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내면과 삶의 본질을 통찰하며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자유 의지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해석이 가능하고 이는 현대적 재창조가 가능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사진 쇼노트) |
운명에 괴로워하지만 사랑 앞에서 결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던 로미오와 줄리엣. 과연 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혹시 셰익스피어가 진짜 경험한 사랑이 아닐까. 이 유쾌한 상상에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 바로 1998년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이다. 제작자이자 작가인 마크 노먼과 극작가 톰 스토파드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베를린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시상식을 휩쓴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로켓맨’ 등을 쓴 영국의 작가 리홀에 의해 무대극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에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영국국립극장의 연출가 디클란 도넬란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극장 풍경을 섬세하게 재현해냈다.
1593년 런던, 대본을 쓰는 가난한 작가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에델, 해적의 딸’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다. 그러던 중 연극 오디션에서 토마스 켄트라는 이름으로 남장을 한 부자 상인의 딸, 비올라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극단에 캐스팅한다. 연회장에서 본래의 모습을 한 비올라를 우연히 만난 셰익스피어는 한눈에 그녀에게 반하지만 비올라는 이미 가난한 귀족 웨섹스와 정혼한 사이.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극단에 들어온 토마스 켄트가 비올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싹튼다. 비올라와의 사랑을 통한 영감으로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기 시작한다. 한편, 배우들 가운데 당시 엄하게 금지된 여자 배우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 로즈극장에서는 비올라의 신분이 들통 나고 극장은 폐쇄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실제 역사와 허구의 세계를 재치있게 배열한 극은 그 속에 특별한 상상력을 입혔다. 고전 속 줄리엣과 달리 비올라는 관습에 굴하지 않고 여성에게 금지된 배우라는 직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주인공 로미오 역할을 획득하는 등 주체적 여성으로 등장한다.
극은 셰익스피어의 실제 인생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에 따라 ‘로미오와 줄리엣’ 속 장면들 그대로 무대에 펼쳐진다. 무도회에서의 두 사람의 첫 대면, 발코니에서의 사랑 고백 등이 셰익스피어와 비올라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극의 재미는 곳곳에 숨어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찾는 것이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베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은 ‘베니스의 상인’을, 웨섹스 경이 비올라의 아버지와 결혼을 흥정하는 모습은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엿보인다. 또한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보낸 사랑시를 비롯해 소네트의 시 구절 등이 두 사람의 대화에 등장하며 관객들을 낭만의 16세기로 안내한다. 또 하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이다. 요절한 천재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 로즈 극장을 운영하며 극장 경영론의 기초를 만든 필립 헨슬로, 영국 최초의 남성 극단 ‘팸버레인스 멘’의 네드 앨린과 글로브 극장의 경영자이자 배우 리처드 버비지, ‘백마’와 몰피 공작부인‘을 쓴 극작가 존 웹스터 등 실존 인물들이 그럴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다양하고 무엇보다 처음 연극 무대에 서는 김유정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기간: ~2023년 3월26일
시간: 화,
출연: 셰익스피어 – 정문성, 이상이, 김성철 / 비올라 – 정소민, 채수빈, 김유정 / 페니맨 – 송영규, 임철영 등
[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쇼노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0호(23.3.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