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제2의 고등학교는 북산이었다.’ 영화 개봉과 함께 인기 댓글에 오른 글이다. 우리는 때론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나아가는 강백호가 되었고, 때론 오합지졸을 이끌어가던 채치수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추억을 품고 살던 이들이 간만의 추억 소환에 응했다. 최근 2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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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 내 사진 NEW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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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 내 사진 NEW 제공) |
소싯적, 친척 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막내였던 기자에게 명절날 찾는 친척 오빠의 방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바쁜 나를 얌전히 방에 붙잡아 놓은 것은 로봇 프라모델과 각종 장난감을 비롯한 다양한 도서들이었는데(지금까지도 보물들을 내줬어야 했던 오빠에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이다), 그중에서도 어렸던 내가 가지고 놀기엔 만화책이 제격이었다. 내용은 잘 이해가 안됐지만, 까까머리 주인공이 어설프게 덩크슛을 하는 모습이 인상이 깊게 남았다.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있는 『슬램덩크』에 대한 첫 추억이다.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주간 소년 점프』(슈에이샤)에서 연재된 만화 『슬램덩크』는 한 번도 농구를 해본 적 없는 풋내기 고등학생 강백호가 북산고교 농구부에서 겪는 성장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다. 전 세계 1억2000만 부 판매를 기록하며 지금까지도 ‘올타임 레전드 스포츠 만화’로 불리고 있다. 그만큼 『슬램덩크』의 인기는 친척 오빠의 세대에도, 기자의 세대에도 뜨거웠다. 1992~2000년대 초반까지 만화책을 비롯해 TV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로 선보였고, 원작 만화는 우리나라에서만 14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며 2001년 완전판, 2015년 디지털 복간판이 출간되었고,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슬램덩크』의 명대사는 알 정도로 세대를 넘나드는 높인 인지도와 대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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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NEW) |
만화 『슬램덩크』가 연재된 지 30년 만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통해 코트로 귀환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는 개봉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월1일 기준)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과 감독으로 참여 소식을 알리며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는 만화의 주인공이었던 강백호 대신 포인트 가드 송태섭를 주축으로, ‘산왕공고’와의 대결을 그린다.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롯해 송태섭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다뤄진다. 꿈과 열정을 가진 청춘들의 모습과,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극중 세계관을 보다 세밀하게 넓혀간다.
영화의 더욱 업그레이드된 작화는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사실적인 경기 장면을 그리기 위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연출했다고 밝혔다. 이노우에 감독은 ‘내 손으로 캐릭터가 살아날 때까지’ 리터치하는 것을 고집하며,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는 그림, 그곳에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캐릭터 각자의 개성과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 유니폼과 운동화의 생생한 질감까지 표현했다. 농구 장면 역시 마찬가지. 스텝을 밟는 방법이나 공을 받는 순간의 신체 반응, 슛을 하는 순간의 타이밍 등 디테일한 작화는 영화 말미까지 관람객들에게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더해준다. 영화 속 10명의 선수가 각자 다른 움직임을 하는 농구 경기 장면은 CG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해냈다. 그 작업을 위해 꽤 많은 컷의 리터치를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보자면 초반 오프닝, 만화 작화 스케치로 그려진 북산고 농구부 멤버 5명이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국내 흥행 청신호 소식과 함께 화제로 떠오른 또 한 가지는 이번 영화는 자막과 더빙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보는 ‘N차 관람’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자막 버전은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이 성우 캐스팅에 참여해,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더빙 버전의 경우 국내 최정상 성우들이 총출동했다. 그중에서도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강수진 성우가 애니메이션에 이어 이번 극장판에서도 강백호 역을 맡아 변치 않는 매력을 선사했다. 강수진 성우의 강백호 리부트 소식에, 일부 팬들은 영화 공식 예고편(더빙ver.)에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세대도 많이 바뀌었으니… 안 계신 분도 계시고요, 그런 부분에서 강수진 성우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작품이 30년을 바라보는데 팬으로서 이렇게나마 원작자의 이벤트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Am****)라는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덧붙여 더빙 버전에는 강백호의 친구이자 백호 군단의 멤버 이용팔 역으로 배우 고창석이 특별 출연했다. 고창석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슬램덩크에 작은 역이라도 꼭 참여하고 싶어서 자처했다”라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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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NEW) |
『슬램덩크』의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지난 2004년, 『슬램덩크』 단행본 1억 부 판매 돌파를 기념해 독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일본의 6개 주요 일간 신문에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은 러프 스케치를 그려 전면 광고를 실은 것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해당 광고를 자비를 들여 집행했는데 당시 광고비는 1억6000만 엔으로, 한화로 16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에 팬들이 신문에 게재된 캐릭터의 그림들을 수집하기 위해 광고가 실린 6개의 일간지 모두를 구매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같은 열정은 일본 팬들뿐만 아니라 국내 팬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30년 만에 영화를 통해 돌아온 『슬램덩크』는 3040세대에겐 마치 오래된 앨범을 펼쳐본 듯 옛날의 설렘과 열정적인 감정을 다시금 마주하게 했다. 또한 1020세대들에겐 새로운 콘텐츠로서 자리매김하며 소장 욕구에 불을 붙이고 있다. 지난달 26일 여의도 더현대에 문을 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는 한정판 피규어와 유니폼 등 굿즈를 사기 위해 연일 긴 대기줄이 이어졌다. 세븐일레븐은 롯데칠성음료와 손잡고 ‘슬램덩크 와인’을 선보였다. 연계 도서를 굿즈처럼 소장하려는 흐름도 꾸준하다. 예스24가 집계한 결과, 2023년 1월1일 베스트셀러 1위는 『슬램덩크 챔프』가 차지했다. 영화 개봉을 기념해 발간된 『슬램덩크 챔프』는 『슬램덩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해 원작 만화 전 276화에서 이야기의 베이스가 되는 24화를 엄선해 수록한 책이다. 특히 『슬램덩크 챔프』의 주 구매층은 만화를 즐겨보던 3040세대로 전체 도서 구매자 중 87% 이상을 기록했다.
한편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가수 박상민이 부른 주제가(OST) ‘너에게로 가는 길(Crazy for you)’ 등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지난 1월12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 2관에서는 ‘박상민과 함께하는 크레이지 포 유 상영회’가 열리기도 했다. 더불어 이번 영화에 삽입된 OST인 The Birthday와 10-FEET의 노래 역시 인기다. 2022년도엔 ‘탑건: 매버릭’이 있었다면, 2023년도엔 ‘슬램덩크’ OST가 영화 속 장면 적재적소에 등장해 감동을 배가시켰다는 평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오프닝의 경우는 하나의 음으로 시작해서 점점 여러 가지 소리로 늘어가는 조금 불온한 분위기의 긴 인트로를 원했다. The Birthday의 팬이었기 때문에 꼭 이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10-FEET는 엔딩이나 극중 음악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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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5일 오후 11시께 여의도 더현대 지하 통로에서 다음날 오픈하는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매일경제 이지안 기자, 매경DB) |
① “왼손은 거들뿐.”(46%)
② “농구가 하고 싶어요.”(8%)
③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6%)
④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죠? 난 지금입니다.”(5%)
⑤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저뿐인가요?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입니다.”(5%)
⑥ “농구 좋아하세요?”(4%)
⑦ “난 천재니까!”(4%)
⑧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4%)
– 출처: 알라딘(2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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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사진 NEW) |
※ 다음 인터뷰는 국내 개봉 직전 한국 매체들에게 공개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Q.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제작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A. 제작 오퍼는 10년 이상 전부터 받았다. 파일럿 영상을 만들어왔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다만 짧은 영상을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힘든데도 계속해서 제안해 주신 제작진의 열의를 느끼고 있었다.
Q. 최종적으로 OK를 한 것은 언제인가?
A. 2014년이다. 결정적인 요소는 파일럿 영상의 ‘얼굴’이었다. 강하게 호소하는 듯한 느낌으로 만든 분의 영혼이 들어가 있었다. 기술이나 영상의 퀄리티보다 열의나 영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이 가장 와 닿았다. 애니메이션 관련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기술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농구 장면의 CG는 10명이 코트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그리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이기에 채택한 것이다.
Q. (영화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그림이 그대로 움직이는 듯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A. 마음속에 ‘이런 느낌으로 하고 싶다’라는 이미지는 있어도 그 경험이나 지식은 없었다. 대강의 이미지를 제시하면 그것을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이 ‘이런 느낌 아니냐’라고 해석하거나 전달해줬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여기가 골이다’라는 한 점을 향해 돌진한 게 아니라, 함께 쌓아 올라가며 최종적으로 ‘도달했다!’라는 느낌으로 완성했다.
Q. 주인공이 강백호가 아니라 송태섭이라는 점에 놀란 팬들도 많았을 것 같다.
A. 원작을 그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싫어서 다시 『슬램덩크』를 한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하고 싶었다. 송태섭은 만화를 연재할 당시에도 서사를 더 그리고 싶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3학년에는 센터 채치수와 드라마가 있는 정대만, 강백호와 서태웅은 같은 1학년 라이벌 사이라서 2학년인 송태섭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송태섭을 그리기로 했다. (…) 이번 작품에서 송태섭의 가족 이야기가 상당히 깊게 그려졌다. 연재할 때 나는 20대였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관점에서 더 잘 그릴 수 있었고, 그것밖에 몰랐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시야가 넓어졌고 그리고 싶은 범위도 넓어졌다. 『슬램덩크』를 그린 이후, 『배가본드』나 『리얼』을 그려온 것도 영향이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Q. 『슬램덩크』 팬들께 전하는 메시지는?
A.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슬램덩크』를 만들었다. 만화는 만화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영화는 영화로,
사진 및 자료제공 NEW, 매경DB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6호(23.2.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