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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코 미술관 주제 기획전 <일시적 개입> 철수 작업 [사진=아르코 미술관] |
아르코 미술관에서 지난 1월까지 폐기물 나눔과 관련한 주제 기획전 <일시적 개입>이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전시가 끝난 작품은 그 뒤에 어디로 갔을까요?
<일시적 개입>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아르코 미술관이 자원 순환 문제를 논하기 위해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인 '어디가든'과 국내 문화예술노동자들이 모인 예술가 콜렉티브 '피스오브피스'가 협업하면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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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코 미술관 주제 기획전 <일시적 개입> 철수 물품 [사진=아르코 미술관] |
전시가 막을 내린 뒤, 총 여섯 작품에 쓰였던 26개의 목재 테이블, 선반 등의 물품이 폐기되지 않고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자투리 재료를 모아 판매하거나 리폼을 해온 피스오브피스가 전시장에서 사용한 가구와 카페트를 수거해간 덕분입니다.
어디가든은 전시에 사용된 흙을 사연 신청을 받아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코코넛 껍질을 분쇄해 얻은 흙인 '코코피트'는 유기된 햄스터의 보금자리로, 또는 분갈이를 위해 쓰이게 됐고, 남는 흙은 어디가든의 협력 농가로 보내졌습니다.
아르코 미술관은 특히 올해 5~6월 기후 변화·탄소 저감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미술관 매뉴얼'의 공개를 목표 삼아, 매뉴얼 작성의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미술관 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워크숍을 수차례 진행했습니다.
매뉴얼은 확정 전이지만, 아르코 미술관 관계자는 MBN 취재에 "탄소배출량이 가장 크게 발생하는 부분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 부문이었다"며 "때문에 올해 평균 전시 기간을 65일에서 3개월 2주로 늘렸고 관련 내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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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하반기 융복합페스티벌 <땅속 그물이야기>. 해외작가의 설치 작품 3건이 항공 운송되는 대신 국내에서 제작되고 전시 폐기물은 서울재활용플라자로 기증돼 [사진=아르코 미술관] |
또 전시 폐기물을 관련 단체나 소재 은행에 기증하고, 리플릿 등 홍보물은 오프라인 제작 대신 온라인 노출을 지향하는 내용 등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르코 미술관은 실제 2019년 1만 2천부 이상이던 리플렛을 지난해 4천부까지 줄였습니다.
전시장에 비치했던 리플렛을 소독해 재활용한 재활용률도 자체적으로 약 20%로 집계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매뉴얼 작성을 위해 미술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축가와 지속 가능한 예술을 고민하는 예술가 콜렉티브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또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산하 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의 '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환경 실천을 위한 툴킷(2021년)'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그린뉴딜 가이드북(2021년)' 등을 자체 매뉴얼을 만드는 데 주요하게 참고했습니다.
국제박물관협의회는 유네스코의 협력 기관입니다. 지난해 프라하 총회에서 박물관(미술관)의 정의에 '지속 가능하고 항구적'이라는 표현을 추가한 기관이기도 합니다.
아르코 미술관 관계자는 "사설 미술관마다 사정도 다르고, 시설과 인력 등 한계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절대 '다 따라해라'는 식은 아니지만, 매뉴얼이 참고가 되어 영감을 주거나 릴레이식의 선언이 이뤄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 툴킷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3개월 2주 이상으로의 전시 기간 연장, 예술품 연구와 소장품 구매 업무를 원격으로 할 직원의 고용, 쓰레기 분류 관련 내부 기준 정립 등의 해결책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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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근현대미술관위원회(CiMAM)의 <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환경 실천을 위한 툴킷(2021년)> [사진=CiMAM] |
명확한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우기 위해 참고할 만한 기관도 소개돼 있습니다. 먼저 미술관에 적용할 수 있는 탄소 배출 계정 지표(항공편 이용, 운송, 에너지 사용 등)와 측정 툴을 영국의 갤러리 기후연합(GCC)이 웹사이트에서 제공합니다.
영국의 비영리 기관인 기후중립(Climate Neutral)은 온실 가스 배출 감출 기관에 기후 중립 증명서를 내줍니다. 미국에서 설립된 비랩(B Lab Global)에서는 비콥(B Corporation) 인증제를 통해 기관의 사회, 환경적 성과를 측정해줍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유엔 기후 중립국의 회원(Climate Neutral Now)으로 등록해, 자발적으로 매년 실천과 실적을 보고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 미술계가 지속 가능성과 관련한 가이드북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사례는 여전히 드뭅니다. 때문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가이드북도 참고할 만한 지점이 많습니다.
이 책자에선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측정한 사례로 SK 사회적가치연구원이 언급됩니다. SK 사회적가치연구원이 사회 문제 해결 성과를 화폐 가치로 측정하고 보상하는 사회 성과 인센티브제(Social Progress Credit)를 운영하는 방식이 안내된 것입니다.
작품도 소개됩니다. 영국 테이트 현대 미술관(Tate Modern)은 소비 중심인 연말 풍경에 문제 의식을 갖고 제작된 자전거 8대의 동력으로 들어오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독일 칼스루헤예술매체센터(ZKM)는 버려진 전자기기를 재활용한 디자인을 전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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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테이트 현대 미술관(Tate Modern)과 독일 칼스루헤예술매체센터(ZKM)의 전시 작품 [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국내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쓰레기로 뷔페를 구성하는 '쓰레기 뷔페'를 전시하고, 문화도시 제주와 아트랩티가 방치된 담수화장에서의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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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2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이쯤 되면 국내 미술계에서 '탄소 중립'이 화두로 떠오른 시기가 궁금해집니다.
한 미술 관계자는 "그동안 탄소 중립과 관련해 일부 개별 전시들도 있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 주도한 <미술관-탄소-프로젝트>가 계기가 되어 기관 간의 시그널링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라운드 테이블에 아르코 미술관 임근혜 관장과 김진국 삼성문화재단 미래혁신팀 팀장, 김성태 리움미술관 수석 디자이너와 국내외 교수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프로젝트 발표 결과와 함께 탄소배출량 산정 결과를 집대성한 146쪽의 자료집을 출간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소배출량, 태양광 발전 현황, 매장의 LNG 가스 사용량 현황 등은 물론, 다른 기관들이 참고할 만한 해외 미술관의 탄소 배출량 산정 사례와 갤러리 기후 연합(Gallery Climate Coalition)의 캠페인 등이 정리돼 있습니다.
현실적인 고민들, 예를 들어 조립식(모듈형) 가벽이 전시 폐기물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벽이 없는 경우 덧대서 쓰게 되는 석고보드의 재활용은 아직까지 전문업체가 많지 않다는 등의 내용도 흥미롭게 읽어 볼 만한 포인트입니다.
전문가들은 미술관의 ESG 경영은 기업의 ESG처럼 표준화, 제도화 절차를 거치는 대신 미술관 간의 연대나 자율 실천을 통해 확산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인증을 위한 인증'이 될 수 있어, 미술계의 탄소 배출량 인증제는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ESG 경영에 익숙하지 않은 미술관이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면, 앞서 언급된 리플릿의 디지털화와 자원 재활용, 환경 대책 전문가 고용 등 타 기관의 선례들을 찾고 관련 공공 전시를 기획하면서 첫 단추를 꿸 수 있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도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관람객의 참여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학예사는 최선의 전시를, 작가는 자신의 의도에 맞는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기를 바라는 만큼, '국가계약법' 또는 책임운영기관지표 등에서 탄소 배출 감소에 대해 언급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입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