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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해안에서…`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Heather Rasmusse] |
캐서린 오피(61)의 첫 방한은 태평양 횡단을 위한 여행이었다. 2009년 부산항에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을 탔다. 대양을 건너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향하는 10일간의 항해. 매일 일출과 일몰 전후로 4시간씩 사진을 찍었다. 매일 같은 시간 빛이 바다에 스며드는 느린 변화를 관찰하는 구도(求道)와 같은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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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해안에서…`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Heather Rasmusse] |
관람객의 눈에 수천㎞ 떨어진 부산항의 출항 직후와 미국 서부 해안 바다의 표정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하늘과 바다는 가운데 지평선을 경계로 나뉘어지고, 빛과 어둠의 농도만이 다르다. 배는 흔들리고 굉장히 시끄러웠지만, 사진에는 오롯이 '고요'만이 담겼다. 최근 만난 오피는 "해안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메세지를 담고 싶었다. 마치 로스코 채플(미국 텍사스 휴스턴 예배당)에서 작품(현대미술 거장 마크 로스코의 회화)에 둘러싸여 차분한 영감을 받듯이, 고요한 바다를 보라고 권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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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tled #13` [사진 제공 = Catherine Opie] |
UCLA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세계적인 사진작가 오피가 이태원 리만머핀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시적인 전시 제목 '나의 해안에서 당신의 해안으로 그리고 다시 그 곳으로'는 전시장 2층에 걸린 바다 사진 연작의 제목과 같다. 1층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1990년대 지인과 예술가들을 촬영한 '인물(Portraits)' 연작이 걸렸다. 인물과 도시 풍경의 면면을 포착하는 사진 연작으로 잘 알려진 오피는 뉴욕 구겐하임(2019년), 시카고 현대미술관(2018년) 등에서 개인전을 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여 년의 작업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동시에 다른 연작의 연결을 시도한다.
"사람의 몸도 일종의 풍경으로 바라봤습니다. 인체도 하나의 건축물처럼 역사적 맥락이 담겨 있어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시기에 사람의 몸도 세상도 기후도 변하는 와중에 우리가 놓치는 것은, 또 고찰하는 것은 무엇인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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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eeter` [사진 제공 = Catherine Opie] |
1993년 촬영한 인물 연작에는 전신에 타투, 상흔, 피어싱이 있거나, 성소수자(LGBTQ) 정체성을 표현하는 인물이 16세기 한스 홀바인의 초상화처럼 강렬한 원색의 배경 앞에서 피사체가 된다. 젊은 시절의 작가가 사진 속에 사회적 발언을 가감 없이 담아낸 작업이다.
작가는 "모델 상당수가 당시 유행한 에이즈로 사망했다. 지금 미국에서도 수백만 명이 코로나19로 사망하고 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인간은 여전히 무기력하고 취약하다. 심지어 성소수자를 향한 다름에 대한 증오도 여전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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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서린 오피 [사진 제공 = Heather Rasmusse] |
오피는 유년기부터 아동노동 실태를 고발한 사진을 보고 깊이 감명을 받아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대의 인기잡지 '라이프'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서 서민들의 삶이 사진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며 자란 작가는 다큐멘터리와 인물, 풍경 등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사진 작업을 이어갔다.
작가의 특징인 정체성과 장소성의 모호함이 전시장 전체를 통해 구현됐다. 1층의 인물 사진 사이로 눈에 띄는 풍경 사진인 'My Shore'(2022)와 'Our Moon'(2021)은 유일한 신작으로, 1층의 초상과 2
층의 바다 풍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사진이란 해답을 찾는 작업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찰나는 편견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게 만들지만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사진은 정제된 순간을 보여줌으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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