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무용단 공연 ‘일무’가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지난 5월25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4회 중 3회 매진, 객석점유율 90.6%를 기록하며 한국무용의 새로운 획을 긋고 있는 ‘일무’는 오는 7월 뉴욕 무대에 오를 예정으로, 대표적인 K아트 콘텐츠로서 우뚝 설 계획이다.
↑ 서울시무용단 공연 ‘일무’(사진 세종문화회관) |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거행되는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음악과 노래, 춤을 말한다. 조상에게 한해 무탈하게 살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하고, 계속 잘 보살펴달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1425년 종묘에서 제례악을 듣던 세종대왕은 우리 음악으로 조상을 모시기를 원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종묘제례악을 탄생시켰다. 종묘제례악은 세조 때에 와서 현재 모습을 갖추고 종묘에서 사용되었다. 이러한 종묘제례악의 제례무를 일컬어 ‘일무(佾舞)’라고 지칭하는데, 하나로 열을 맞추어 춤을 춘다는 뜻이다.
500여 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기까지 단절되지 않고 전승되어 온 종묘제례악. 세종문화회관 제작공연 서울시무용단 공연 ‘일무’는, 이러한 종묘제례약의 전통을 유지하고, 현 시대에 맞게 진화시켜나가려는 도전에서 시작되었다. ‘일무’는 2022년 초연 당시 서울시무용단 정혜진 단장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힘을 합쳐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종묘 제례무를 모티브로 새로운 감각으로 해석해, 54명의 무용수가 하나의 무대(36mX33m) 위에서 펼쳐지는 대형 군무는 마치 한 폭의 큰 그림처럼 느껴질 정도(조선시대 종묘제례 일무는 6열 6행의 36명, 현재는 8열 8행의 64명으로 구성됐다). 초연 당시 한국무용으로는 이례적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4회 공연이 75%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는데, 무대 공개 이후 관람객들은 “종묘제례의 절도와 규범은 무용 군무에서 보이는 일사불란함과 절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멋진 몸짓과 궤를 같이 한다”, “국악 종묘제례악의 묘미에 흠뻑 빠져 매료된다”, “역동적이고 시선을 사로잡고 몰입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등의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 ‘일무’ 1막 ‘일무연구’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
↑ ‘일무’ 3막 ‘죽무’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
↑ ‘일무’ 2막 ‘궁중무연구’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
음악은 어떨까. 1막 ‘일무연구’에서는 총 15개의 악기(축, 박, 절고, 노래, 대금, 장구, 좌고, 아쟁, 어, 피리, 해금, 방향, 편경, 편종)를 사용하며, 콘트라베이스를 추가했다. ‘일무’의 음악 작업을 맡은 김재덕 안무가는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을 깎아서 아쟁인 듯 아닌 듯하게 사운드를 만들고, 국악기 경의 소리를 내기 위해 싱잉볼을 마림바 스틱으로 쳐서 소리 냈다. 그리고 녹음한 악기들 중에서도 고음 쪽을 담당하고 있는 태평소, 피리 같은 악기들의 소리를 빼서 무거운 느낌을 덜어냈다”고 밝혔다. 전통 국악기의 소리에 더해진 일렉과 어쿠스틱 사운드가 이질적이지 않고, 막이 진행될수록 전통에서 현대로, 미니멀하면서도 모던한 소리가 공연의 집중도를 높였다. 무대 음악은 연출가 정구호의 예술적 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연출과 디자인을 맡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는 ‘전통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추며, 이번 공연에서는 보다 미니멀하면서도 과감한 연출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 ‘일무’ 4막 ‘신일무(新佾舞)’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
1막 ‘일무연구’ -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문덕(文德)을 칭송하며 보태평(保太平) 음악에 맞추어 추는 문관의 춤 ‘전폐희문지무’(이하 문무)와, 역대 임금의 무공(武功)을 칭송하며 정대업(定大業) 음악에 맞추어 추는 무관의 춤 정대업지무(무무)이다. 이를 기반으로 기존의 안무와 대형을 유지하며 새롭게 재해석해 단순한 대형의 변화를 좀 더 현대적 응용•발전시킨 무대를 보여준다.
2막 ‘궁중무연구(宮中舞硏究)’ - 조선 순조 때 창작된 궁중무용인 춘앵전(춘앵무). 이는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생신을 기념해, 버드나무 가지에서 맑게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궁중연회 때 화문석 하나만 깔고 한 사람의 무기(舞妓)가 그 위에서 추는 춤으로,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이 특징. 공연 ‘일무’에선 궁중무의 꽃이며 일인무의 원형인 춘앵전을 연구하고 대형 군무로 확장한다. 또한 현대적인 음악에 기존의 안무를 새롭게 재해석해 화려한 춤사위와 대형변화, 다이나믹한 움직임 등을 보여준다.
3막 ‘죽무(竹舞)’ - 죽무는 수많은 대나무 장치 사이에서 긴 장대를 들고 추는 남성 군무다. 대나무는 절개와 충절을 상징한다. 이들은 서로 침해하지 않고 각자의 춤을 토대로 하나의 마음(합일)을 만든다. ‘일무’에서 죽무는 전통적 일무와 신일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장면으로, 신일무의 또 다른 정형성을 위해 내부의 응집력을 극대화하는 강렬한 힘을 보여주는 창작춤이다.
4막 ‘신일무(新佾舞)’ - 전통의 계승과 발전 뒤에 현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창작의 발전은 중요하다. ‘일무’의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는 4막에서는 안무는 물론 음악, 무대, 의상 등 일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미학을 새롭게 재해석하여 이 시대를 대변하는 일무의 현대적 언어를 선보인다.
↑ ‘일무’ 4막 ‘신일무(新佾舞)’ 장면(사진 세종문화회관) |
‘일무’는 ‘썸머 포 더 시티(Summer for the city)’ 내 ‘코리안 아츠 위크(Korean arts week)’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뉴욕 공연은 무대 조건에 맞춰 39명의 무용수로 꾸려져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서울의 예술적 역량과 함께 K-컬처에 이어 K-아트의 정수와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일무’ 뉴욕공연 포스터(사진 세종문화회관) |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