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뒤 잡아먹히지 않으려 초속 88cm로 내빼는 수컷 거미

왕관응달거미 수컷의 '사출'…연구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암컷이 짝짓기 중 수컷의 사출 행동을 자질 판단 잣대로 이용했을수도"

↑ 짝짓기하는 왕관응달거미 / 사진=Shichang Zhang

수컷 거미가 짝짓기를 끝내자마자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최대 초속 88cm로 도망가는 과정이 초고속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습니다.

생물학 저널 발행사인 '셀 프레스'(Cell Press)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대학 생명과학 부교수 장시창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왕관응달거미'(Philoponella prominens)의 성 선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수컷의 사출을 파악하고 분석한 결과를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왕관응달거미는 여러개의 개별 거미줄로 구성된 거미줄 복합체에 최대 300마리가 군집을 이뤄 생활하는 무리형 거미입니다.

연구팀은 왕관응달거미의 짝짓기가 항상 수컷이 일반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튀어오르는 방식으로 끝나는 것의 실마리가 해당 영상에 담겨있다며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앞다리 관절을 이용해 암컷의 몸에서 번개처럼 떨어져 나가는 '사출'(射出·catapult) 과정의 목적은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사출을 통해 도망가지 못한 수컷은 암컷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고 먹이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총 15건 중 152건이 수컷의 사출로 끝났으며, 사출할 시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생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사출하지 못한 3건의 수컷은 모두 암컷에게 잡아먹혔습니다.

이런 결과는 수컷의 사출이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는 데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 사출로 도망가는 수컷 거미 / 사진=Shichang Zhang

수컷의 사출 시 평균 가속도는 200ｍ/s²입니다. ｍ/s²는 1초에 1ｍ 가속을 나타내는 단위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사출 과정에서 초당 평균 175회 회전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암컷 쪽으로 앞다리의 정강뼈 중족골 관절을 구부렸다가 일순간 펴면서 사출 속도를 내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습니다.

연구팀은 "암컷은 짝짓기 중 수컷의 사출 행동을 수컷의 자질을 판단하는 잣대로 이용했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수컷이 사출하지 못하면 죽이고, 여러 차례 성공한다면 정자를 받아들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사출 능력이 수컷의 짝짓기 성공률에 미치는 역할에 관한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거미의 짝짓기 자세나 방법은 종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종은 양쪽 수염기관을 모두 사용하고, 한쪽만 사용하는 종도 있습니다. 극히 짧은 시간에 정액 주입이 끝나는 좋은 한쪽 수염기관만을 사용하며, 정액 주입 시간이 긴 종은 좌우로 번갈아가며 정액을 주입합니다. 보통 암수 크기가 비슷한 종은 짝짓기 시간이 긴 편이며, 크기 차이가 현저한 종은 짝짓기 시간이 짧은 편입니다.

짝짓기의 중요한 변수는 암컷입니다. 수컷은 성체가 되면 먹이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생식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심지어 다른 종의 거미에게도 일단 접근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암컷은 같은 종 수컷조차도 잡아먹는 일이 흔합니다. 이를 동종포식이라고 부르는데, 무당거미와 같은 경우에는 잡아먹히지 않으려 자신의 다리 한 쪽을 내놓기도 합니다.

과부거미 또한 짝짓기가 끝난 후 수컷을 잡아먹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해우이가 끝난 뒤 잡아먹힌 수컷의 비율은 57%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수컷 거미들이 짝짓기가 끝난 이후 대부분이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가운데, 왕관응달거미 수컷의 '사출' 능력은 생명을 지키는 그들만의 행위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갖습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