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영국 『가디언』지는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19 시대의 예술가인가?’라는 기사를 썼다. 고립, 단절이 만연한 당시, 호퍼가 재조명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시선은 ‘무관심으로 흘려버리는 평범한 것’에 오래 머문다. 호퍼의 그림은 내면의 자화상이고, 그 모습은 우리와 닮았다.
↑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 × 122.2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0.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Hopper, Edward |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주 나이액에서 태어나 예술가로 성장했다. 뉴욕예술학교에서 삽화와 회화를 배우고 1924년까지 광고 표지 제작 등 상업화가로서 활동하며 에칭etching 판화 작업에서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았음에도, 오랜 기간 무명 작가에 머물다 동료 작가였던 아내 조세핀의 도움을 받아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20세기 미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포착한 그의 작품은 많은 화가는 물론이고 알프레드 히치콕, 마틴 스코세이지 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전시는 7개 섹션이다. ‘에드워드 호퍼’에서 그의 삶과 궤를 같이하는 자화상과, 드로잉 등을 통해 성장해 가는 그의 모습을 살핀다. 특히 자화상은 예술가로서의 자기 인식과 연습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파리’ 섹션에서 1906년부터 1910년 사이 호퍼가 세 번에 걸쳐 파리에 체류하며 파리의 건축물, 강과 다리 등을 그리며 독자적 화풍을 갖추어가는 모습을 따라간다. 그는 야외 작업을 하며 빛의 효과에 대해 눈을 뜨고 화폭을 사선이나 평행으로 가르는 대범한 구도의 작품을 시도했다.
다음은 ‘뉴욕’ 섹션. 1908년 이래 뉴욕에 정착한 호퍼는 대도시의 급격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경험하며 도시의 풍경과 일상을 그림에 담았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삽화가의 권태로운 삶속에서, 호퍼는 선이 강조되는 판화 기법인 ‘에칭’을 시도한다. 에칭은 빛과 그림자를 연구하는 중요한 매체이자 이후 호퍼의 전성기 회화에 등장하는 주제와 구도의 초석이 된다. ‘뉴잉글랜드’. 1924년 조세핀과 결혼 후 뉴잉글랜드를 여행하면서 야외 수채화 작업을 시작한 호퍼는 이전보다 과감한 색채 사용과 명암 대비를 시도하며 암석 해안의 풍경을 묘사한다. 뉴잉글랜드에서의 시간은 도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눈을 뜨고 일상을 환기하며 영감을 채우는 계기가 된다.
‘케이프 코드’는 호퍼 부부의 제2의 고향이었다. 이 섹션에서 30여 년간 매해 머물던 이곳과 관련된 작품들에서 평범한 장소에 대한 호퍼의 독특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길게 펼쳐진 해안선과 고운 모래 둔덕이 있는 고요한 지역은 바쁜 뉴욕에서 벗어나 작업에 집중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호퍼의 삶과 업’ 섹션에서는 호퍼의 여행 기록, 생계를 위해 광고 회사에서 일하며 제작한 삽화 등 휘트니미술관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 110여 점이 소개된다. 특히 호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등 주요 작품은 물론 호퍼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한 최신 다큐멘터리 ‘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2022)도 상영된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그림 너머에 대한 상상, 나만의 시각으로 채우는 개인적 감상의 경험을 한다.
↑ 에드워드 호퍼, 〈서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 1917–20년경. 종이에 투명, 불투명 수채, 연필, 50.2×37.6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387.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Hopper, Edward |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 기간: ~2023년 8월20일 / 시간: 평일 10:00~20:00, 주말·공휴일 10:00~19:00 *매주 월요일 휴관
[글 김은정(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882호(23.6.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