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이 최초로 공개한 제2연평해전 사진들을 갖고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번에 사진들을 입수한, 제1연평해전 참전 경험도 있는 국제부 이동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서오세요.
【 질문1 】
우선 사진들부터 좀 자세히 볼까요.
요즘 쓰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찍었죠.
2002년 6월29일, 당시 어떻게 촬영했나요?
【 답변 】
2000년대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필름을 인화한 사진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해 드리면, 북한의 등산곶 684호가 우리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근처의 369호 등 다른 고속정이 상황 발생 바로 전, 대치하던 북한 경비정 388호를 촬영한 것입니다.
연평해전 며칠 전부터 북한 해군은 계속 도발했습니다.
이 기간에 찍은 사진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진은 9장입니다.
1999년 제1연평해전의 경우에도 캠코더와 필름 카메라로 당시 상황을 남겨서 나중에 승리 기록으로 쓸 수 있었는데요.
비상 상황에 맞춰 공익을 위해 긴박하게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질문2 】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연평해전 사진이나 영상들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인터넷에도 '제2연평해전'이라고 올라온 자료도 보이던데, 그것들은 뭔가요?
【 답변 】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제2연평해전, 혹은 그냥 연평해전이라고 제목이 붙은 사진이나 영상은 모두 제1연평해전에 해당합니다.
【 질문2-1 】
이동훈 기자는 제1연평해전 참전 경험도 있지 않습니까?
【 답변 】
저는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 당시 해군 고속정 승조원으로 참전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해군이 북한에 대승을 거둔 1연평해전 자료만 공개됐고, 2연평해전 당시 자료가 공개된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 질문3 】
당시 군인이었던 분이 제보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2연평해전이 20주년이 됐을 때, 이제서야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답변 】
오히려 연평해전 직후에는 전투 사실을 알리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전투에 승리하고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일도 있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군인도 있었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전역한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몇 년 뒤 뒤늦게 특진을 시켜주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사진들도 자연스럽게 오랜 기간 잠들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김대완 예비역 중사는 다시 한번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밝혔습니다.
▶ 인터뷰 : 김대완 / 예비역 중사
-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2002년 하면 월드컵을 떠올리지만, 그 당시 교전에 참전했던 당사자로서는…. 국민이 나라를 위해 전사하신 분들을 기억 못 하고 있다는 게 약간 아쉽고요."
【 질문4 】
북한 함정이 포를 쏘거나 공격하는 순간이 사진에 담긴 것은 아니죠?
【 답변 】
교전 당시에는 우리 장병들이 총원 전투 배치가 됐기 때문에 공격 순간을 촬영하는 건 불가능했죠.
전투 직전 상황까지 포착됐습니다.
【 질문4-1 】
북한군을 찍은 사진 속에 어떤 모습이 담겼나요?
【 답변 】
사진을 보겠습니다.
개방형 포탑에 북한 군인들이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탱크의 포를 뜯어서 배에 얹어놓은 것입니다.
자동화돼 포탑 안에서 자동으로 사격하는 현대적인 우리 해군과 달리, 군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포탑을 수동으로 조절해서 공격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죠.
특히 우리 쪽을 향해 계속해서 포신을 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차 연평해전을 통해 제가 직접 본 군인들도 왜소해 보였지만, 더 가까이서 본 해군들은 "북한군이 매우 어려 보인다"고 공통으로 말했습니다.
【 질문5 】
연평해전이라고 하면,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 이렇게 두 차례가 있었죠.
직접 참전한 경험자로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 답변 】
제1연평해전은 6.25 휴전 이후 한국과 북한이 군사적으로 충돌한 전투입니다.
우리 군은 당시 한 명의 사망도 없이 북한 군함 두 척을 침몰시키고 북한군 수십 명이 숨지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1999년 6월15일이 제1연평해전인데, 그날을 맞춰서 북한이 날짜를 잡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평해전의 정확히 1년 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으로 가서 6·15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제1연평해전은 어느새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대패했던 북한군은 앙심을 품고 3년 뒤 기습공격으로 도발했지만, 다시 한번 우리 해군에게 격퇴당했습니다.
【 앵커멘트 】
20년 만에 승전 기념식이 열린 것은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볼 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6명의 연평해전 용사를, 그리고 우리 국군 장병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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