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시장 완전정복 ⑨ 게르하르트 리히터 ◆
![]() |
↑ 추상화 앞에 선 게르하르트 리히터 |
그는 붓을 놓기로 발표했음에도 작업을 멈출 순 없었습니다. 직접 구상한 전시장에는 유리 페인트를 종이에 흘려 부어 만든 31점의 추상화 소품 시리즈 'Mood(분위기)'가 걸렸습니다. 놀랍게도 1월 5일부터 11일까지 불과 1주일 만에 모두 완성한 작품입니다.
![]() |
↑ 바이엘러 재단에 전시된 리히터의 신작. [사진 제공 = 바이엘러 재단] |
리히터의 90세 기념 전시는 올 들어 전세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뒤셀도르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고향 드레스덴에서 전시가 열렸습니다. 도쿄 신국립미술관에서는 6월 7일 대규모 회고전이 개막해 열도에 '리히터 신드롬'이 일고 있습니다.
![]() |
↑ 사진회화로 그려진 `촛불` 시리즈. 167억원에 팔렸다. [사진 제공 = 소더비] |
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건 '사진 회화(Photo-Painting)'지만 시장에선 1990년대 추상화(Abstraktes Bild) 시리즈가 유독 인기가 많습니다. 2015년 11월에 소더비 런던에서 1986년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가 4632만달러(600억원)에 팔리며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썼습니다. 경매가 10위권 작품 중 사진회화는 2점에 불과하고 8점이 추상화입니다.
![]() |
↑ 바이엘러 재단 전시에 걸린 신작 |
올해도 5월 10일 크리스티 뉴욕에서 추상화가 3650만달러(473억원), 5월 16일 소더비 뉴욕에서 바다를 그린 풍경화 'Seestuck'이 3020만달러(391억원)에 팔리며 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리히터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촛불을 그린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삼성미술관 리움도 소장한 촛불 시리즈 중 단 하나의 촛불만 그린 1982년작 'Kerze'는 2011년 10월 크리스티 런던에서 167억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 |
↑ 2022년 5월 10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473억원에 팔린 추상화 시리즈. [사진 제공 = 크리스티] |
그는 1932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바로크 시대의 보석 같은 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으로 폐허가 됐습니다. 혹독한 전쟁 속에서 자랐지만 오히려 그 경험은 그의 전생애에 걸친 회화작업을 관통하는 모티브를 제공했습니다. 위르겐 슈라이버가 쓴 리히터 평전 '한 가족의 드라마'는 2차 세계대전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전쟁은 리히터가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운 학교다. 리히터는 현재까지, 이 재료에서 자신의 주제를 길어내고 있다. 지나간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서독으로 이주했습니다. 동독 드레스덴 미술아카데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중심으로 회화를 배운 그가 서독으로 건너온 뒤 접한 미술은 충격적일 만큼 달랐습니다. 뒤셀도르프 미대의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학생들 사이에는 추상표현주의 물결이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가 봉착한 것은 회화가 사라진 시대의 화가의 딜레마와 다름없었습니다. 그 딜레마를 탈출하는 방법으로 회화의 대상을 문제화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 |
↑ 2013년 481억원에 팔린 `밀라노 대성당 광장` [사진 제공 = 소더비] |
추상화에 매진하던 시기인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200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국제적 작가로 떠오릅니다. 이후 시장의 평가는 급격히 높아졌습니다.
슈라이버는 그를 "기교적인 색채를 화려하게 사용하면서도 덧없는 것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관람객들을 고통의 증인으로 세운다"고 평가합니다. 고통의 연대기를 그려온 화가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빛나는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작품을 대량생산하지 않는데다 엄격하게 연혁이 관리되는 '영원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