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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피아니스트 조성진, 앵콜 전 관객 인사 [사진=MBN] |
세계적인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과 래틀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어제(16일) 4년 만의 내한 공연을 마치고 출국했습니다.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자 섬세한 기교를 자랑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압도적인 사운드를 보여준 이번 공연은 LG아트센터(13일)를 시작으로, 롯데콘서트홀(14일)과 예술의전당(15일)까지 거쳐간 뒤 막을 내렸습니다.
거장 래틀은 내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임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 함께 하는 내한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래틀은 출국 직전 예술의전당에서의 공연에서도 5년여간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해온 단원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은 최대한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최상의 공연 사운드를 이끌어냈습니다.
기자가 지난 15일 관람한 공연 리뷰입니다.
첫 곡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가장 앞부분인 '전주곡'과 마지막 장면인 '사랑의 죽음'을 붙인 연주곡.
첼로가 첫 세 음을 연주한 뒤 오보에와 클라리넷, 바순이 표현하는 유명한 불협화음인 '트리스탄 코드'를, 오케스트라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금지된 비극적인 사랑이라는 서사 자체를 암시하는 것처럼 관객들이 느끼게끔 조용하면서도 은밀한 느낌으로 전개해 나갔습니다.
오보에 연주는 이따금 1명만 연주하도록 해 집중력을 높이면서도, 앞자리와 뒷자리에 배치된 오보에 연주자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공평하게 배분했고, 현악기의 피치카토 주법을 통해 낭만적인 곡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서정성과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성악가가 없는 기악 편성만으로도 래틀의 격렬한 몸짓에 맞춰, 두 연인이 죽음으로 하나가 될 때에서야 불협화음이 협화음으로 해결된다는 점을 풀어낸 클라이맥스 부분을 오케스트라는 두드러지게 부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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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연주를 끝낸 뒤 관객 앞에 서서 인사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MBN] |
두 번째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Op.43)가 시작되기 전, 래틀은 무대에 조성진과 함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조성진을 먼저 들여보낸 뒤 박수 치며 뒤를 따라 걷는 방식으로 존중과 배려를 보였고, 이 태도는 공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시작부터 조성진을 틈틈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인 래틀은, 총 24개 변주곡 중 2번째 변주와 3번째 변주부터서야 다시 무대 중앙 쪽으로 몸을 돌려 시간을 할애했고, 곡의 중반부터는 신이 난 듯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를 움찔하는 어깨춤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래틀은 하나의 변주가 끝나고 다른 변주로 바뀌는 순간 조용히 집중하자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쉿' 표시를 나타냈고, 피아노의 연주가 독보적인 순간은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이어지는 중에도 2초 정도 지휘봉을 두 손으로 맞잡아 내리 쥔 채 존중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현악기의 피치카토 주법을 쓸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음량을 낮췄고 래틀은 최약음인 '피아니시모' 마법을 부리며 강주의 효과를 최대치로 높였습니다.
피아노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하는 오케스트라의 이같은 조용한 연주 속에, 조성진은 뭉뚱그리는 음이 한개도 없게끔 왼손 또는 오른손의 주요 선율을 정확하면서도 절묘하게 전달해냈고, 파가니니가 살아나면 연주를 이렇게 할지 추측하게끔 하는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조성진은 13번째 변주에서 몸이 튕겨져나가는 듯 온몸을 실었으며, 마지막 변주에선 조성진이 하체를 든 채 건반을 내리치며 강렬하게 빠르면서도, 여전히 맑고 정확한 선율을 선보여 관객들이 희열감과 함께 경이로운 감정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조성진은 입장부터 위풍당당한 걸음이지만 시종일관 진중한 면모를 보였고, 연주가 끝난 뒤 앵콜 요청이 쏟아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조성진이 선택한 피아노 앵콜곡은 헨델의 미뉴에트 G단조(HWV 434/4).
연주하는 내내 의자에 반만 걸터 앉아 있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격정적인 연주 직후에도 차분한 분위기의 앵콜곡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조성진을 보며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듯 의자에 완전히 앉아 곡을 편안히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3번째 곡,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에서는 래틀의 가장 격렬한 몸짓이 터져 나왔습니다.
앞선 인터뷰에서 "C장조로 마치는 어떤 작품에도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은 없다"고 언급한 래틀은, 실제로 곡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은 시벨리우스를 나타내려 한 듯, 곡의 후반부에서 오케스트라를 독려하며 강한 소리를 주문했습니다.
특히 래틀은 지휘를 하는 동안 금관파트의 웅장함을 위해 다소 센 소리를 주문했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한번 퇴장한 뒤 들어오면서 곡의 중요한 부분을 맡은 트럼본 연주자 등 금관악기 연주자를 따로 직접 불러 일으켜 세워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이끌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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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보에 연주자를 격려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진=MBN] |
마지막 곡인 바르톡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Op.19)에서 래틀은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이 이어지는 신들린 지휘를 보였습니다.
여기서도 전반적인 약음 속에 오보에 연주 파트에는 1명의 독주가 인상적으로 이어졌으며, 래틀은 연주가 끝난 뒤 해당 오보에 연주자를 불러 일으켜 세워 관객의 큰 함성을 이끌어냈습니다.
독특한 음향의 향연으로, 산만하게 들릴 수 있는 곡도 래틀은 변주가 있을 때마다 손동작을 하며 짤막하게 쉬는 구간을 만들어내며 집중력 있게 들을 수 있게 해주었고, 특히 스네어 드럼의 박자감은 '쿵짝짝 쿵짝짝' 소리로 가며 신명나면서도 웅장하게 이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래틀은 집중해 들은 대상은 더 확실히 바라봐주거나 강조하는 방식의 지휘를 보여주었으며, 그의 시선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데는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공연을 마친 뒤에도 단원 한 명, 한 명을 포옹하거나 일으켜세워 관객에게 인사시켜, 확실히 래틀만의 '배려'가 무엇인지 각인시켰습니다.
오케스트라 배치의 경우 전형적인 '미국식'으로 하되, 호른은 목관악기쪽으로, 나머지 금관악기는 오른쪽으로 분리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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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식 오케스트라 배치(좌)와 유럽식(독일식) 오케스트라 배치(우)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
오케스트라의 배치는 공연장 음향 환경과 연주하는 곡, 그리고 지휘자의 취향 등에 따라 변화되기 마련인데,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관악기와 현악기 전체의 소리를 아우를 호른은 왼편에 두고, 반대로 트럼펫과 트롬본과 튜바를 무대 오른쪽에 한 데 모아 한층 응집력 있는 소리를 내도록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래틀은 지난 9월 18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런던 공연에서는 시벨리우스의 '타피올라'를 연주하며 '미국식 배치'가 아닌 첼로가 제2바이올린 옆에 위치하는 '절충식 배치법'을 사
한편, 래틀은 이번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진 앵콜 요청에 "한국에 다시 오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고,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곡을 들려주겠다"며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를 앵콜곡으로 들려주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