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 |
'시간이 없다.'
거대한 시계를 배경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하원의원 13명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회화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시계는 에드 루샤의 1989년 회화 '11시 5분'이다. 'Politik Ⅱ(정치2)'란 제목을 단 2020년 작품은 현대 사진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67)가 수개월간 독일의회 지명투표(roll call vote)를 따라다니며 이들을 관찰한 시간의 결과물이다. 코로나19로 빠른 판단이 절실했던 순간 정치 논의의 복잡함과 지루함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 |
2015년작 'Ruckblick(회상)'도 메르켈을 위시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등 독일 전직 총리들이 바넷 뉴먼의 거대하고 붉은 평면 작품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을 보고 있는 뒷모습이 연출된 사진 작품이다. 슈미트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넓은 빨간색 화면에 끼어든다. 독일 총리들을 따로 찍어 합성했다는데 너무 자연스럽다.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모습에서 강한 울림이 나온다.
![F1 피트 스톱 I F1 Boxenstopp I, (2007)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F1 피트 스톱 I F1 Boxenstopp I, (2007)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 |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 거스키의 국내 첫 개인전 'Andreas Gursky'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1일 개막했다. 그는 기후변화와 물질문명 등 현대사회와 인류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초대형 이미지로 전달한다. 이번에는 1984년 초기작부터 올해 신작까지 40점을 오는 8월 14일까지 선보인다.
40년간 사진 250점이라면 작품당 공력이 상당히 많이 투입된 셈이다. 방대한 사전 리서치는 기본이다. 게다가 한번의 카메라 촬영으로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완벽한 수평 구조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해 편집하고 색을 조정하는 식의 이미지 조작도 필수다. 현대 소비사회의 단면을 그린 '99센트'(1999)나 '아마존'(2016)도 산더미같이 물건이 쌓여있는 각 선반을 따로 찍어 합성하며 원근법을 없애니 주제의식이 부각된다. F1경기 시작전 두 팀이 한창 차를 정비중인 순간을 포착한 'F1피트스톱'(2007)도 두 폭의 사진을 강렬한 색채 대비 속에서 극적으로 표현했다. 2007년 북한 아리랑축전을 찍은 '평양'연작도 근경, 중경, 원경을 분할해 찍어 합친 것이다.
![크루즈 Kreuzfahrt, (2020)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크루즈 Kreuzfahrt, (2020)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 |
추상회화같은 사진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미술사조도 적극 수렴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Ⅲ'(2009)는 잭슨 폴록의 액션추상, 반복되는 그리드 형태의 '크루즈'(2020)는 솔 르윗의 미니멀리즘, 튤립밭을 헬리콥터에서 찍은 '무제ⅩⅠⅩ'(2015)는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회화같은 거대한 작품 코앞에서 찬찬히 살피면 전혀 뜻밖의 세부를 포착하고 다층적 진실을 드러낸다. 최근엔 '방콕Ⅰ'(2011)과 '라인강Ⅲ'(2018) 등 환경문제나 '돼지Ⅰ'(2020)처럼 윤리적 축산 문제도 다루고 있다.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 |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2점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은 라인강변 얼음 위에 모인 인파를 포착했는데,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겔의 회화 '눈속의 사냥꾼들'을 연상시키지만 사람들 간격이 코로나 거리두기로 일정함을 보여준다. '스트레이프'(2022)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 코스를 깊이감 없는 평면으로 표현해 추상성을 강화했다. 활강로에는 스키선수가 없지만 주변 모니터에는 나타나 직접적인 경험과 가상공간 속 복제된 경험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img.mbn.co.kr/newmbn/white.PNG) |
↑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사진 제공 = 스푸르스 마거스] |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거스키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독일 현대 사진의 미학을 확립한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로부터 '유형학적 사진(그림 형태를 가진 개념사진)'을 배웠다.
1993년작 ' 파리, 몽파르나스'의 아파트처럼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장소를 추상화해 거대한 사회 속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뉴욕 현대미술관(2001)과 퐁피두센터(2002),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2012)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도 참여했다.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라인강Ⅱ'(1999)가 433만 달러(약 52억원)에 낙찰돼 사진작품 최고가를 기록했다.
![AndreasGursky-review 2015 [사진 제공 = 안드레아스 거스키 홈페이지]](//img.mbn.co.kr/newmbn/white.PNG) |
↑ AndreasGursky-review 2015 [사진 제공 = 안드레아스 거스키 홈페이지] |
우혜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관장은 "거스키 작품은 그 거대함에 놀라고 또 세부에 나타난 인간과 현대 사회 모습에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숭고함을 준다"며 "그가 다양한 사진적 실험과 주제를 변주하면서 사진 예술의 영역을 넓혔음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ndreasGursky-politik ii (2020) [사진 제공 = 안드레아스 거스키 홈페이지]](//img.mbn.co.kr/newmbn/white.PNG) |
↑ AndreasGursky-politik ii (2020) [사진 제공 = 안드레아스 거스키 홈페이지] |
이 전시를 위해 거스키는 2018년이후 3번이나 한국을 찾을 정도로 공들였다. 수차례 시도 끝에 평양 연작 7편을 완성했지만 아직 한국을 다룬 작업은 안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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