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 미술 애호가들과 관람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는 대형 전시들이 일찌감치 오픈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타들과 셀럽의 애장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부터,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표지로 이름을 알린 알버트 왓슨의 사진전,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까지. 일부 전시는 빠른 예약이 필요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하니 서두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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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포토파크) |
‘셀럽이 사랑한 Bag&Shoes’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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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럽이 사랑한 백앤슈즈 ‘마이클 조던’ 섹션 전경(사진 이승연 기자)11 |
우리가 사랑하는 스타들과 셀럽의 애장품은 항상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요소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와 스포츠 스타, 해외 저명인사의 패션 소장품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다. 셀럽 자신의 자아 표현의 심미적인 수단이며 아이템 자체가 자신을 나타내는 강한 상징성을 담고 있기 때문. 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세종미술관이 셀럽들의 패션 애장품을 미술관의 전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전시한 ‘셀럽이 사랑한 Bag&Shoes’전이 바로 그것. 세종문화회관과 이랜드 뮤지엄의 공동주최로, 이랜드 뮤지엄이 30년간 수집한 소장품 50만 점 중에서 세계적인 스타와 유명인사의 신발과 가방 등 패션소장품 200점을 엄선한 전시다.
전시장 1관에 소개되는 섹션들은 이번 전시의 취지를 대표하는 곳이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리더스’ 섹션,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영국 최초의 여성총리 마가렛 대처의 소품들이다. 정치가들이 입는 옷들은 그 나라의 패션 산업 등을 보여주는 요소다. 이 섹션에선 마가렛 대처를 ‘강력한 여성 리더’로 만들어준 핸드백, 드레스, 구두, 의복 등 패션 아이템을 통해 리더의 철학과 신념을 엿볼 수 있다. 마가렛 대처가 좋아했던 로얄 블루 컬러는 영국 보수당의 부흥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로얄 블루 컬러의 실크 플로럴 드레스와 새틴 햇 등 마가렛 대처의 패션 아이템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 착용자의 권력과 성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비언어적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각료회의 때 테이블 위에 둔 핸드백의 경우 그녀가 ‘그곳에 있음’을 증명하는 표시로, 그녀가 공석이어도 회의를 속개했다고 전해진다. 핸드백이 마가렛 대처를 상징하는 만큼 그녀의 ‘핸드배깅Handbagging’ 제스처는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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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렛 대처의 의상(사진 이승연 기자) |
‘역사적 유행어’ 섹션에서는 18세기 로코코 시대에서 20세기말까지의 각종 액세서리들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18C 로코코, 19C 빅토리아, 20C 초 벨 에포크 시대에는 고혹적인 신발과 가방들이 등장했지만,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에는 스타일보다는 되도록 오래 쓸 수 있을 만큼 질기고 심플하지만 견고한 디자인이 나왔다. 1960~70년대엔 서구사회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기존질서에 대한 환멸이 사회 내부에서 다양한 형태의 혁명으로 표출되면서 히피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세대에 대한 불만, 상처 등을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하이힐 부츠와 발목 부츠 등 소품과 색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전시 1, 2관에서는 전설적인 스포츠 스타 마이클 조던이 1990년대 NBA를 평정했던 시카고불스 시절 착용했던 유니폼과 농구화 에어조던 13, 마이클 잭슨이 1983년 ‘빌리진’ 공연에서 착용한 문워크 무대의 시퀀스(스팽클) 재킷과 로퍼·페도라, 그리고 밥 딜런, 레이디 가가, 캐서리 햅번, 비욘세, 마돈나 등 할리우드 슈퍼스타들의 신발 및 가방 등을 공개한다. 셀럽들의 패션 소품이 당대의 사회 문화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이 되어 있었다.
• 패션 뮤지엄의 미래를 꿈꾸다
이랜드 뮤지엄의 애장품이 국내외에 많이 알려지면서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명품 패션 브랜드 등에서 전시 참여 요청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소장품들 역시 희귀성과 가치적인 면에서 해외의 유명 뮤지엄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 같은 소장품을 모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경매가를 알면 미술품 못지 않게 높은 가격들이다. 우리가 아는 실제 인물들이 착용하고 입고, 서사들을 만들어낸 물품들은 계속해서 가치가 오른다. 셀럽이 사용한 ‘물품’이 아닌 하나의 작품, ‘피스’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아카이브인 셈. 샤넬과 프랑스, 아르마니와 이탈리아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자, 서사가 되는 것처럼, 구두 하나로도 수천 수만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특별 도슨트를 맡은 패션 크리에이터 김홍기는 “여기 있는 소장품 중 일부가 빅토리아 뮤지엄 등 대형 뮤지엄에 대여가 되는 피스다. 이 정도의 소장품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과 패션 소장품 맞교환 등을 통해 더 멋있는 주제로 선보일 수 있는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패션 뮤지엄’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최근 컬렉터나 리셀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김홍기 크리에이터는 전시 관람 포인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전시에서 거론되는 인물들이나, 서구에서 지속적으로 경매장에서 소장품이 팔리고 있고 사람들이 왜 소장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열망의 뿌리들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는 끊임없이 소장을 통해 제품을 모으고 서사를 부여해 새롭게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희귀한 해외 스타의 소장품이 대중들에게 소개되며 패션 아이템의 미술적 가치에 대해 대중이 즐겁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월25일(토)까지 세종미술관 1,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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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배경과 함께 보는 패션 용품(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
(사진 설명) 시대 배경과 함께 보는 패션 용품
1. 마가렛 대처가 자신의 70세 생일 파티에 착용한 핸드백. 전 영국 주재 미국 대사 찰스 해리 프라이스 2세가 선물한 가방(W245× H275×D60 가방끈 포함 높이)이다.(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하 동일)
2. 마이클 조던의 ‘더 라스트 댄스’ 저지와 에어조던13의 연출 사진.
3. 19세기 빅토리안 스타일의 여성용 부츠(W250×H250×D70). 19세기에 접어들며 신발 제조업은 장인 공예에서 산업화된 제조업으로 변모한다. 디자이너들이 구두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구두는 취향과 스타일을 결정하는 요소로 발전한다.
4. 마이클 잭슨이 ‘빌리진’ 무대에서 ‘문워크’를 할 때 신은 로퍼(W275×H90×D110).
‘WATSON, THE MAESTRO알버트 왓슨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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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버트 왓슨Albert Watson © Albert Watson 2022 |
1973년, 패션 잡지 『하퍼스바자』의 크리스마스호 표지 모델의 주인공은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털이 뽑힌 채 리본이 달린 거위의 목을 쥐고 있는 모습. 그의 스릴러풍 영화가 연상되는 모습이다. 당시 기사에는 히치콕의 크리스마스 거위 요리법을 소개하려 했는데, 사진작가가 순간적인 기지로 히치콕의 영화 스타일과 맞물러 촬영 콘셉트를 잡았다고 한다. 그 촬영 감독이 바로 패션 인물 사진의 대가이자 사진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알버트 왓슨(1942~)이다. 왓슨은 알프레드 히치콕, 스티브 잡스, 데이비드 보위 등 동시대 ‘아이콘’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새로운 상징을 구축해온 인물이다. 1977년부터 2022년까지 패션 잡지 『보그Vogue』와 100회 이상 작업하며 가장 오랜 기간 표지를 장식했고, 『롤링스톤Rolling Stone』, 『타임Time』,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 유명 잡지의 표지도 다수 촬영했다. 이 외에도 ‘킬 빌’(2003), ‘게이샤의 추억’(2005) 등 영화 포스터와 함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표지를 촬영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진작가 20인 중 한 사람이자, 사진계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그의 주요 작품을 총망라하여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WATSON, THE MAESTRO-알버트 왓슨 사진전’은 그의 아시아·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외부에 최초로 공개하는 2022년 최신작까지 유명인사의 인물 사진, 풍경과 정물이 있는 개인 작업, 실험적인 사진까지 작가의 일생을 아우르는 주요 작품 125점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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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fred Hitchcock, Los Angeles, 1973 © Albert Watson 2022 |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왓슨은 카메라의 눈을 빌려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던디대학교 조던스톤 덩컨 미술·디자인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런던의 왕립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1973년 『하퍼스 바자』의 의뢰로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보그』, 『롤링스톤』 등과 작업을 통해 패션사진계에서 독보적 존재가 되었고, 클린턴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마이크 타이슨 등 인물사진을 촬영하며 두각을 보였다. 그 외에도 영화 포스터, 프라다와 샤넬 등의 메이저 캠페인, TV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그는 피사체에 대하여 사전에 철저히 연구하고, 인터뷰를 통해 가장 편안한 순간을 이끌어내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시각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사체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고, 순간마다 의도치 않는 형상을 띠는 사진을 찍는 것. 일례로 사진 촬영을 좋아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의 경우, 왓슨과 함께 작업하며 스물다섯 컷 만에 촬영이 종료될 수 있었다. 이때 찍은 사진은 훗날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 표지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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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Andy Warhol, New York City, 1985 © Albert Watson 2022 (우)Steve Jabs, Cupertino, California, 2006 © Albert Watson 2022 |
• 패션을 넘어 예술까지
이번 전시는 총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왓슨이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걷는 LA 시기의 작업부터 현재까지의 인물, 풍경, 정물, 실험적 사진 등, 평생에 거쳐 왓슨이 연구하고 진행한 다양한 주제의 사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패션 사진 분야와 상업적 작품뿐만 아니라, 여행에서 만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카메라 속에 더 넓은 세상을 담고자 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정물, 풍경, 예술 사진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전시는 작업의 성격, 장르,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을 연대기 순으로 선보인다.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해볼 장소는 왓슨의 스튜디오를 구현한 공간이다. 왓슨이 작업했던 스튜디오 속 다양한 인물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비하인드 더 신’(Behind The Scene), 전문작가의 작업 환경을 만나 볼 수 있는 ▲‘왓슨 스튜디오’(Watson Studio), 왓슨이 직접 고른 음악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디지털 사진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런웨이’(Digital Runway) 등, 다채로운 체험이 가능하다. 특히 ‘왓슨 스튜디오’는 테스트샷으로 촬영한 폴라로이드 사진이나 밀착 인화지(Contact Sheet), 작업 과정 등을 살펴보고, 관람객들이 직접 촬영 현장을 체험하고 사진 촬영도 해볼 수 있다. 전시는 3월30일(목)까지 한가람미술관 제3~4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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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
‘오픈런’ 열기를 방불케 하며 최근 화제가 된 전시가 있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이 바로 그것. 리움미술관이 2023년 첫 전시로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회고전 ‘Maurizio Cattelan: ALL’ 이후 최대 규모이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으로, 리움미술관의 로비와 M2 전시장에서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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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언’,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_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
마우리치오 카텔란(1960~)은 1980년대 후반부터 미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학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를 이어온 동시대 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작품 대부분은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극사실적 조각과 회화가 주를 이룬다.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기도 하고, 익숙한 대중적 요소 역시 교묘히 이용한다. 익살스럽고 냉소적이지만, 관람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한다. 2019년 12월, 유망한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 이곳에 독특한 작품이 하나 등장했다. 커다란 벽에 덕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한 개.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은 12만 달러에 팔렸다. 그런데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렸고, 갤러리 측은 이를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해야 했다. 이후 소문이 나며 몰려든 인파로 인해 부스 운영이 어려워지자 갤러리는 결국 작품을 내리게 된다. 국내에도 한 차례 화제가 된 이 작품은 ‘바나나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아닐까’, ‘벽에 달린 바나나가 고가로 팔리는 게 맞는가’, ‘바나나를 먹는 것 역시 퍼포먼스인가’ 등 거듭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 작품이 바로 ‘코미디언’(2019)이다. 작가는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뿐만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카텔란의 작품은 첨예한 토론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는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지는 않는다.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한다.
• 익살스러운 블랙 유머, ‘우리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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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
카텔란은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받는다. 그의 재능의 배경에는 변곡점이 많은 이력이 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중 비로소 미술계에 몸담게 된다. 때문에 그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의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카텔란은 억압, 불안, 권위, 종교, 사랑, 나와 가족,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에 대한 ‘생각’ 등을 작업 소재로 삼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WE’ 역시 동명의 작품을 벗어나 확장된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작품들이 있다. 먼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을 표현한 ‘아홉 번째 시간’(1999)은 특정 종교 및 맥락을 초월하여 권위와 억압에 대한 열띤 토론과 다양한 반향을 일으켰다.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얼굴을 한 작품 ‘그’(2001)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유발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 ‘코미디언’ 역시 이번 전시에서도 공개됐다. 덕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하나로 미술제도의 한가운데에서 작품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다. 미술관의 바닥을 뚫고 엉뚱한 곳으로 나와버린 듯한 남자(카텔란의 얼굴을 담았다) ‘무제’(2001)는 미술계에서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외부인과 같은 카텔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또한 흰 천이 덮인 채로 바닥에 놓여 있어 시신을 연상케 하는 아홉 개의 대리석 조각 작품인 ‘모두’(2007)와, 침상에 죽은 듯 나란히 누워 있는 두 명의 카텔란이 등장하는 ‘우리’(2010)는 카텔란 작업의 오랜 소재인 죽음에 대한 복합적인 심상을 이끌어낸다. 이렇듯 카텔란은 작품 곳곳에서 때로는 경찰, 때로는 범죄자, 예술가 등 여러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비관적이고 우울하며 냉소적인 ‘카텔란판 인간희극’에 초대된 관객들은 잔인한 삶에 대한 애잔한 공감을 갖는다.
전시 기간 동안 기획 의도와 주요 대표작을 소개하는 큐레이터 토크와, 작가 연구 강연 시리즈 등이 예정돼 있다. 관람료는 무료로,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해야 한다. 평일에도 1000여 명이 전시를 찾고, 일찌감치 온라인 예약이 마감되다 보니, 오픈런과 마찬가지로 재빠른 스피드가 필요하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리움미술관.
•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개인전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Edward Hopper: On the Road’(가제)가 오는 4월2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휘트니미술관과 2019년부터 협의를 시작해 열리는 이번 서울 전시는,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사 대표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산본호퍼아카이브(Sanborn Hopper Archive)를 비롯해 회화, 드로잉, 판화 등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대도시가 변모해 가는 풍경과 일상을 주제로 삼아 온 호퍼는 여름철마다 도심을 벗어나 건축과 환경을 집중 탐구하는 시간을 보냈다. 전시는 20세기 초반 빠르게 변모하는 도시 안팎의 낯선 공간과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가의 시선을 주목한다.
• ‘한국 실험미술 1960~1970’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5월, 국제미술계 교류전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의 아시아 실험 미술 집중 조명 시리즈 중 한국부문에 대한 전시를 공동 기획,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및 자료 40점 등을 포함해 1960~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전위적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총 100여 점을 소개한다. 강국진, 김구
일러스트 포토파크 사진 및 자료제공 이승연,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7호(23.2.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