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큰 조예는 없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는 자신이 해온 연기를 설명하면서 피아노 등 클래식 음악을 비유한 설명을 즐겼다. 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 멤버로 활동하며 1인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어느덧 세번째 출연하고 있는 배우 손상규(45)의 이야기다.
이 연극은 겨울 파도에 뛰어들어 서핑하기를 즐기는 19세 청년 시몽 랭브르가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켈랑갈이 2014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이 연극은 따로 주인공이 없는 1인극이다. 손상규는 시몽뿐 아니라 그의 여자친구, 부모,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와 의사 등 총 16인의 인물을 홀로 연기한다.
공연이 열리는 동국대학교 근처에서 만난 그는 "연기를 악기 연주에 비유해본다면 독주도 있고 협주도, 4중주도, 때로 교향곡까지 있는건데 타인과의 화학 작용을 배제하고 독주하는 것이 바로 일인극"이라며 "혼자 하다보니 어려운 것도 있지만 연기 리듬을 홀로 바꾸기도 할 수 있으니 장점도 있다. 관객들도 여러 입장을 공평하게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쉬운 일만은 아니다. 손상규는 100분 동안 A4 용지 36장에 달하는 대사를 읊으며, 의자와 책상 하나만 놓여있는 무대를 홀로 채워야 한다. 그는 "물론 외우는건 어렵지만 우선 내용을 익히고, 대사의 구조를 생각하면서 이 말이 어디로 반사되고, 그 다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생각하면서 하다보니 되더라"고 웃으며 "첫 공연 때는 일단 해내느라 급급했지만 두번째 이후로는 특별히 뭔가 대단한 걸 하지 않고 살아도 되겠다, 특별한 인생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경험을 했다. 가르치려들지 않고 등장인물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 돌아봤다.
그의 말대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심장의 이동 경로를 따라 수많은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초연부터 삼연까지 이르다보니 끊임없는 고민 역시 손상규의 몫이다. 그는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비슷하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예컨대 죽은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 목소리를 다 녹음하는데 어머니 같은 경우는 내 목소리와 안 어울릴 것 같아 오히려 묘사를 최소한으로 하려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에 가장 변한 캐릭터를 꼽아보라는 질문에는 "스물 아홉살 먹은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참 대단하고 일을 잘한다고 묘사되어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가 잘한다, 대단하다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이 됐다. 처음에는 일종의 단단함, 객관성을 가진 인물로 접근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할 일을 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농구와 독서를 즐기던 26살 법대 복학생이 연극 동아리 현수막을 만난 뒤 갑작스레 시작된 연기 인생에서 그는 정말 법대생이 공부하듯이 연기하는 셈이다.
손상규는 "언젠가 정명훈 지휘자가 하시는 구스타프 말러 9번 교향곡을 들으면서는 이런게 빌드업이고, 사람 미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극도 그런 공연처럼 연기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관객을 만나고 질문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기는 결국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고, 내 사유가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얘기를
정확하게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을 뿐"이라며 웃었다. 그의 연기를 보려면 내달 4일까지 서울 장충동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을 찾아가면 된다. 또 다른 남자 배우로는 윤나무가 있고, 김지현, 김신록 등 여성 배우 2명도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이용익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