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빛나는 그림 앞에 서니 왠지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싶어진다.
180평(가로 18m×세로 32m) 규모의 거대한 전시실 안에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며 서 있는 조각 작품 'Untitled(Beams)·무제(빛줄기)’(365.8×198.1×2.5㎝)는 고대 신전의 상징물을 연상시킨다. 일정 간격을 두고 설치된 두개의 스텐리스 스틸 판은 빛나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시시각각 빛깔이 미묘하게 변한다. 이 조각을 천천히 돌면서 그 변화를 관찰하는 과정이 사뭇 경건하다.
↑ 메리 코스의 2021년작 `무제(전기 빛)`, 아르곤, 플렉시글라스, 고주파 발전기, 라이트 튜브, 모노필라멘트, 199.7 x 61.6 x 13.3cm, [사진 제공 = 작가, 케인 그리핀, 페이스 갤러리]
색으로 빛을 담은 미술을 60년 동안 탐구해온 미국 화가 메리 코스(77)의 국내 첫 개인전이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0일까지 열린다. 평생 인간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작업에 매진해 온 그의 대표작이 1960년대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총 34점 모였다. 널직하고 세련된 전시공간에서 그의 진면목이 제대로 드러난다.
↑ 메리 코스의 2003년 작품 `무제(내면의 흰 띠들)`, 캔버스에 유리 마이크로스피어가 혼합된 아크릴릭, 243.8 x 609.6 cm [사진 제공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사계절 태양빛이 가득찬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작가는 캔버스부터 유리, 라이트박스, 점토, 아크릴 조각 등 다양한 재료로 양자물리학까지 공부해 가면서 빛을 품는 예술을 실험해 왔다. 작가는 1968년경 운전중 고속도로 표지판과 차선에 사용되는 산업재료인 유리 마이크로스피어를 발견하고 아크릴 물감에 섞기 시작했다. 관람객이 보는 위치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색과 질감은 빛의 성질을 고스란히 품었다. 작가는 "예술은 벽에 걸려있는 작품이 아니라 관람자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 메리 코스의 작품 `무제(검은흙)` 1978_2021, 도기 타일, 228.6 x 56.5 x 2.5cm, [사진 제공 = 작가, 케인 그리핀, 페이스 갤러리]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진행된 '빛과 공간 미술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제임스 터렐 등 동료 남자 화가들과 달리 별 주목을 못받았다. 첫 아이 출산이후 캘리포니아 외곽 산악지대로 이주한 것을 계기로 외부와 단절하고 독자적 작품 세계를 일궜다. 이전까지 흰색 빛 연작에 집중했다면 땅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광택나는 '검은 흙 시리즈'를 통해 빛과 어둠이 통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60대중반이던 지난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하고 70대중반인 2018년경 뉴욕 휘트니미술관 개인전을 계기로 뒤늦게 주목받았다.
↑ 미국 캘리포니아 토팡가 작업실에 있는 매리 코스 작가 모습. [사진 제공 = 조아요 칸지아니. 로스앤젤레스 케인 그리핀]
작품은 형태적으로 서구 미니멀리즘 사조를 떠올리게 하지만 고단한 붓질의 흔적이 담긴 그림 표면이 우리나라 단색화와도 통해서 친숙한 느낌이다. 다만 좀더 기하학적인 구조에 집중하고 신대륙의 스케일을 펼쳐보이니 종교적이면서 신비로운 심상도 키워준다.
전시장 마지막 방에 작가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도 흥미롭다. 과학실습실 같은 공간에서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는, 젊은 금발 미녀의 모습에서 말년에 재평가받는 여성 작가의 묻힌 세월이 도드라져 보인다. 현장방문도 가능하나 사전예약하는게 안전하다. 전시는 20일까지.
[이한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