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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로 호명되는 있는 이수지 작가. [사진 제공 = 비룡소] |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기쁜 소식의 모든 공을, 이수지 작가(48)는 중학생 두 자녀에게 돌렸다. 전날 그는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수상자로 깜짝 호명됐다. 안데르센상은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 등 세계 문화예술계가 후원하는 최고 권위 아동문학상이다.
"6인 최종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막상 받으니 자녀들이 그 밤중에 펄쩍 뛰면서 더 기뻐해줬어요. (웃음) 큰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가 1956년부터 주관해 온 안데르센상은 토베 얀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등 최고의 작가들이 거머쥐었던 상이다. 2년마다 주인공이 발표되는 격년 시상제인 이 상에서 한국 작가 이름이 호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심사에선 이탈리아 알레마냐 등 굵직한 후보도 다수였지만 이수지 작가는 이들을 '제치고' 최고 영예의 주인공인 됐다.
"IBBY에서 전혀 언질이 없어 기대를 안 했어요. 그러다 생중계 화면에 제 이름이 떠서 너무 놀랐어요.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고 약간의 흥분 때문에 늦게 잠들었네요. (웃음)"
세계 아동문학계의 '신데렐라'는 하룻밤 마법처럼 탄생하지 않았다.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은 20년을 훌쩍 넘었다.
1996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2001년 '그림책 외길'로 들어섰다. 왜 그림책이었을까. 일반 서적이나 회화와 다른 그림책의 신비로운 물성이 꿈결같은 백지 앞으로 그를 인도했다. 그에게 그림책은 "단 두 장의 그림만으로도 이야기가 생성되는 장르"였다.
"그림이 한 장만 있으면 회화이지만 한 장이 더 있으면 그 '사이'에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잖아요. '사이'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란 특성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여러 장 모아 책으로 꿰맨다는 점, 또 신비의 책이 어린이를 향한다는 점도 바로 그림책의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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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 책을 가로로 눕혀 읽어야 하는 책인데, 중앙 제본선 기준으로 상단에는 실물이, 하단에는 검은 그림자 실루엣을 담았다. 물건을 옮기며 그림자 놀이를 하는 아이의 눈에 어느덧 환상이 덧입혀지고, 점차 그림자 세계는 진짜 같은 세계로 바뀐다. 동심 속에선 꿈이 곧 현실 아니었던가.
"매 권마다 애착이 깊어요. 최근 완성해서 그런지 '여름이 온다'에도 특히 눈길이 가고요. 어린이들이 읽으니 단순해 보여도 작가는 상당한 고민을 담는데, 그 모든 고민을 응축한 책이었습니다. 형식(形式)에 관한 실험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에요. 그림책만이 가진 고유 특성을 이용해 책을 만드는 게 즐거워요."
손에서 펜과 붓 놓을 새 없는 엄마에게 두 자녀는 10여년간 든든한 '멘토'였다. 첫째 아들 한산(16), 둘째 딸 한바다(14)다. 아이들 흔적을 쫓으면, 새 영감이 허공에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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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서점 책장마다 빼곡히 그림책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그러나 1974년생 이수지 작가의 유년 시절에 그림책은 귀했다. 세계명작동화가 읽을꺼리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어린 그의 책장에는 어머니가 꽂아둔 한 권의 그림책이 있었다. 플로렌스 하이드의 '줄어드는 아이 트리혼'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때인 것 같아요. 제 책보다 엄마 책이었던 것 같은데 내용도 희한하고 그림도 희한하고 아무튼 전형적인 그림책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걸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다른 세계'를 엿본 것만 같았어요. 기묘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읽으며 이야기의 세계를 동경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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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작가는 "그림책은 어린이를 향해 열린 종합예술"이라며 "앞으로도 실험적인 형식을 접목한 즐거운 그림책을 선보일 것"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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