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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고` 연작이 걸린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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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고` 연작이 걸린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PKM갤러리] |
정창섭(1927~2011)에게 한지는 동양화의 정신을 담아내는 도구가 아니었다. 물질의 순수한 물성을 드러내는 질료였다. 닥을 바르는 작업은 서구 추상의 유화 물감으로부터의 탈주였다. 그에게 미술가의 할 일이란 존재의 참 모습에 최소한의 손길을 더하는 것이었다.
그의 촉각적인 회화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점점 깊어졌다. 붉은색, 푸른색을 거쳐 흰색과 검정색만 남았다. 후기에 이르러 마침내, 캔버스까지도 하나의 덩어리가 된 한(單) 색깔(色) 그림(畵)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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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섭 작가 |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간담회에서 "정창섭은 단색화 생존작가들만큼 관심을 같이 받지는 못했다.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해 유족과 상의해 전시를 준비했다. 프리즈로 전세계 컬렉터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데 정창섭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으면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작가는 1927년 충북 청주 태생으로 1961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활발한 화업을 펼치던 시기 파리비엔날레(1961), 상파울루 비엔날레(1965) 등 국제 행사에도 다수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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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섭 작가 |
정창섭은 말했다. "종이의 물적 실존성에 나의 감수성을 동화하여 물(物)과 아(我)의 일원적 합일을 체험하는 쪽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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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고 91216` [사진 제공 = 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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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고 971041` [사진 제공 = PKM갤러리] |
갤러리 1층에 걸린 '묵고' 대작들은 멀리서 응시하면 순백의 캔버스만 걸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가면 닥의 질감과 그리드(grid)를 만날 수 있다. 장식성이 극도로 제거되고 순수한 색의 존재만 남은 추상화다. 작가는 물질 자체가 생동(生動)하며 빛을 발하는 경지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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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고 20810` [사진 제공 = PKM갤러리] |
작고한 작가의 평생에 걸친 화업을 소개하거나 삶의 궤적 등을 갈무리한 아카이브가 따로 마련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등 여러 전시를 하셨는데도 작가의 기록과 육성을 만날 수 있는 아카이브가 너무 부족하다. 마지막 5년 정도는 병환으로 작업을 거의 못하셨다. 이번 전시는 그의 말년의 대표작들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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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고 94202` [사진 제공 = 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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