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개봉
작중 ‘김파마’를 등장시킬 정도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파마머리 대신 짧게 자른 머리로 무대에 선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 감독. 그는 “어른인 고길동에 공감하기보다는 둘리를 좋아했던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 둘리와 고길동을 동시에 품을 수 있길 바란다”며 마흔 살이 된 둘리와 27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하는 팬들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1996년 개봉했던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지난 24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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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간담회 모습 |
언론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김수정 감독은 “어른이 된 고길동에 공감하기보다는 천진난만한 둘리를 사랑했던 그때로 추억 여행을 떠나달라”고 이야기했다. 팍팍한 어른이 된 둘리 팬들이 잠시나마 동심을 찾길 바라서였을까. ‘아기공룡 둘리’ 탄생 40주년을 맞아 한층 선명해진 화질과 다채로운 색감, 원작의 의도를 완벽하게 되살린 화면비로 돌아온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은 지금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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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간담회 모습 |
<얼음별 대모험>은 우주로 스케일이 커졌다. 개성 강한 배경과 캐릭터들을 구상한 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는 대부분 할리우드 스타일의 판타지에 얹혀있는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우주는 어떨까 생각해봤다. 지금에야 우주 쓰레기가 현실적이지만 30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의 수준에서 우주에 뭐가 있을까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3세계, 우주 쓰레기, 핵충, 공중전화 등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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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간담회 모습 |
“마이콜, 고길동, 둘리, 우리 삶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 투영”
둘리가 이렇게 오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우주, 공룡 등 황당무계한 얘기라고 하지만 캐릭터의 성격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판타지도 있긴 하지만 기본 베이스는 ‘현실’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이 우리 곁을 오래 지키고 있는 비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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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전 공개된 김수정 감독의 친필 편지 |
고길동은 외전으로라도 선보일 계획이 있는가?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2009년도 TV시리즈 이후 준비하던 극장판이 무산됐다. 그 작업을 출판만화로 만들어 빠르면 계획은 내년쯤 찾아갈 것 같은데, 그 작품 속에서 길동 씨의 역할이 뭔가 이야기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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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둘리도 7세 전후의 아이들이 생각하고 요구할 수 있는 패턴을 생각하고 그려냈다. 그리고 영희 철수가 다니는 학교, 동네 하천 등도 내가 자취생활을 한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결국 어떤 누구다라고 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삶의 한 모습이 투영됐다고 보는 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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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최근에 <슈퍼마리오><슬램덩크> 등 슈퍼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 재산권) 日 애니메이션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둘리야말로 슈퍼 IP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새로운 극장판이나 OTT 개봉 계획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분위기에서 죄책감을 느꼈다. 새로운 웨이브를 끌어내지 못한 것도 무척 죄송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과 상황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상황이 좋아지고, 애니메이터, 관계자들 모두 좀 더 열심히 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둘리가 나왔을 때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은데. 한국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많이 정체되고 어떤 부분에선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느껴진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시장의 문제인데 애니메이션 제작에 소요되는 제작비가 만만치가 않다. 제작비 대비 흥행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느냐를 많은 부분에서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지원도 원활하게 안되니 투자자들이 제작해서 이익을 못 남기니까 자연스럽게 재투자가 안된다. 그러다 보니 발전될 수 있는 기술적 노하우가 쌓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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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반대로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무엇인지.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 웹툰이 아마 그 기조가 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지만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은 정체된 느낌이 있다. 반면 한국의 웹툰이나 웹소설은 자유롭다. 그게 애니메이션으로 바로 이어진다면 멋진 작품들이 많이 나올 거고, 그것이 아마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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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간담회 장면 |
둘리는 애니메이션 중에서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지킨 가장 훌륭한 예로 뽑힌다. 최근 <검정고무신>의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故이우영 작가님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더 일어날 소지가 있다. 애니메이션은 우리 때만 해도 1인 체제였지만 이젠 모두 협업이라, 서로 간의 이해 관계가 많이 얽힐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작가들이 계약서를 좀 냉정하게 바라보고 사인을 했으면 좋겠다. 표준계약서가 있어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동물을 보호하는 현재의 문화라면 둘리와 고길동 잘 살 것”
둘리가 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와 같이 사는 것처럼, MZ세대는 이해 못하는 1980~90년대 사회 현상이나 문화가 작품 속에 많은데. 40년 전 둘리는 고길동 집에 무단으로 들어오고, 싫어하면서도 얼굴을 붉히며 같이 살았다. 나였어도 집에 둘리 같은 이상한 동물이 들어왔다면 어떻게든 내쫓았지 못 키웠을 것이다. 사실 40년 전에도 그 고민은 했다. 고길동은 왜 둘리와 정체불명의 친구들까지 키우고 있는지, 당위성을 줘야 했다. 그래서 고길동의 외조카 ‘희동이’를 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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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
둘리 나이였던 독자들이 이제 고길동 나이가 됐을 텐데, 어떻게 작품을 보면 좋겠나? 둘리를 좋아하고, 고길동을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세대인데, 시간이 흘렀다고 배신을 때리면 안된다(웃음). 둘리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천진난만했던 그때로 다시 한번 돌아가 줬으면 좋겠다. 둘리, 고길동은 똑같고, 각자의 입장이나 환경만 변했을 뿐이다. 모든 것을 잊고 그냥 한번 추억 속으로 빠져 보면 어떨까. 다시 한번 길동 씨와 둘리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추억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있다면? 만약 (작품을)하게 되면 2013년에 극장 개봉하려다 실패한 <방부제 소녀들의 지구 대침공>(가제)이 될 것 같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데 둘리와 친구들이 의도치 않게 막아내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만화책으로 나오게 되면, 이후 다시 한번 논의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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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