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팬데믹 이후, 영화계 기대감 상승
극장 입장료의 상승, 생각보다 높은 장벽
요즘 극장에 가보면 사람이 없다. ‘휑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왜 그럴까? 이제 진짜 극장은 죽은 건가? 그토록 많은 이들을 웃고, 울리던 영화라는 판타지 공장이 문을 닫아야만 하는 건가? 대체 우리네 극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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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팬데믹 이후, 극장에 대한 기대감 상승
팬데믹은 많은 산업에 족쇄를 채웠다. 특히 뮤지컬, 공연, 영화 등 폐쇄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하는 산업에 채워진 구속장치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뮤지컬이 죽네, 연극이 사망하네, 영화산업이 심폐 소생술에 돌입했네. 이런 말이 떠돌았다. 지난 3년간 그래왔다는 이야기다. 팬데믹이 끝났다. 다시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대중들은 명배우의 뮤지컬을 보기 위해 티켓 오픈런을 한다. 팝 가수 해리 스타일스의 내한 공연 표는 초대권도 없이 수만 명을 공연장에 모았다. 오는 6월에 개최될 브루노 마스의 잠실 주경기장 2회 공연 티켓은 순식간에 마감됐다. 2회에 무려 10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운집할 공연인데도 그랬다.
최근 주중에 영화 한 편을 보러 극장엘 갔다. 나 역시 꽤나 오랜 만의 극장 나들이였고, 꽤나 기대했던 영화 관람이다. 맙소사. 주중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좋은 시스템을 나 혼자 독점하는, 개인 전용관인 마냥 관객이 없었다. 사실 팬데믹 기간 동안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감염이라는 위험성을 안고 뛰어드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사회적 거리 두기의 공포가 거대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장이라는 우리 시대의 주요 놀이 공간이 손 안의 OTT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그에 대한 ‘썰’을 풀어냈었다. 물론 OTT 플랫폼의 가파른 성장세가 극장 산업을 위협했고 실제로 그리 되었음은 거부할 수 없는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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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사진 매경DB) |
특히 한국의 경우는 을 필두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를 팬데믹 기간 동안 쏟아냈다. 그 눈부신 성과를 이룬 대부분의 인물들은 유명한 영화 감독이거나, 굉장히 잘 알려진 시나리오 작가이거나, 혹은 지상파 TV를 휩쓸던 유명 작가들이었다. TV에서 벗어난 시리즈들이 기존 TV에서 담아내지 못했던 소재 혹은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그려내면서 OTT 속 콘텐츠들은 수많은 이들에게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분리해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어떤 플랫폼도 범접하지 못할 시스템을 갖춘 극장이란 공간을 통해 오랫동안 관객을 사로잡아온 총체적 예술이다. 그것들이 모바일 화면 속으로, TV 화면 속에서 재생된다 한들 광활한 스크린과 육중한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매력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요즘 극장에는 사람이 없다.
한편에선 영화 자체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비판을 가한다. 정작 극장에 가도 볼 만한 영화가 없음을 한탄하는 거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통계에 비춰보면 팬데믹이 종식된 현재의 상황 속에서 그 결과를 영화 자체의 부실함으로 탓하기엔 불충분하다. 꼭 1년 전 우리는 <범죄도시2>의 놀라운 흥행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상황에서 1번 타자로 타석에 섰던 <범죄도시2>는 단숨에 관객 1,200만 명 이상을 불러들이며 극장가에 새로운 희망을 비췄다. 이제 앞으로 호재만 가득할 것이라 예상했다.
극장 입장료의 상승, 생각보다 높은 장벽
결과는 정반대였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즉 2023년 1/4분기까지 극장 관객은 과거의 절반이었다. 물론 2022년 1/4분기에 비해 2배 증가한 건 맞다. 그나마 여기에는 올 초 인기를 끈 일본 애니메이션 2편의 힘이 컸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이 그 주인공들이다. <아바타: 물의 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 매니아> 등도 2023년 첫 3개월의 극장을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런데 말이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 매니아>의 만듦새를 떠나 이 작품의 미국 흥행 결과를 보면 한국 극장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북미 시장 기준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이 작품은 첫 개봉 주 수익 1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미국 박스오피스는 주로 수익으로, 한국 박스오피스는 관객 수로 주로 집계한다). 2015년 개봉되었던 <앤트맨> 1편의 5,723만 달러, 2018년의 속편 <앤트맨과 와스프>가 기록한 7,581만 달러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그런데 같은 시기 국내 개봉의 경우 전체 관객 155만 명으로 그쳤다. 한국 시장에서 <앤트맨> 3편은 완전히 참패한 셈이다. 이 비교는 북미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극장은 팬데믹 이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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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이쯤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극장이 극장을 죽이고 있다’라고 말이다. 혹시 주말에 영화관에 가본 적 있는가? 팬데믹 이후 지금까지도 극장에 한 번도 안 가본 이들이 수두룩할 것이라 생각한다. 2023년 현재까지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영화진흥위원회통계상) 약 3,000만 명 선이다. 한국의 전체 인구를 떠올려봤을 때 여전히 극장에 안 간 이들이 많다는 걸 증명한다. 각설하고, 극장이 극장을 죽인다는 명제를 내놓은 건 바로 극장 입장료 즉, 영화 티켓값 때문이다. 얼마 전, 토요일에 영화를 한 편 예매하고자 극장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IMAX관에서 보려 하니 1인당 무려 2만 원, 사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프라이빗 관에서 보려 하니 1인당 5만 원이었다. 한국영화 신작 <드림>을 선택하니 일반관은 1인당 1만5,000원, 조금 특별한 전용관에서 보려 하니 1인당 4만5,000원에서 5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극장에서 주말 관람을 하려면, 최소 2인의 관람료가 3만 원이 필요하다. 발 편하게 뻗고 볼라치면 10만 원이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영화만 보는가? 팝콘과 음료 등의 간식을 곁들이면 2인 기준으로 최소 4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예상외로 많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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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영화 티켓값이 얼마인지 기억하는가. 프라임 시간(보통 주말 황금시간대) 기준 1만2,000원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초입부터 극장은 텅텅 비기 시작했다. 아예 영업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었다. 점차 제약이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하자, 극장은 소수 인원으로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가격을 1,000원 인상했다. 그게 대략 2020년 10월부터다. 그리고 2021년 4월 즈음 2차 인상이 있었다. 이제 주말 프라임 시간대 기준 영화 입장료는 1만4,000원이 됐다. 그리고 1년 후인 2022년 4월, 1,000원을 또 인상하는 3차 인상이 있었다. 그 후 1년간 프라임 시간대 영화 관람료는 1만5,000원으로 굳어졌다. 이 인상을 두고 극장 측은 ‘영화 산업 부흥을 위해’라는 전제를 내걸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걸 억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영화 산업이 부흥되기 위해서는 극장에 많은 사람이 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입장료는 꽤나 부담스러운 장벽을 세운다.
OTT의 막대한 콘텐츠 월 사용료, 극장 영화 한 편 값
혹시 OTT 플랫폼을 정기구독하고 있는가? 나의 경우도 몇 개의 플랫폼을 구독 중이다. 가장 유명한 넷플릭스를 기준으로 나는 현재 프리미엄을 사용하고 있고, 월 1만7,000원 정도를 지불한다. 한 편의 영화 가격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내가 누릴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극장 개봉작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OTT에서 판권을 구입하여 자신들의 플랫폼에 업로드한다. 이 기다림의 시간이 1개월이냐 1년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간 관객들은 이 비교치에 굉장히 익숙해졌다. 심지어 팬데믹 시대에 이미 제작해 두었던 한국영화들이 적재되어 있다. 쉽게 말해 개봉하지 못하고 창고에 묻혀 있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감독과(주로 영화에 집중하던) 배우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로 OTT 오리지널 영화와 시리즈다. 심지어 TV 채널에 편성을 받은 드라마들(이들 대부분 역시 주로 OTT와 결탁되어 방송과 동시에 플랫폼에 업로드 되는 경우가 많다)까지 눈을 돌렸다. 새로운 환경은 충분한 자본과 시간을 제공한다. 드라마 제작 현장 역시 예전과 달리 사전 제작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다. 그러니 영화에만 굳이 집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몇 편씩이나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주 좋은 작품이 아니라면 굳이 또 영화에 출연할 필요가 없어졌다(언제 개봉할 지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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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픽사베이 |
그러니 결코 드라마에서 보지 못할 것 같던 배우 송강호도 배우 활동 30여 년 만에 시리즈 <삼식이 삼촌>에 출연한다. 최민식도 <카지노>를 찍었다. 김지운 감독의 경우도 곧 넷플릭스 시리즈 촬영에 돌입한다. 아, 물론 이들은 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찍는다. 이와 같은 산업적 관계성 속에서 한국영화는 점차 위축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영화를 개봉하던 간에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쉽게 극장 문턱을 넘어설 필요성이 있다. 인건비 상승, 시설 부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극장 운영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 한 명이라도 더 극장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절실하다. 나는 그것이 지난 3년간 ‘영화 산업을 위해’라는 명제 하에 입장료를 3차례 인상한 극장들의 티켓 가격에 대한 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묵혀 있는 영화들도 OTT 플랫폼에 개봉도 못한 채 판권을 넘기기보다는 극장에 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극장에 들어오는 게 쉬워지면 그 이후의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좋으면 흥할 것이고, 나쁘면 망할 것이다. 그렇게 극장은 관객들에게 평가의 잣대를 쥐어주어야 한다. 그것이야 극장이 극장을 죽이지 않고,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연일 미디어를 통해 불황과 불경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이제 해외 여행도 검역 제한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으니 소비자들은 지출할 분야가 예전처럼 확대됐다. 그런 와중에 상식적으로 비싸게 느껴지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헛되이 비용을 지출할 여유가 없다.
소비자가 생각하는 극장 요금은? 1만 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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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사진 매경DB) |
영화진흥위원회의 한 조사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시점이다. 바로 ‘귀하는 영화 티켓 1장 구매 시 얼마까지 관람가격을 지불하고 관람할 의사가 있으십니까? 통신사, 신용카드사 할인 등을 받을 수 있다면 실 지불 금액을 기준으로 응답해주세요’라는 것이다. 이에 남성은 대체로 1만 원에서 1만2,000원 미만, 여성은 5,000원에서 8,000원 미만이라는 응답을 했다. 이를 종합했을 때 소비자가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그래서 영화 티켓 한 장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적정 금액은 8,000원에서 1만 원 선이 가장 많았다.
1만 원에 비해 1만5,000원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큰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극장 안과 극장 밖에서 추가로 지불해야 할 또 다른 기회 비용까지 고려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데이트를 한다 치자. 할인을 받아 1만 원 정도에 티켓값이 정해지면, 2인 기준 2만 원이다. 극장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위해 약 1만 원 정도 지불한다고 가정하자. 그럼 3만 원이다. 하지만 현재 프라임 시간대에서는 4만 원이 된다. IMAX나 프라이빗 전용관은 일단 선택의 문제로 남겨둔다고 해도 말이다. 1만 원의 차이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크다. 한 달 OTT 플랫폼 구독료만큼이기 때문이다.
극장이 극장을 죽인다는 꽤 ‘쎈’ 발언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극장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입장료가 비싸기 때문에 관객들이 감소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되려 한국 영화를 한국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제공되지 않는다. 동시에 가격이 비싸서 관객이 오지 않으니, 배급사들도 선뜻 자신들의 영화를 극장에 공급
하지 않는다. 이런 현재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건 어쩌면 파격적인 가격 인하 조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을 때 어쩌면 다시금 극장이 활력을 되찾고, 팬데믹 이전의(우리가 상상하는) 그 극장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0호(23.5.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