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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조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한국의 간판 화랑 국제갤러리가 '프리즈 위크'에 전략적으로 내세운 작가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선구자인 이승조(1941~1990)다. 10월 3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은 작가의 주요작 30여 점을 소개하고, 스케치 노트 등 아카이브 자료로 그의 삶도 엿볼 수 있도록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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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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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Nucleus) 85-21`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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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Nucleus 77)`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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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Nucleus) PM-76`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파이프 회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복잡한 구성으로 엄격한 질서 안에서 변주되기 시작했다. K3관에선 작고 직전 완성한 가로폭 7m에 달하는 압도적인 대작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작업에 붙는 별명을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작가노트에서 "나를 '파이프 통의 화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로 원치도 않고 싫지도 않은 말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브를 전제하지 않은 반복의 행위에서 오는 착시적인 물체성을 드러냄이 이름일 것이다. 물론 현대문명의 한 상징체로서 등장시킨 것은 더구나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작고한지 3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석은 다양하다. 이승조를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읽어낸 이일 평론가는 이승조를 20세기 모더니즘의 계보에 위치시키며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국내에서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 해석했다. 미국 현대미술의 교황으로 불리는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회화의 목표로 제시한 평면성의 표현으로 해석한 것이다.
1970년대는 맹렬한 산업화의 시대였다. 원통형 파이프는 산업화와 시각적 연관성을 지닌다. 작가 스스로는 시속 100㎞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여행에서 어떤 환영을 지각한 것을 작업의 시초로 설명했다.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해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1969년 아폴로 달탐사선을 목격한 후 작가는 "새롭게 우주의 공간 의식에 눈뜨고 시작한 이 작업이 내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새로운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는 "80년대까지만 작품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에 봐도 전혀 낡지않은 신선한 감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에 널릴 알릴 작가라 판단해 프리즈 위크의 작가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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