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카 이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 |
참을 수 없는 냄새가 진동하자 청담동에 있는 글래드스톤 서울 갤러리 관계자는 출입문을 열어 환기하기 바빴다.
과학과 예술의 통섭으로 독창적 작품 세계를 펼치는 한국계 미국인 개념미술작가 아니카 이(Anicka Yi·51)는 아시아 첫 개인전을 위해서 인류가 등장하기도 전인 선캄브리아시대(약 46억년 전 지구가 형성된 때부터 약 5억4200만년 이전) 냄새를 과학자들 고증을 거쳐 조류·균류 등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체를 배합해 향기나는 셀룰로스 볼(섬유소 뭉치)재현했다고 한다. 그가 현대차 커미션에 뽑혀 올해 2월까지 약 4개월간 런던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에서 떠다니던 기계 생명체들(aerobes)과 함께 풀었던 냄새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협소한 서울 전시장에서는 그 냄새를 빼기로 결정했다. 대신 유명 프랑스 조향사와 함께 개발한 향수 '바이오그라피' 오브제를 남겼다. 이집트의 남장 여왕 하트셉수트와 일본 적군파 창설자 시게노부 후사코에서 영감을 얻은 향수에 3D프린터로 만든 버섯 모양 오브제를 씌워 역사속 사라진 여성들을 소환한 작품이다. 남성들 위주로 돌아간 역사처럼 시각에 집중됐던 미술계를 평범한 여성들 체취와 박테리아로 전복했던 그의 전력이 떠오른다.
↑ 아니카 이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 |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두살 때 가족 모두 이민가 이번이 네 번째 방한이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고 영국에서 패션 관련 일을 하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서른 넘어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15년 MIT 입주작가로서 다양한 과학자들과 협업한 것이 '폭풍 성장'의 계기가 됐다. 이번 전시도 입구에 실험실 스탠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비이커에는 뉴욕에서 가져온 녹색 조류(藻類·물속에 사는 하등 식물의 한 무리)가 액체 속에서 배양돼 부글거렸다. 전시장 콘크리트 바닥도 이끼빛 카펫으로 덮혔다. 작가는 "해조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질량이 큰 생물체이면서 바이오 연료로도 쓰이는 등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고 했다.
↑ 아니카 이 개인전 지하층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갤러리] |
유명세를 떨친 대형 설치보다는 연작을 새롭게 해석한 신작 소품 위주로 선보였다. 아마존 우림에서 영감을 받은 'Chicken Skin(닭살)'연작은 널직한 실리콘 액자 위에 낚시줄을 심어 소름 돋는 피부를 표현했다. 곤충을 유인하려고 위장하는 화려한 서양난을 인조꽃으로 중앙에 담으니 동·식물은 물론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간 경계도 무너지는 하이브리드(혼종) 개념이 부각되는 작품이다.
비교적 초기인 2009년 시작된 '템푸라 프라이드 플라워'연작은 꽃이나 식물 등 아름다운 자연물을 튀김기로 구워내는 폭력적 과정을 거쳐 생명의 쇠락을 보여준다. 촉각과 미각, 후각 등 감각의 언어를 집중 탐구하던 시절 작품이다. 빨갛고 파란 곤충의 집 형상이 조명처럼 세워진 '네스트'연작은 안쪽에 매달린 디지털 시계가 '카운트 다운' 하듯 기후변화 속 인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전달한다.
↑ 아니카 이 개인전 지상층 전시전경 [사진 제공 = 글래드스톤갤러리] |
코로나19 영향으로 컴퓨터 디지털 이미지와 AI(인공지능)기술 사용이 많아졌지만, 색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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