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_Work(1967)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유영국_Work(1967)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이글이글 강렬한 태양빛이 화면 전체를 집어삼킬 듯 하다. 밝은 빨강, 탁한 빨강, 진한 빨강 등 미묘하게 다른 빛깔들이 면과 면으로 이어져 아른거린다. 그 사이 푸른빛 삼각뿔이 중심을 잡아준다.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1967년 작품 'Work'(162×130㎝)는 석양 풍경을 추상으로 바꾸면서 본질에 바짝 다가갔다.
![유영국_Work(1969)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유영국_Work(1969)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이 그림을 본 작가의 장남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72·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은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며 "온누리가 빨간 가운데 저 푸른빛이 나 혹은 인간의 모습같다"고 말했다.
![유영국_Work(1977). 작가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부석사 여행에서 발견한 사과나무 두 그루를 그린 그림. 일종의 부부 자화상같다.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유영국_Work(1977). 작가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부석사 여행에서 발견한 사과나무 두 그루를 그린 그림. 일종의 부부 자화상같다.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유영국의 작고 20주년 기념 전시 'Colors of Yoo Youngkuk'이 국제갤러리 1~3관에서 8월 21일까지 펼쳐진다. 회화 68점과 드로잉 21점, 작가의 사진 작품은 물론 가족사진 등 자료가 한꺼번에 출품됐다.
전시를 기획한 이용우 홍콩 중문대 문화역사학과 교수는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일생과 색채의 변주에 초점을 맞췄다"며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초록과 군청, 보라, 검정색이 올라오는 최절정기 대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밝혔다.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국제갤러리 2관 설치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국제갤러리 2관 설치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전시장 마지막(3관)에서 만나는 1969년작 'Work'(136×136㎝)는 프리즘같은 삼각형이 주인공처럼 앉아있고 마치 여러 겹 액자로 감싼 듯 면이 분할됐는데 아주 교묘하게 빗겨간 면과 색이 이루는 미적인 조화와 균형에 감탄하게 된다. 얇은 선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절제미가 빛난다.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국제갤러리 3관 설치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국제갤러리 3관 설치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난 작가는 주변의 깊은 산과 바다 등 자연의 심상을 화폭에 담았다.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요소를 엄정하고 계획적으로 사용해 본인만의 추상세계를 구축했다. 일본 유학때 전위적 예술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귀국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배를 몰거나 양조장을 경영하며 틈틈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국제갤러리 3관 설치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국제갤러리 3관 설치전경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김환기 등과 함께 참여한 후 48세 되던 1964년 모든 미술단체 활동을 중단하고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해 서울 신문회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 도록의 표지작인 'Work'(136×194㎝)가 2관에서 마치 작가처럼 선·면 실험이 한창이던 작품들을 응시하듯 걸려 있다. 이 작품 이후 구상적 요소가 사라지고 기하학적 추상이 본격화됐다. 전시된 드로잉에서 산과 바다는 물론 기와 지붕도 연구한 흔적이 발견된다. 단청에서 볼 수 있는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은 물론 전통적인 격자 무늬 등 한국적 소재도 탐구했다.
![추상회화 선구자 유영국 작가 1970년대 모습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img.mbn.co.kr/newmbn/white.PNG) |
↑ 추상회화 선구자 유영국 작가 1970년대 모습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
몬드리안 추상에 영감을 받았던 일본 유학시절 작품 사진은 형체에 집중해 색채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서 색채는 더욱더 풍성해졌다. "예순까지는 기초를 쌓겠다"고 선언했던 작가는 실제로 예순에야 처음 그림을 팔았다. 추상이 낯선 시대 땅에서 묵묵히 외길을 걸었다. 1970년대 후반 심장박동기를 달고 생과 사를 오갔던 작가는 퇴원후 부석사 여행에서 발견한 사과나무 두 그루도
작은 추상으로 남겼다.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부부 자화상으로 과묵한 로맨티스트로서 작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전시장 출입구 안쪽에 색채와 조형언어의 특징을 반영해 오렌지나 남색 페인트를 칠했고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고리처럼 작용한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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