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작업물이 사라졌다. 3년여 전 파주의 작품보관 창고 화재 현장에서 작가는 망연자실했다. 듀오로 활동하는 부부 작가 뮌(김민선·최문선)은 분신과도 같던 작품의 상실을 딛고 일어섰다. 영상 설치작품 'Storage'는 겹겹이 설치된 철제 프레임과 빨간 아크릴판 사이로 다채롭게 쏘아대는 영상이 아름답다. 마치 불타는 모습을 재연한 듯 빨간 점이 타고 올라오는 장면에 이어서 사각 프레임이 열리며 무한 증식되는 우주 공간 같은 영상으로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
서울 성북동 김종영미술관에서 '2022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뮌의 개인전 '오후 3시의 치즈케이크와 추리극'이 열리고 있다. 예술가의 작업에 초점을 맞춘 전시가 관람객들 공감을 끌어낸다.
신관 1~3층은 작가가 필요로 하는 공간을 본떠 구성됐다. 3층은 거주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두 작가가 30년 이상 써왔던 낡은 책상 위에 남녀 자화상을 폴리곤 조각으로 올린 모습을 발견한다. 사포로 긁힌 조각 표면은 관계성에서 오는 상처를 은유하는 듯싶다. 기울어진 길에 억지로 평형을 맞춰 배치한 책상의 사진도 분투하는 우리들 자화상처럼 애잔하게 한다.
2층은 작업실을 평면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영상에서는 그간 전시와 작업물을 보여주고, 실제 작가의 작업실에 일그러진 타공판을 앞세워 촬영한 이미지는 가까이 가서 작업실 모습을 확인하려 할수록 형상이 모호해지는 역설을 보여준다. 1층에서는 몽타주처럼 변한 작업물 데이터가 김지연의 사운드 연출로 20분 남짓 펼쳐진다.
↑ 책상 위의 흉상(남여)(2022), 60x40x80(H)cm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한 제목은 작가의 개인적 서사에서 비롯됐다. 20여 년 전 독일 유학시절 작가 부부는 출출한 오후에 가성비 좋은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작업을 논의했다고 한다. 첫 개인전 '관광객 프로젝트'를 한 지 20년 되는 올해 23번째 개인전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결의도 담았다.
작가 뮌은 "안전하게 보
관되지 못한 결과물들이 잿더미가 된 경험은 작품이든 사람이든 모두 매우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했다"며 "앞으로 보관이 힘든 설치보다 데이터가 남는 사진과 영상에 집중할 지 여부 등 작업의 방향성이 정해진 상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11월13일까지.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