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관람한 관객은, 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비릿한 피냄새와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방금 너댓명을 베고 찌르고 잘라 살해한 뒤, 피 묻은 얼음을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우적우적 씹어먹는 미친 살인자. 레이 역을 연기한 이정재는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인간 백정' 사이코패스였다.
레이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spin-off)가 OTT 시리즈로 제작된다. 스핀오프란 '원작 영화나 드라마의 세계관에 기대면서 새롭게 만들어낸 이야기물'을 뜻한다. 최근 스핀오프물이 대세로 떠올랐다. 시리즈 '종이의 집'의 베를린, 영화 '그레이 맨'의 시에라 식스 등 한 인물의 전사(前史·인물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줄줄이 나올 전망이다.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레이 역 이정재. [사진 = CJ ENM] |
하얀 롱코트에 레이밴 윙스2 선글라스를 쓰고 영화에 첫 등장하는 레이의 삶은 보면 볼수록 입체적이다. 극중 레이가 암살된 일본인 고레다의 '숨겨진' 동생이라는 점, 도살하듯 사람 배를 갈라 죽인다는 점, 그의 부친이 실제로 도축업에 종사했다는 등의 영화 속 정보는 귀밑까지 올라온 문신 너머 가려진 레이의 지독한 과거를 궁금하게 만든다. 평소 사이도 별로여던 형의 복수에 레이는 왜 그렇게 집착할까.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요즘 상업 콘텐츠들은 영화든 드라마든 후속편을 고려하면서 만들어진다. 영화는 시리즈물이 되고 드라마는 시즌제가 되고 있다"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콘텐츠들에서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을 따로 제작하는 것은 그 콘텐츠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공고히 하는데 효율적이고도 매력적인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 `종이의 집` 베를린 역 페드로 알폰소. [사진 = 넷플릭스] |
신드롬에 가까운 큰 인기를 얻은 글로벌 히트작 '종이의 집'의 베를린도 스핀오프물 제작을 최근 확정했다. '종이의 집' 시즌1에서 베를린은 임신이 확실한 임산부의 총살을 강요하고 지시하는 냉혈한으로 나오지만 '결혼 5번, 이혼 5번'이란 비범한 여성편력, 유전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은행 강도를 자임했다는 점, 그리고 (이제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극중 조폐국 탈취를 설계한 '교수'와 베를린이 이부(異父)형제란 점은 베를린을 단순한 악인 이상의 캐릭터로 만든다. '종이의 집' 스핀오프는 원작에서 베를린을 연기한 페드로 알폰소가 직접 출연한다.
↑ .영화 `그레이 맨` 시에라 식스 역 라이언 고슬링. [사진 = 넷플릭스] |
공개 직후 92개국에서 1위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넷플릭스 영화 '그레이 맨'의 속편 스핀오프 제작도 확정된 상태다. 주인공은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시에라 식스다. 교도소에 갇힌 식스를 피츠로이가 CIA 요원으로 발탁하는 장면은 영화에 설명되지만, 식스가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손목을 담뱃불로 지지는 유년 시절 학대 장면과 그 트라우마가 스핀오프에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될 '그레이 맨'은 제작비 2억달러가 투입된 넷플릭스 최대작이다. 따라서 스핀오프물 공개 때도 뜨거운 반응이 예상된다.
↑ .`수리남` 변기태 역 조우진. [사진 = 넷플릭스] |
'나쁜 남자' 캐릭터를 향한 관객·시청자의 관음증은 연출자에 대한 스핀오프물 제작 요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달엔 '수리남'에서 조우진이 열연한 '전도사' 변기태의 스핀오프를 만들어달라는 팬의 요구가 빗발쳤다. 윤종빈 감독은 "변기태는 실제 연변 출신으로 11세에 부모님을 따라 밀항해 한국에 입국했으며, 축구선수를 꿈꾸다 16세에 부상을 입고 포기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자원하고, 임관 후 장교 생활을 하다 국정원에 스카우트된 조선족"이라고 공식석상에서 밝혀 팬들 불같은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변기태 스핀오프'가 현실화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 경우 변기태가 첸진파에서 전요환의 '오른팔'로 성장하는 과정도 흥미롭게 묘사될 수 있다. 변기태의 목에 새겨진 네 글자 문신 '替天行道(체천행도)'의 의미도 밝혀질 필요가 있다. 체천행도는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다'란 뜻이다. 언더커버를 자임한 변기태의 운명을 함축해낸다.
↑ `오징어 게임` 시즌2 제작 예고 포스터. [사진 = 넷플릭스] |
등장인물의 전사가 적극 해명돼야 하는 대표 시리즈로는 '오징어 게임2'를 빼놓을 수 없다. 스핀오프물은 아니지만 이병헌이 연기한 프론트맨의 과거는 속편에서 다뤄야 마땅한 핵심적인 지점이다. 시즌1에는 프론트맨(본명 황인호)이 2015년 제28회 오징어 게임 우승자 '132번'이었다는 사실이 자세히 나온다. 1995년 경찰대 졸업한 황은 서대문파출소장,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경찰청 광역수사대를 거친 엘리트였다. 경찰 간부가 왜 목숨 걸고 게임 참가자와 관리자로 나섰는지는 해명돼야만 한다.
윤 평론가는 "주인공은 시퀄이나 프리퀄에서도 충분히 다루어지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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