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작업장 안. 우주복처럼 두꺼운 방재복에 고글까지 착용한 남자가 젊은 여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바쁜 손놀림으로 무언가 그리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다.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차림의 여성은 낯선 공간을 천천히 탐색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무용 같다. 그녀는 용광로에 담가 그을린 나뭇가지로 3면의 벽에 걸린 종이에 선을 긋는다. 운동화에 나뭇가지를 붙이고 힘겹게 발을 뻗어 그어보는 시도도 한다. 주조소 직원들이 나타나 남자의 작업에 황동을 부으면서 흑백 장면은 주황색 불꽃으로 바뀌고 여성은 공간밖으로 사라진다.
↑ 매튜 바니, 구속의 드로잉25 영상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
논쟁적인 예술가 매튜 바니(55)가 '구속의 드로잉 25'연작을 들고 17년 만에 서울을 다시 찾았다. 동명의 개인전이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12월 2일까지 열리고 있다. 미술사를 강의하던 바바라 글래드스톤이 그 창의성에 반해서 금기를 깨는 작가 지원에 적극 나선 계기가 됐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 작가는 1987년 예일대 재학중 '구속의 드로잉'을 시작해 무려 35년간 연작을 펼치고 있다. 경사로나 작업 용구 등 물리적으로 신체가 구속될 때 몸의 근육이 힘과 크기 면에서 강화되는 상태를 조형작업에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성장과 창조력의 근원으로서 구속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지난 2005년 리움미술관 개관 1주년 개인전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도 벽에 올라가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구속의 드로잉 12'를 실행했다.
↑ 매튜 바니, 구속의 드로잉25 영상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
신작 '구속의 드로잉25'는 코로나19로 격리됐던 2021년 1월 작가가 작업실에서 촬영한 28분 영상을 담았다. 기존에 신체적 구속 상태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심리적 구속이다. 이 영상 작품 속 주인공은 작가와 딸이다. 현재는 결별한 아이슬란드 음악가 겸 배우 비요크와의 사이에 낳은 딸 이사도라(20)를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은 예술가가 대상을 포착하고 소유하려는 행위와 부모가 자식을 품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은유한다. 딸이 그의 작업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 매튜 바니, 구속의 드로잉25 설치.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
바니는 과거 유한한 인간의 육체적 한계와 성(性)의 이분법적인 구별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담은 예술영화 '크리매스터'연작으로 유명하다. 당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만든 자극적인 '빨간맛'과 달리 신작은 '순한맛' 보편적 정서를 담았다. 영상 속 퍼포먼스(행위)의 결과물인 바니의 목판 드로잉과 이사도라의 드로잉, 브론즈로 찍어낸 나뭇가지, 황동판 주물 등이 박물관 진열품처럼 전시돼 있다. 이번 주제와 근작 영화 'Redoubt’가 겹치는 지점을 색지에 정성들여 그린 드로잉 작품은 같은 색 아크릴 액자에 담겨 새로운 조각처럼 걸려 있다. 화려한 색감이 다소 이질적이다.
↑ 매튜 바니, 구속의드로잉25 Blue Foundation (2022)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
파울라 사이 글래드스톤 파트너는 "작가는 2019년경부터 선명한 색지 드로잉과 연결되는 액자를 일종의 조각처럼 작업해 왔다"며 "작가가 본인의 개인적 경험과 생애주기별로 작품의 변화를 드러내 온 만큼 다음 연작에서는 밝은 빛의 프리즘이 새로운 소재로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밝혔다.
↑ 매튜 바니, 구속의드로잉25: Headlamp (2022)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