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서까래 아래 아쿠아마린 블루 컬러의 벽돌이 진시황을 지키는 병마용처럼 늠름히 서 있다. 창호지를 바른 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리 조각을 관통한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4월16일까지 ‘유리 구슬 조각’으로 유명한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새로운 시리즈 ‘Wonder Blocks’을 공개한다.
![]() |
↑ 국제갤러리 한옥 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Wonder Blocks》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
공중에 떠 있는 대형 진주 목걸이, 벽에 박힌 유리 벽돌, 물에서 추출한 원자들을 구슬처럼 꿰어 놓은 모양.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작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의 조형 언어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있다면, 형태적인 면에서는 ‘구슬’과 ‘육면체 벽돌’, 재료적 측면에서는 ‘유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블록 형태의 작품들이 중심이다. 낱개의 유리 벽돌들이 모여 하나의 블록을 완성하게 되는데, 유리 벽돌은 이번 신작 ‘Wonder Block’뿐만 아니라 벽에 설치되는 〈Precious Stonewall〉과 〈Oracle〉 시리즈까지, 장-미셸 오토니엘에게 오랫동안 작품 창작의 근간이 되는 요소였다.
벽돌에 대한 작가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90년대 초 오토니엘은 유황, 왁스, 유리 등 쉽게 모양을 변형할 수 있되, 언제든 원래의 상태로 회귀 가능한 가역성을 띤 재료들로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유황으로 덮인 테라코타로 만든 벽돌 작업 ‘유황 벽돌(La Brique de soufre)’(1990) 등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인류 문명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벽돌은 작가에게도 핵심적인 조형 요소로 자리매김 해온 소재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유리 벽돌은 조형적으로 한발 더 도약한다. 정제되고 단순한 미니멀리즘 조각들은 더 이상 벽에 걸리는 형태가 아닌, 작품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형태로 변화되어 작품 자체의 독립성을 강조한다.
![]() |
↑ 국제갤러리 한옥 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Wonder Blocks》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
이번 전시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열린 《NEW WORKS》전, 2022년 6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의 개인전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에 이은 세 번째 한국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오토니엘은 ‘Wonder Block’이라는 동일한 작품 제목 아래 작품들을 선보인다. 5개의 큰 조각들을 한옥의 뷰잉룸 공간에, 5개의 작은 조각들은 한옥 내의 작은 서점에서 각각 선보인다. 덕분에 관객들은 다면적인 형상과 서로 다른 크기의 작품들을 다양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오토니엘의 작업을 구성하는 유리 벽돌은 인도의 특정 지역인 피로자바드(Firozabad)에서만 생산되는데, 이곳의 피로지 블루(Firozi blue) 색상은 인도권에서 오래 사랑 받아온 컬러다. 언젠가는 자신의 집을 짓겠다는 희망으로 벽돌을 쌓아두는 인도 사람들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이번에도 피로자바드 유리 공예가들과 협업해 만든 작품을 선보인다. 수공으로 입으로 불어 만드는 전통 방식의 유리 벽돌은 하나하나씩 모양과 흠집, 빛깔이 미묘하게 다르다. 투명한 유리가 아닌 미러 글라스(mirrored glass)는 주변의 채광을 반사하며 색상 본연의 매력과 의미를 한껏 발산한다. 환상적인 빛이 일렁이는 한옥 공간에서 작가가 창조해낸 ‘원더랜드(Wonderland)’를 충분히 만끽해 보자.
![]() |
↑ 국제갤러리 한옥 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 《Wonder Blocks》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
1964년 프랑스의 중동부 생테티엔(St. Étienne)에서 출생한 장-미셸 오토니엘은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설치 미술 작가다. 1989년 프랑스 파리-세르지고등미술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985년부터 조각, 설치, 미디어 작품 등으로 꾸준히 전시활동을 이어 간 그는 유황을 소재로 한 조각 작품으로 19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참가하면서 현대미술가로서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다. 2000년에는 파리 지하철 개통 100주년을 기념하여 팔레 루아얄-루브르 박물관 역에 무라노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지하철 입구를 제작한 작업 ‘야행자들의 키오스크(Kiosque des Noctambules)’를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2015년에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아름다운 춤(Les Belles Danses)’를 영구 설치하여 동시대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 |
↑ 장-미셸 오토니엘(b. 1964) 〈Wonder Block〉 2022 Aquamarine blue and pink Indian mirrored glass, stainless steel 20 x 22 x 2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Othoniel Studio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 |
2019년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작업한 작품 ‘루브르의 장미(La Rose du Louvre)’가 현대미술가의 작업으로는 이례적으로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오토니엘은 휴스턴 현대예술박물관(2019), 캉 미술관(2019), 조르주 퐁피두 센터(2018), 그랑 팔레(2017), 팔레 드 도쿄(2015), 배스 미술관 (2014) 등 유수의 기관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파리 퐁피두 센터,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하여 뉴욕 MoMA, 뉴욕 공립도서관,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 서울 리움미술관, 상하이 유즈 미술관,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오토니엘의 작품은 일단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구슬, 벽돌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빛을 영롱하게 내뿜는 입면체를 만들어 내는 오토니엘. 벽돌의 반복되는 패턴과 소재가 주는 그 익숙함 때문에 관객들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다가도 깨지기 쉬운 유리라는 물성이 지닌 불안과 수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유리의 흔적에 새겨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 |
↑ 장-미셸 오토니엘(b. 1964) 〈Wonder Block〉 2023 Aquamarine blue and pink Indian mirrored glass, stainless steel 120 x 33 x 33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Othoniel Studio 이미지 제공: 국제갤 |
이번엔 게다가 전시 장소가 흰 벽으로 가득한 정육면체 갤러리가 아닌 나무와 종이가 가득한 다각형의 ‘한옥’이다. 이탈리아와 인도 어딘가에서 봄직한 파랗고 빨간 유리 벽돌들이 한옥 안에 담겨 있는 모습 그대로 이질적이면서도 생경한 ‘활기’를 선사한다. 작가가 포착한 직관의 순간, 작품의 이름을 인식한 뒤 그 영감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 유추해보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장-미셸 오토니엘 개인전《Wonder Blocks》>
-전시 기간: 2023년 3월10일(금)~4월16일(일)
-전시 장소: 국제갤러리 한옥
[글 박찬은 기자(park.chaneun@mk.co.kr) 사진 및 자료제공 국제갤러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1호(23.3.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