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세 종류다. DSLR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 그리고 자동 필름 카메라까지. 세 종류의 카메라는 적재적소의 순간에 등장한다. 무게감이 헬스장 경량 아령 못지않은 DSLR은 취재를 할 때나 출사지에 갈 때, 가끔 어깨 운동을 하고 싶을 때 등장하고, 아이폰 카메라는 맛보다 비주얼이 압도하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 풍경, 여행지 등이 주 사용처다. 그렇다면 필름 카메라는 언제 등장할까. 바로 평범한 일상에서 뜻밖의 순간을 마주할 때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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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에 이어 기자가 사용 중인 ‘오토보이2’ |
기자도 필름 카메라 유행에 탑승했다. 필름 카메라는 내 일상에 예상치 못하게 다가왔다. 내가 요즘 들고 다니는 자동 필름 카메라(똑딱이 카메라) ‘캐논 오토보이2’(aka.오토보이)는, 어머니가 소싯적 종로구 청계천 주변에 있는 카메라 상점을 여기저기 다니며 구매한 제품이다. 출시된 해는 1983년으로, 그 나이를 고려해보자면 오토보이는 나보다 높은 연식을 가진, 그야말로 ‘어르신’인 셈이다(물론 1980년대 이전의 역사적인 브랜드의 필름 카메라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소년 급이다). 오토보이는 기자의 돌잔치, 초·중학교 졸업식, 가족 여행을 함께 했고 그 순간을 담았다. 그러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 카메라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오토보이는 자연스럽게 역사의 뒤편이자 서랍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세월에 삭아버린 카메라 파우치를 조심스레 열었다. 카메라 곳곳에는 손때가 묻고 흠이 나 있지만, 튼튼한 몸체의 오토보이는 아직까지 소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렌즈 커버를 여는 순간 생겨났다. 전원이 깜깜 무소식이었다. 건전지를 새것으로 바꿔봐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를 읽는 중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문제의 원인은 카메라를 그토록 아무렇게나 보관한 기계 문외한 가족들이었다. 카메라가 오랜 시간 서랍에 잠들고 있었던 만큼, 그냥 넣어둔 건전지가 부식돼 누액이 된 것이다.
결심은 여기서 멈추어야 할까? 그래도 낙담은 금물! C사부터 K사, F사까지 카메라 브랜드들이 즐비한 남대문과 종로의 전자 상가, 수리점 몇 군데를 찾아 다닌 결과 한 곳에서 부품이 남아 수리가 가능하다는 얘길 들었다. 결과적으로 수리와 청소 끝에 오토보이는 다시 한번 제 기능을 찾을 수 있었다.
본격 필름 카메라 입문 전, 필름 카메라를 주제로 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클래스에선 필름에 대한 지식과, 수동 카메라와 자동 카메라의 차이, 시대별 대표적인 카메라, 필름을 넣는 방법, 카메라 작동법, 촬영 시 피사체 구도 잡는 법, 적정 노출을 찾는 법 등을 간단하게 배운 뒤 출사까지 나가보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날 짧게나마 필름 카메라에 대해 배우며 느낀 건, 24~36장의 필름 컷 수를 하루에 다 찍기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 수많은 필름 카메라는 저마다 역사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고 손맛 역시 확실히 다르다는 것, 또 DSLR이나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느껴보지 못한 ‘느림의 미학’이 필름 카메라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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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이승연 기자) |
각설하고, 인화된 사진과 필름을 두 손에 올려놓고서야, 촬영 당시 내가 어떤 뷰로, 어떤 감정으로 피사체를 바라보았는지 회상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옛 앨범을 열어 보듯이. 필름 카메라는 필름 수가 한정돼 있다 보니 다회 촬영이 어렵다. 한컷 한컷 (비싸진 필름 값만큼이나) 신중하게 사진을 찍고, 필름을 다 쓰고 나면 이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잠깐의 기다림을 가져야 한다. 뽑아보기 전까지는 그 결과물을 알 수 없다. 적정 노출이었는지, 내 손은 떨리지 않았는지, 구도는 맞았는지…. 그 사이의 기대감과 즐거움 역시 필름 카메라만의 매력일 것이다. 컴퓨터 드라이브 속 수십, 수백, 수천 장의 디지털 사진이 메모리를 차지하며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광경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달의 표면도 찍을 수 있다는 시대에, 필름 카메라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만큼 올드한 비주류 문화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도, 핸드폰 카메라도, 그리고 필름 카메라도 저마다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도 나는 취재를 할 때는 아령 급의 DSLR을 어깨에 짊어지고, 맛집에서는 핸드폰을 꺼내 든다. 그리고 평소
[글과 사진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9호(23.5.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