먼, 에레즈 요엘리 지음 / 김태훈 옮김 / 김영사 펴냄](//img.mbn.co.kr/newmbn/white.PNG) |
↑ 모시 호프먼, 에레즈 요엘리 지음 / 김태훈 옮김 / 김영사 펴냄 |
긴 꼬리를 무기로 수컷들이 경쟁에서 비교 우위를 점하는 행동의 사례는 역사 속에서도 숱하게 많다. 고대 로마인은 모자이크와 도자기를 사랑했다. 페르시아인은 정원을 사랑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도자기, 비단, 병풍에 집착했다. 대중은 21세기로 와도 슈프림 티셔츠에 수십만 원을 지불하고, 롤렉스 시계에 수천만 원을 쓴다. 인간은 실로 화려한 물건을 좋아한다.
부를 과시하는 사치품의 인기가 직관적으로 옳다는 사실은 게임이론이 증명한다. 또한 사치품 유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기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값비싼 신호’ 게임은 마이클 스펜스와 암논 자하비가 개발했다. 두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 명은 발신자(수컷 공작)로 값비싼 신호(긴 꼬리)를 보낸다. 다른 한 명은 수신자(암컷 공작)로 발신자를 받아들일지 (짝짓기)거부할지를 선택한다. 수신자는 발신자의 유형을 알지 못하지만 암컷은 수컷이 신호를 보냈는지(꼬리가 얼마나 긴지)만 알 수 있다. 영화 로 알려진 존 내시가 개발한 ‘내시 균형’은 이 게임의 해법을 알려준다. 모든 수컷은 포식자와 기생충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건강한 수컷은 잘 피하므로 포식자의 위험이 덜하다.
“경제학자 모시 호프먼과 에레즈 요엘리가 MIT와 하버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론 강의를 책에 담았다.”
공작새만이 아니라 사람도 게임이론으로 움직인다. 이 책은 게임이론을 활용해 사소한 행동부터 조직의 의사결정, 유행과 트렌드, 환경문제, 전쟁과 국제 분쟁, 나아가서는 생물학적 영역의 번식과 진화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메커니즘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인간이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도, 익명으로 기부하는 것도, 하버드대 학위를 숨기는 겸손도 모두 게임이론이 설명해준다. 공작새가 꼬리를 뽐내는 것과 정반대의 선택이지만 자신을 감추는 것 자체가 값비싼 신호가 된다.
예술가의 경우 신호 감추기는 오히려 열성팬이 있을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거장이 될수록 성숙해지고 은근하게 작품을 풀어내는 것도 입지가 확고해졌기에 신호를 감추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공한 예술가는 상업적 성공보타 예술사나 미래세대에 영향을 미쳐 유산을 남기고 싶어 한다. 예술가들이 대중이 알아채기 어려운 작업을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영화 속에는 인생이 있다 『씨네프레소』
고민이 있을 때 영화 한 편을 보고, 여운에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나왔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주인공 프랭키 던은 까칠하고 괴팍한 복싱 트레이너다. 여 제자는 절대 안 받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끈질기게 체육관에서 연습하는 매기(힐러리 스왱크)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가르치며 마음을 내어준다.
![박창영 지음 / 미다스북스 펴냄](//img.mbn.co.kr/newmbn/white.PNG) |
↑ 박창영 지음 / 미다스북스 펴냄 |
서른두 살인 매기는 신인으로, 늦은 나이지만 성실했고, 가족에게 상처가 있었던 둘은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먹으려 가까워진다. ‘소중한 나의 혈육’이란 뜻의 ‘모쿠슈라’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면서. 많은 어려움을 딛고 스타로 성장한 제자는 더러운 경기로 유명한 상대와 싸우다 반칙을 당해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된다. 매기는 병상에 누운 자신의 모습에 절망감을 느낀다. 가족들이 전 재산을 가져가버리고 홀로 남은 매기는 진정한 가족으로 남은 프랭키에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 부탁한다. 여기서 이 작품은 존엄사라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이 영화가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라는 영화라고 정의한다. 프랭키가 모든 추상적인 윤리를 던져버린 채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게 사랑이라고 결론 내렸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영화 속에는 한
편의 인생이 녹아 있다. 38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인생에 관한 고민의 답을 찾도록 안내해준다. 작가는 예술성, 오락성을 기준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대신 감독과 작가가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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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