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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제공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많은 관심 속에 개봉했던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국내 흥행 성적이 참혹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8일 기준 60만 7,620명이 관람했습니다.
일주일 뒤 개봉한 <범죄도시3>가 645만 9,759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 나는 스코어입니다.
평론가들 반응 역시 좋지는 않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5점 만점에 별점 2점을 주며 '오리지널의 명장면들을 화려하게 재현한 뒤 뭍에 오르고부터는 내내 창백하게 늘어진다'고 했고, 박평식 평론가는 '때 낀 수족관 닦는 기분'이라 평했습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장 갑론을박이 오간 건 바로 주인공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 이슈였습니다.
자매그룹 '클로이 앤 할리' 출신인 그의 가창력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 세태를 중심으로 환영하는 여론이 있는 한편, SNS 상에서는 할리 베일리를 인어공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인 '낫마이에리얼(NotMyAriel)' 해시태그 문구가 전파되기도 했습니다.
인어공주 하면 으레 하얀 피부에 빨갛고 긴 머리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흑인 인어공주는 어릴 적 책이나 영화에서 흔히 본 이미지는 아니기에 어색한 건 사실입니다.
과연 할리 베일리는 인어공주 배역을 맡기에 적절하지 않은 건가요? 그렇다면, 할리 베일리를 대신할 다른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챗GPT를 향해 누구를 선택할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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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 챗GPT 캡처 |
첫 번째로 꼽은 제니퍼 로렌스부터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릴리 콜린스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아나 디 아르마스까지.
챗GPT의 추천 리스트에 오른 배우는 하나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배우들입니다. 할리 베일리 같은 흑인 배우는 없습니다.
챗GPT는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학습 된 결과물에 따라 답변을 내놓습니다.
챗GPT 역시 인어공주에 대한 고정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걸까요? 더 나아가 흑인 인어공주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인종차별주의' 가치관을 은연중에 학습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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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제니퍼 로렌스, 시얼샤 로넌, 마고 로비, 릴리 콜린스, 아나 디 아르마스 / 사진 제공 = EPA, 그린나래미디어,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AFP |
인어공주 캐스팅 논란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제작사 디즈니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디즈니는 "할리 베일리는 놀라운 인기를 끌고 있고,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며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관객 자신의 문제"라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논쟁 자체가 '인종차별적 관점'을 담고 있다는 것이 디즈니의 입장입니다.
반면,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으로 해석되는 'PC주의'를 실천하느라 원작을 훼손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PC주의'는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사상입니다.
원작을 무시하고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할리우드식 잘못된 관습을 비판하는 이른바 '화이트 워싱'의 반대개념으로, 백인 캐릭터를 흑인으로 바꾸는 행위를 비꼬는 '블랙 워싱'이란 단어도 등장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인어공주>가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놓고 '인종차별적 비판'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한국 관객이 <인어공주>를 외면하는 이유를 단순히 인종차별 하나로 해석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에 가깝습니다.
누구든 인어공주 하면, 어릴 적 애니메이션을 통해 본 그때 그 시절 붉은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에리얼을 떠올립니다.
할리 베일리와 우리 상상 속 인어공주 사이에 '괴리감이 있다'고 말하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표현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에리얼은 인어입니다. 전 세계 바닷속을 어디든지 수영할 수 있는 인어라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누구라도 인어공주가 될 수 있습니다.
원작자인 덴마크인이 흑인일 수 있는 것처럼 에리얼도 충분히 흑인일 수 있는 겁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흑인 인어공주가 가능하냐 아니냐'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관객들의 인식을 더욱 성숙하게 변화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발자취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다빈 디지털뉴스 기자 chung.dabi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