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관광지의 경우 여행 온 외국인이 대다수다 보니 여행자의 입장에서 로컬의 삶을 직접 보고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유럽에서 서유럽까지 히치하이킹을 계획한 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그 출발이었다. 그들이 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예측할 수 없지만 불확실한 여정이 확실함을 가져다 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낯선 나라 낯선 도로 위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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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테오라를 100km 남겨 둔 지점에서 시도한 히치하이킹 |
과거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히치하이킹을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유럽은 처음이다. 게다가 오직 히치하이킹만으로 여정을 이어가는 계획을 세운 것도 처음이다. 유럽에서 히치하이킹은 비교적 대중화된 여행 수단이다. 여기에 여정을 함께할 동행자가 곁에 있었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절호의 기회에 올라탔다. 남유럽에서 서유럽까지, 과거나 역사도 좋지만 그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듣는 상황을 꿈꾸며. 이 기사는 히치하이킹 여행을 추천한다거나 찬양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엇이 맞고 틀리다기보다는, 한 사람이 실제로 겪은 ‘하나의 경험’에 더 큰 힘이 실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모든 경험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니며, 낯선 도로 위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 채 낯선 이를 기다렸던 모든 순간은 그것 자체로 여행의 의미를 새로 쓰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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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오니소스 극장 2.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전경 3. 아크로폴리스의 상징 파르테논 신전 4.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
세계적으로 오래된 도시,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 철학의 도시, 고대 그리스 문명의 꽃이자 모든 유럽 국가들의 문명 요람이 된 본거지, 바로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다. 아테네 도심 남쪽에 해발 150m로 우뚝 솟아 있는 아크로폴리스에서 역사적 도시의 면면을 둘러보는 것에서 히치하이킹 여정을 시작했다. 서양 초기 문명의 기념비적 건물인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를 모시기 위해 9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이곳은 현존하는 그리스 시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적지로 꼽히며, 아크로폴리스의 상징이자 그리스 예술의 정수로 여겨진다.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진 기원전 5세기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절정에 다다른 시기로서, 그 위용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당시 이곳에 수십 년간 계속해서 여러 대리석 건축물이 세워졌다.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에레크테이온 신전, 아테네 니케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도심을 벗어나면 금세 ‘관광’에서 자유로워진다. 일년 내내 전 세계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도심의 신타그마(Syntagma) 광장을 벗어나 지하철을 타고 30분가량 이동했을 뿐인데 조금 전까지 내 주변을 둘러싼 인종과 국적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없다. 지하철 1호선 북쪽 종점인 키피시아(Kifissia)역에 도착해 인근 로컬 동네와 현지인들을 하나둘 마주치고 나자 어느새 찬란한 고대 도시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아테네 외곽의 한산한 도로를 찾기 위해 키피시아역을 택한 일행과 나는 E75번 도로로 이어지는 지점까지 2~3㎞ 정도 걸어 이동했다. 우리가 계획한 이날의 최종목적지는 북쪽으로 약 350㎞ 떨어진 메테오라(Meteora). 하지만 계획이라기보다 바람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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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드리아누스 문 2. 대리석 안내판 (아래사진)아크로폴리스 전경 |
몇 시간째 큰 도로와 작은 도로, 대형마트 주차장, 주유소 등 여러 번 장소를 바꿔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지만 북쪽으로 향하는 차량은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앞에 멈춰선 차량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몇몇 운전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위해 멈춰서긴 했으나 그들의 말인즉슨, 그리스에서 히치하이킹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소견이 대부분. 한때 국가부도 사태 이후 그리스에선 정부는 물론 사람 간의 불신이 깊어져 누구도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차량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예상보다 훨씬 험난한 여정이 되겠구나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상황에서 빨리 걷기를 기대해서야 되겠는가? 상황이야 어찌됐든 시도는 계속되었다. 시계는 오후로 바뀌었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인내는 쓰나 열매는 분명 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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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수도원, 아크로폴리스 전경,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전경 |
우리가 세운 나름의 히치하이킹 규칙은 이랬다. ▲일단 달리는 차가 설 수 있도록 여유공간을 반드시 확보한 후 시도할 것. ▲비교적 차량이 한적한 도로 위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 ▲같은 방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우리를 태워주려는 운전자에겐 정중히 거절의사를 밝힐 것. 마지막 규칙은 운전자의 친절을 의심해 우리에게 해가 될까 두려워 만든 건 아니다. 그저 이 여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히치하이킹이 운전자와 여행자의 ‘동행’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오래가진 않았다. 길 위에서 한동안 에너지를 쏟아낸 뒤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만난 프랑스인 운전자에 의해 세 번째 규칙은 와장창 깨져버렸고, 우리는 그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차를 타고 E75번 도로와 맞닿은 북쪽 7㎞ 지점까지 이동한 후 도로 진입로에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새로운 장소에 우리를 떨궈준 운전자는 핸들 방향을 돌려 자신이 사는 키피시아로 돌아갔고, 그 지점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탁월한 감이 작용한 덕분인지 말라카사(Malakasa)로 향한다는 운전자의 차량에 쉽게 올라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히치하이킹이 통하지 않는 복잡하고 분주한 고대 도시를 빠져나갔다. 그리스 사람들은 절대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차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거라던 한 현지인의 주장은 이내 신빙성을 잃었다. 낯선 이방인과의 동행을 허락한, 말라카사를 향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리스인 운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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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 시계방향)도모코스 마을의 풍경, 메테오라를 100km 남겨둔 지점에서 진행한 히치하이킹, 말라카사까지 동행한 현지인 차량, |
“그리스에서 IMF 사태 이후 사람들 사이에 불신이 깊어진 건 맞아요. 특히 당시 평생직장이라 여긴 곳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넘쳐났죠. 나도 그중 한 명에 속했고요. 그땐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암울하기만 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까 꼭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어요.”
“어떤 면에서요?”
“많은 것을 겪었지만 그중 가장 행복했던 건 여행이 가능한 현실을 찾았다고 할까요?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너무나 걸어보고 싶었지만 직장인한테 주어지는 휴가 기간으로는 터무니 없잖아요. 실천할 수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1 하드리아누스 문 2 대리석 안내판3 아크로폴리스 전경 4 말라카사까지 동행한 현지인 차량 해고 당하고 몇 달 지나고 나서 오랫동안 함께한 여자친구로부터 갑작스레 이별통보까지 받고 나니까 제정신으로 못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어렵사리 오랜 계획을 실행에 옮겼어요. 그때도 갈까 말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아마 지금까지 계속 직장을 다녔다면 산티아고 근처에도 못 갔을 거예요. 그냥 노트에 적힌 계획 중 하나로 남아 있을 거예요. 실천할 수 없는 계획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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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수도원, 아크로폴리스 전경,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전경 |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운 점, 깨달은 점 등을 주로 얘기하던데요.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여행을 갔으니 그런 점들이 더 크게 와 닿았을 것 같아요.”
“지금 다시 간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때 내겐 순례길이 전혀 고난과 역경의 길이 아니었어요. IMF 당시의 현실보다 내게 더한 고통은 없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걷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신은 한번에 한 개의 고난만 줘요. 순례길에서 배운 가르침이죠.”
약 800㎞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모두 정복한 뒤 그리스로 돌아와 곧장 아테네 생활을 청산했던 그는 현재 고향에서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농부로 전향한 것 또한 IMF 사태가 선사한 그의 삶에 불행 중 다행의 하나라고 그는 말했다. 약 15㎞를 함께 달렸던 짧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동행은 곱절의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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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도깨비 뿔처럼 생긴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는 메테오라 (아래) E90번 도로 주변에서의 히치하이킹 |
간밤 도모코스(Domokos) 마을에 도착해 아크로폴리스에 텐트를 쳤다. 짙은 어둠이 깔린 시간인 데다 초행길이었지만 말라카사에서 만나 이곳까지 우리와 동행해준 운전자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상세한 설명과 이정표를 따라 높다란 언덕길을 오르고 나자 키 큰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목 좋은 캠핑 스폿이 여행자를 환영했다. 과거 이곳에서 몇 번 텐트를 쳐봤다는 그녀의 경험에서 비롯된 안내였다. 운전자와의 동행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로까지 이어진다. 그녀도 텐트가 날아갈 듯 세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을까? 숲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알아가는 경험은 그녀도 나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자연에 감사와 존경을 전하며 최선을 다해 여행자의 흔적을 말끔히 지운 채 다시 도로 위에 선다.
메테오라까지 약 100㎞ 남겨둔 지점에서 히치하이킹은 어쩌면 식은 죽 먹기에 가까운 듯 보였다. 겉보기엔 그랬다. 경험상 도시보다 소도시나 마을일수록, 또 도로의 폭이 좁은 왕복2차선 도로일수록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의 수는 적을지 몰라도 운전자를 만날 확률은 월등히 높았다. 양보단 질에 승부수를 던지는 셈이다. 우선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차량이 나타날 때까지 도로 위에 열심히 두 발자국을 찍어내는 일이다. 차량은 둘째치고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매우 고요하고 적막한 시골마을 산책은 그것 나름의 재미를 안긴다.
건넛마을에 산다는 그리스인 운전자와 함께 우회전 도로가 나타나는 약 15㎞ 지점까지 함께 달렸다. 그리곤 다시 그곳에서 메테오라까지 가는 두 명의 스위스인을 만났다. 그들도 우리처럼 그리스에 여행 온 여행자들이었다. 짧은 일정 탓에 아테네에서 차를 빌려 후다닥 이곳저곳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운전 중에 갓길에 여러 번 차를 세운 뒤 차량 밖에서 담배를 피웠는데(담배 연기로 인해 렌터카를 더럽혀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흡연을 하지 않는 나로선 고맙게도 청정지역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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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수도원 |
그리스 북부에 자리한 메테오라는 ‘매달린 바위’라는 뜻을 가진다. 약 6000만 년 전 형성된 자연 경관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물과 바람에 의한 풍화 작용과 지진으로 쪼개진 독특하고 거대한 바위 첨탑과 기암절벽을 형성했다. 9세기경 최초의 정교회 수도사가 메테오라를 찾았다고 전해지며, 이후 14~16세기에 걸쳐 바위 정상 위에 25개의 수도원이 건설되면서 유럽에서 규모가 큰 정교회 수도원 공동체로 각광받았다. 현재 6곳의 수도원만 대중에 공개되고 실제 수도사와 수녀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기둥처럼 생긴 기암절벽은 해발 약 200~500m 높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마치 도깨비 뿔처럼 드넓은 벌판에 하나둘 불쑥 솟아 있는 형태다. 바위 정상에서 바라다본 수도원은 아주 먼 옛날 아찔한 절벽 위에 어떻게 건물이 세워졌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오로지 신과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이곳 환경이 수도생활에 가장 큰 편의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히치하이킹이 위험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시선은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사고 때문일 것이다. 계획은 있으나 그것이 지켜질지 확실치 않은 상황, 게다가 우리의 엄지손가락에 동조해줄 운전자를 만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 무엇보다 운전자를 만난다 한들 계획이 계획대로 이어질지 확실치 않은 상황까지도. 하지만 비단 히치하이킹만 그러할까? 어쨌든 첫 번째 목적지였던 메테오라에 두 발자국을 찍었으니 하나의 불확실성은 지워졌고, 우리와의 동행을 허락한 여러 명의 운전자를 거쳐왔으니 또 하나의 불확실성도 날려버렸고,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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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르푸섬에서의 캠핑, 2. 코르푸섬 중심지의 모습. (아래 사진)코르푸 섬의 아름다운 해변 |
메테오라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도심 외곽 E92번 도로 주변에서 ‘알바니아’라고 쓴 보드판을 손에 들었다. 물론 엄지손가락과 함께. 우리의 계획은 서쪽으로 이동해 국경을 넘는 것. 요아니나(Ioannina)까지 이어지는 E92번 도로에서 북쪽으로 알바니아 국경까지 E853번 도로를 타고 이동하는 것. 국경까지는 150㎞ 남짓 남았다. 여기서부터 운전자와의 동행은 어렵지 않았다. 역시 소도시라서 우리의 엄지손가락이 운전자들 눈에 포착되기 용이해서였을지도. 하지만 인근에 거주하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라 이들에 의해 짧게는 5㎞, 길게는 10㎞ 이동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차량에 엉덩이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 끝에 요아니나까지 30㎞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다행히도 알바니아인 운전자를 만났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알바니아가 목적지가 아닌 알바니아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그리스 북서부에 있는 해안도시 이구메니차(Igoumenitsa)에서 배를 타고 코르푸(Corfu)섬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코르푸섬에 가지 않을래요? 여기서 요아니나까지 갔다가 북쪽으로 이동해서 국경을 넘는 것보단 차라리 코르푸섬에서 배를 타고 알바니아 사란더(Sarande)로 가는 게 나을 거예요.” 지도를 확인해보니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는 이구메니차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코르푸섬에 닿은 뒤 다시 그의 차를 타고 중심부까지 이동했다. 결국 하나 남은 불확실성은 그렇게 여행자의 경험으로 완성되었고, 계획에도 없던 섬에서의 일정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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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푸섬의 해변 |
코르푸섬은 그리스 땅이지만 지도상에서 보면 알바니아와 매우 인접해 있어 알바니아에 속한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섬 북동쪽 반도 끝에서 케르키라 해협을 지나 알바니아 크사밀(Ksamil) 해변까지는 불과 3㎞ 거리다. 이 정도라면 헤엄쳐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지 않을까? 두 나라의 국경을 넘기 위해 계획에도 없던 두 번의 배를 타야 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워 딱히 소요시간이랄 것도 없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사란더 선착장을 빠져 나와 한참을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차량이 지나갈 때면 재빨리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호텔이 나란히 줄지어선 분주한 거리를 지나칠 무렵 남쪽으로 가는 현지인 운전자 차량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운전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지명을 연거푸 반복해서 우리의 목적지를 정확히 알리는 것뿐. 손짓발짓 섞어가며 어렵사리 소통을 이어가던 중 한국에서 왔다는 내 말에 그는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질문을 건넸다. “North?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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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부터)크사밀 해변, 고대 도시 부트린트국립공원, 사란더에서 만나 부트린트국립공원까지 함께 이동한 현지인 운전자. (아래 사진)뗏목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자라 마을로 이동했다. |
그는 백미러로 또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름을 아주 정확히 내뱉고는 “South?”라고 되물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름을 묻는 건가 싶어 답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맞았다. 부트린트 국립공원(Butrint Archaeological Park)에 닿기까지 10여 분 동안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대화의 시작과 과정은 대부분 서로가 긴가민가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감은 매번 통했다.
남유럽의 발칸반도 서부에 위치한 나라, 알바니아. 최남단 코르푸 해협 동부에 전략적으로 자리한 고대 도시 부트린트 국립공원은 알바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 중 하나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베네치아, 오스만 기념물과 함께 살아남은 극장과 로마 포럼, 초기 비잔틴 세례당 등이 지중해 문화와 함께 자리한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이 고대 도시에는 담수호와 습지, 탁 트인 평야, 갈대밭과 섬을 배경으로 1200종 이상의 동식물이 더불어 살아간다.
해가 지기 전 잠잘 곳을 찾
※유럽 히치하이킹 여정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