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의 영역을 관장하는 지하세계 신이 양손을 활짝 펴 반긴다. 헤벌쭉 웃는 모습이 무섭기는 커녕 우습다.
13∼16세기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번성했던 아스테카 문명의 '믹틀란테쿠틀리' 조각 머리에 난 구멍들은 검은 곱슬머리 가발을 부착한 흔적이다. 가슴 아래 간과 쓸개가 달려 눈길을 끈다. 아스테카인들은 인간이 지닌 세 영혼 중 하나가 머리, 심장과 함께 간에 있다고 믿었다. 거인의 뼈를 가져와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화처럼 생명의 탄생과도 연결되는 죽음의 신이었다. 지난 1987년 멕시코시티 테노츠티틀란 신성구역 '독수리의 집' 내부에서 수백개 조각으로 발견된 이 유물은 발굴과 복원에만 1년 5개월 가량 걸렸다.
↑ 아스테카-멕시코 관람 관계자들.
마야 잉카와 함께 중남미 3대 문명으로 꼽히는 아스테카의 예술적 정수를 담은 대표작들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전을 빛내기 위해서다. 한국-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이 전시를 위해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과 템플마요르박물관, 독일 린덴박물관 등 해외 박물관 11곳의 소장품 208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스테카 문명의 중심지였던 테노츠티틀란은 15~16세기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1521년 스페인 침략으로 무너질 때까지 독자적인 왕국을 일궜다.
↑ 아스테카 특별전에서 멕시코 관계자가 `목테수마 2세의 상자`를 살펴보고 있다. [이한나 기자]
전시장 입구에서 아스테카의 대표 걸작인 '태양의 돌'을 재현한 3차원(3D)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무게 25t의 대형 석조물이라 한국에는 못왔지만 태양을 지키기 위한 희생제 등 세계관을 7분 영상으로 쏘아 강렬하다. 동물과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아스테카인들의 사고가 엿보인다. 주식인 옥수수와 관련된 신은 몸이 말려올라간 바람의 신, 대지의 여신 등 농경문화와 연관된 조각상들은 물론 인신공양이나 제례용 물품도 가득하다. 특히 춤과 오락을 관장하는 신이 최근 발굴돼 함께 전시됐다.
↑ 국립중앙박물관 아스테카 특별전에 출품된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모습. [이한나 기자]
신성구역과 피라미드 신전의 모형을 AR(증강현실)과 디지털 맵핑 영상으로 보고 원주민 그림문자가 담긴 '멘도사 고문서'도 접하니 600여 년전 낯선 문명이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매운 고추 연기를 씌워 자식을 훈육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아스테카는 전사 양성을 위해 의무교육을 시행하고 공을 세우면 신분상승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아스테카 문명은 인신공양 등 왜곡된 이미지가 강력했다"며 "먼 거리 도시국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다른 생태환경의 물자와 문화를 공유하는 수단인 하는 공물징수 체계 등 참신한 요소도 많다"고 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아스테카 특별전에 나온 지하세계의신 믹틀란테쿠틀리. [이한나 기자]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09년 잉카, 2012년 마야에 이어 아스테카 전시를 통해 세계 주요 문명을 소개하고 있다"며 "정복자들의 왜곡된 역사관에서 벗어나 새롭게 바라보고 본모습을 이해하는 계
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독일 슈튜트가르트 린넨박물관의 이네스 데 카스트로 관장은 "유물에 영상을 쏘는 등 관람객 접근성을 높이는 전시 방식이 멋지다"고 평했다.
전시는 8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달부터 수요일 9시까지 야간개장에 맞춰 큐레이터와의 대화도 재개된다.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