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1일이면 그가 떠오른다. 홍콩 영화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영원한 청춘으로 남은 배우 장국영(張國榮 Leslie Cheung, 1956~2003). 그는 현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한 시대를 이끈 예술가로서 주목받고, 또 생전에 남긴 작품들 역시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남긴 것을 키워드로 살펴본다.
↑ 영화 ‘이도공간’ 스틸컷(사진 (주)모인그룹)(매경DB) |
4월1일, 소위 만우절으로 불리는 날은 가벼운 거짓말로 유쾌한 장난을 치곤 하는 날이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난 남자가 있다. 바로 장국영이다. 그는 2003년 4월1일 46세의 나이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장국영의 죽음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우절이라 그의 사망 소식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중국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의 날’을 뜻한다). 장국영은 생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갑작스러운 소식에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은 2005~2006년 건물 보수를 거쳤지만, 아직까지도 매년 3월31일과 4월1일 자정까지 호텔 정문에 장국영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보내온 백합(장국영이 좋아했던 꽃)과 편지, 그의 생일날 도착하는 선물 등을 모아 그를 추모하는 전시 공간을 마련한다고 한다.
↑ 홍콩의 쇼핑몰 올림피언 시티의 장국영 20주기 추모 공간 ‘Timeless Leslie Encounter’(사진 시노그룹) |
홍콩의 대표 배우로 꼽히지만 장국영은 본래 가수로 데뷔를 했다. 가수인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가 직접 부른 <영웅본색2>의 OST ‘분향미래일자’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장국영은 1977년 아시아 가요제에 참가해 ‘아메리칸 파이America Pie’를 불러 2위로 입상하며 본격적인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다. 1년 뒤 영화 <홍루춘상춘>(1978)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경력을 쌓아갔다. 노래 ‘MONICA’로 가수로서 성공의 가도에 올랐고, 1980년대 홍콩의 가왕 3인방(장국영, 알란 탐, 매염방)으로 우뚝 섰다.
영화 <영웅본색>(1986) 시리즈에서 직접 부른 OST ‘당년정’, ‘분향미래일자’는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지금까지도 ‘당년정’의 도입부 가사 ‘헹 헹 씨우 씽 쪼이 와이 워 썽 완 뉜(가벼운 웃음 소리, 나에게 따스함을 주고)’을 따라서 부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장국영은 1989년 콘서트를 통해 은퇴 선언을 하고 1990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1992년 영화 <가유희사>를 통해 배우로 복귀해 예술영화 등에 주로 출연하며 지금의 장국영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5년 앨범 [총애]를 통해 가수로도 복귀하며 다양한 히트곡을 내놓았다.
↑ 영화 ‘영웅본색’ 리마스터링 포스터(사진 조이앤시네마) |
※ About 알란 탐·매염방과 장국영
장국영과 알란 탐은 1980년대 중후반 홍콩 가요계의 최대 경쟁자로 꼽힌다. 알란 탐과 장국영 팬들 간에 적대감이 점점 심해지기도 했다. 알란 탐은 1988년 모든 가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고, 장국영은 1989년 은퇴 고별 콘서트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매염방은 홍콩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영웅본색3>, <신조협려>, <성룡의 미라클> 등이 대표작. 장국영과 친분이 깊은 인물로, 함께 영화에 출연하거나 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장국영이 떠난 해인 2003년 12월 매염방은 병으로 40세의 나이에 작고했다.
↑ 영화 ‘매염방’ 스틸컷(사진 부산국제영화제, 2021) |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영화 <아비정전> 아비(장국영)의 대사 中)
↑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스틸컷(사진 조이앤시네마) |
장국영의 학창 시절 영어 이름은 본래 ‘바비’였지만, 배우 생활 이후 ‘레슬리 Leslie’로 불리게 된다. 장국영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이 짝사랑하는 ‘애슐리’ 역의 배우 ‘레슬리 하워드’를 좋아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팬들 사이에선 ‘꺼거’, ‘꼬고’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천녀유혼>에서 함께 출연한 배우 왕조현이 당시 장국영을 ‘꺼거’(형, 오빠를 뜻하는 말 ‘哥哥거거’의 광동어 발음)라고 부르게 된 것이 계기라고.
↑ 영화 ‘해피 투게더’ 리마스터링 포스터(사진 (주)엔케이컨텐츠) |
1980~1990년대 중반까지 홍콩 영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에서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영국의 통치 하에서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던 당시 홍콩 영화계는 무협, 쿵후, 홍콩 느와르 등 폭 넓은 장르를 선보일 수 있었고, 배우 홍금보, 성룡, 이연걸, 유덕화, 주윤발, 양조위, 왕조현, 여명 등의 스타급 배우들이 홍콩 영화 산업을 이끌어갔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 <영웅본색>, <천녀유혼>(1987)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장국영 역시 마찬가지. 그의 영화 대표작을 꼽아보면 <열화청춘>(1982), <아비정전>(1990), <종횡사해>(1991), <패왕별희>(1993), <금지옥엽>(1994), <동사서독>(1994), <해피 투게더>(1997), <이도공간> (2002, 장국영의 마지막 유작) 등이 있다. 1997년 중국에 홍콩반환이 확정되었고 점차 홍콩 영화계가 쇠퇴기를 맞으며 흥행 역시 많이 줄었지만,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붐을 이끈 장국영은 가수이자 배우로서 연출, 연기 등의 실력을 키우며 이후 영화 감독도 도전했다. 하지만 이는 영원한 꿈으로 남게 되었다.
장국영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통해 아시아 스타로 떠올랐지만, 최고 배우로서 자리매김한 계기는 왕가위 감독과 첸 카이거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하면서부터다. ‘왕가위, 첸 카이거의 페르소나’라는 수식어로 불릴 정도였다. <패왕별희>는 첸 카이거 감독이 선사하는 환상적인 미장센과 아름다운 스토리, 장국영의 삶과 닮은 혼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왕가위 감독과는 영화 <해피 투게더>, <동사서독>, <아비정전>을 함께 했다. 덧붙여 <아비정전>의 경우 한국 개봉 당시 수입, 홍보사의 잘못된 포스터 제작 때문에 <영웅본색>이나 <열혈남아> 같은 액션물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느와르, 액션영화인 줄 알았다!”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고.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왕가위와 장국영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흰색 메리야스(표기상 민소매러닝, 러닝셔츠 등이 맞지만, 영화에선 메리야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분위기로, 기사에 해당 단어로 소개한다), 짧은 팬티,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를 한 채 거울 앞에서 흐느적흐느적 맘보춤을 추는 ‘아비’(영화 <아비장전> 中). 당시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는 앳되지만(사실 영화 촬영 당시 장국영은 30대였다) 쓸쓸하고 권태로운 인물로, 영화에서 맘보춤을 추는 모습은 진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 밖에도 홍콩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키스신으로 남아 있는 <천녀유혼>의 ‘섭소천’(왕조현)과 ‘영채신’(장국영)의 수중 키스신, 공중전화에서 피를 흘리며 수화기 너머 아내에게 아이의 이름 ‘송호연’을 이야기하는 <영웅본색2>의 공중전화 박스 장면, 아르헨티나에서 춤을 추는 ‘보영’(장국영)과 ‘아휘’(양가위)의 <해피 투게더> 속 탱고 춤 장면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 영화 ‘해피 투게더’ 스틸컷(사진 (주)엔케이컨텐츠) |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 장국영 추모 20주기를 맞이해 4월1일 재개봉됐다. <패왕별희>는 경극을 사랑한 두 남자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경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영화다. 극중 장국영은 ‘두희(데이)’와 경극 패왕의 연인 ‘우희’ 역을 맡았는데, 남성성, 여성성이 공존한 인물이자 예술 속에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하며, 두희가 곧 장국영이라는 평을 받았다. 영화 <패왕별희>는 전 세계에 장국영의 이름을 알렸고,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과 1994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25개 부문 수상, 9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재개봉 포스터 속 ‘시간이 가도 추억은 남는다’, ‘그 이름, 그리운’이라는 카피는 배우 장국영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포스터(사진 조이앤시네마) |
장국영의 팬들은 그의 생전 함께 했던 오랜 팬들을 비롯해, 세상을 떠난 뒤 생겨난 새로운 팬들도 있다. 도서 『아무튼, 장국영』(오유정 저) 속 저자는 장국영 팬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89년 가수 은퇴 이전의 팬들을 1세대 팬으로, 그 후 활동 세대의 팬은 2세대 팬으로 정의한다. 반면 장국영의 활동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렸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팬이 된 이들을 3세대 팬으로 구분한다. 이들을 중국어로 장국영 팬을 뜻하는 ‘영미’와 구분해 ‘후영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중국판 위키피디아인 바이두에서도 이것이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라고. 1990~2000대생인 그들은 온라인과 미디어로 장국영을 알게 된 세대이다. 그들은 장국영의 영화와 노래에 매료돼 그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를 스타가 아닌 예술가로서 정의한다. 또한 마초적 남성이미지가 우세였던 전통적 남성상에 대한 관념이 무너지며, 팬들은 장국영의 다양한 매력과 함께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속 인물, 또는 노래 가사를 통해 그가 남기고자 한 주체적 자아의식의 메시지를 주목한다.
그의 유작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물을 통해 한국 팬들 역시 나름대로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온라인에서는 그 시절 장국영, 그 시절 홍콩을 그리워하는 팬들의 영상이 넘쳐난다. ‘자니윤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 한국 예능프로그램 출연작을 비롯해, 장국영 노래를 모아 편집한 ‘장국영이 흐르는 음악’, ‘홍콩을 기억하며’ 등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등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홍콩 여행을 온 듯한 장소들도 주목해보자. 용산구에 위치한 ‘꺼거’와, 창신동 ‘창창’은 홍콩을 콘셉트로 한 맛집이다. 올드타운 홍콩의 감성을 담으며 2030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바Bar ‘춘광사설’의 경우 왕가위 감독, 장국영, 양가위 등이 함께 한 영화 <해피 투게더>의 원제 <춘광사설 春光乍洩(구름 틈으로 잠깐 내려온 봄 햇살)>을 한국식 발음 그대로 가져온 가게다. 이곳은 현재 주말에만 팝업 형태로 운영 중이다(예약제). 가게 곳곳에 장국영, 양조위의 사진과 함께 <해피 투게더>, <패왕별희> 등의 홍콩 영화 포스터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매경DB, 각 영화 스틸컷, 조이앤시네마, (주)엔케이컨텐츠, 시노그룹, (주)모인그룹, 부산국제영화제
참고 및 발췌 도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주성철 저 / 흐름출판 펴냄), 『아무튼, 장국영』(오유정 저 / 코난북스 펴냄)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