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쇼핑몰에서 수많은 옷을 장바구니(wish list)에 넣고 한꺼번에 배송받는다. 결국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 반품한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온라인 플랫폼 사용자 중 친구의 이같은 쇼핑 행태에 스위스 바젤 출신 작가 토비아스 카스파(38)는 주목했다.
↑ 토비아스 카스파, Personal Shopper (2022) [사진 제공 = 파운드리 서울]
그의 작품 L’atelier(Trunkshows)(2022)는 온라인편집숍 스크린샷 장면을 캔버스에 출력하고 그 위에 오트 쿠튀르(고급 맞품복) 원단에 실제 사용된 패턴이나 반복적인 붓자국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 완성했다. 화면이 여러번 겹쳐져 패션광고 같다. 패션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화두로 작업해온 카스파의 국내 첫 개인전 'Personal Shopper’가 서울 한남동 파운드리 서울에서 12월 18일까지 열리고 있다. 최근 연작 32점으로 작가를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제 2전시장부터 작가의 패션하우스에 온 것처럼 꾸며졌다. 'Epicenter’(2019)라는 남색 설치작업이 한가운데서 눈길을 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위성이 촬영한 '밤의 지구'사진을 카펫과 스웨터로 제작했고 일부는 마네킹에 입혀졌다. 꼼데가르송 패션쇼 사진에 은색 붓질 패턴을 더한 작품이 세워져 있다.
작가는 패션산업이 사회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인간의 욕망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속성을 재치있게 예술로 흡수했다. 패션모델 사진 위에 겹쳐진 화려한 꽃 무늬가 낯익다 싶었는데 실제 샤넬 등 패션브랜드에서 사용한 패턴이라고 한다. 패션의 다양한 요소를 버무려서 우리에게 익숙한 평면 작업으로 재탄생시켰다. 제1전시실에서 만나는 'The Japan Collection’ 연작은 1960년대 일본에 수출되던 자수 패턴 아카이브에서 출발했다. 로코코 양식 공간에서 티타임 등 고상한 행위를 하는 유럽 부르주아 여성들, 이국적이거나 매혹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수놓은 패턴이다. 유럽의 생활문화를 동경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다. 작가는 현재와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유행을 좇아 국경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현상에 흥미를 느끼고 포착했다.
자수 원단을 초고해상도 사진으로 찍고 실물 패턴부터 실제 사람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출력해 낯선 느낌을 극대화한다. 마치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보는 듯, 선망의 대상(유럽 멋쟁이)이 성긴 실로 뭉개지며 회화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 'Personal Shopper’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화했다. 이 연작에서 자수 인물들이 일종의 '환영'처럼 표현돼 욕망을 형상화했다.
↑ 한상아, 뾰족한 온기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파운드리 서울]
윤정원 디렉터는 "개인의 정체성과 행동양식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패션을 매개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작가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표면적인 것 이면에서 충분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고 했다. 작가는 왜 패션에 연연할까. 어린시절 어머니가 지인들과 안입을 옷을 늘어놓고 패션쇼를 벌이는 옷 교환 파티를 열었는데 끝나고 나면 남는 옷이 없는 현상이 재미있어 인간 욕망의 집약체로 패션을 주로 활용하게 됐다고 한다.
↑ 한상아, 뾰족한 온기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파운드리 서울]
한편 신진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공간인 바이파운드리에서는 한상아(35)의 개인전 '뾰족한 온기'가 함께 열리고 있다. 동양화를 기반으로 한 그는 어머
니이자 작가로서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광목 천에 먹과 모필로 여러 상징이나 형태를 그리고 오려낸 다음 검정색 실로 광목 위에 겹겹이 꿰매거나 입체물로 표현했다. 합장한 손이 한땀한땀 수행하듯 꿰매지니 수묵화 산이 입체가 됐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