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없이 전남 광양시에 '어영담 추모비'만 남아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이순신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광양현감 어영담에 대한 관심도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민배우 안성기가 열연한 어영담(魚泳潭)은 임진왜란 당시 광양현감을 지냈으며, 이순신도 믿고 존중할 만큼 뛰어난 해상 지략가였습니다.
↑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안성기 배우가 어영담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사진=광양시청 제공 |
1532년 임진년에 태어난 어영담은 임진왜란 당시 60세 노장으로 수로향도, 중부장, 조방장 등의 역할을 맡아 크고 작은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육지에서 사용하던 전술 형태인 학익진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한산대첩에서는 적군을 유인하는 역을 자처하면서 백전노장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이순신이 조정에 올리는 장계에 '남이 이제까지 보전하게 된 것은 어영담의 힘에 의지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할 만큼 어영담은 물길의 형세는 물론 주둔할 장소까지 소상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이 임진년인 1592년 1월 1일부터 쓴 난중일기에 1월 22일 첫 등장한 어영담은 전장에서 사망한 1594년 4월 9일까지 무려 60회 이상 언급됐습니다.
전쟁 중으로 부득이 기록되지 못한 날들을 고려할 때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자주 언급된 것은 어영담이 이순신과 해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합포, 적진포, 사천, 당항포 등에서 종횡무진 큰 공적을 세운 어영담은 1594년인 갑오년 제2차 당항포 해전을 마지막으로 전염병에 걸려, 그해 4월 9일 숨을 거뒀습니다.
이날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큰비가 왔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고 적으며 훌륭한 나침반이자 조력자를 잃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영담은 1605년인 선조 38년 임진왜란에서 세운 공으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지만 어영담의 묘는 아직 찾을 수 없어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 광양시 진월면 선소마을에 남은 '광양현감 어영담 추모비' / 사진=광양시청 제공 |
다만, 당시 배를 만들었던 선소(船所)이자 전라좌수영 주둔지였던 진월면 선소마을에 '광양 선소터'라는 표지석과 함
김성수 광양시 관광과장은 "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어영담의 숨결이 살아있는 섬진강 망덕포구를 찾아 430년 전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에서 대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정신을 기려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치훈 기자 pressjeong@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