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리기는 했는데 열리지는 않았다."
미국 CNN이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시상식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비벌리 힐스 호텔에서 열렸지만 행사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시상식을 화려하게 꾸미는 배우들이 없었고, 그들이 입장하는 레드카펫도 없었다. 중계하는 방송사가 없어 가정에서 TV로 볼 수도 없었다. 모든 결과는 골든글로브 공식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문자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수상자의 기쁨이 담긴 소감도, 그들을 향한 박수갈채도 없는 기묘한 시상식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미국 양대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며 권위를 가졌던 골든글로브는 올해 시작부터 끝까지 초라했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행사 축소의 이유로 코로나19의 확산을 꼽았지만, 내막에는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HFPA에 대한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골든글로브는 지난해 2월 HFPA의 모든 구성원이 백인으로만 이뤄진 사실이 현지에서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매년 55개국 약 90여명으로 구성된 HFPA 회원들이 직접 투표로 후보와 수상작을 결정해온 점을 강점으로 내세워온 만큼 특정 인종에 치우친 회원 구성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사실은 작년 시상식에서 감독, 배우 등 흑인이 참여한 작품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점이 문제로 제기된 이후 알려져 큰 파문으로 이어졌다. 한국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미국 작품임에도 한국어 대사가 절반 이상이라는 이유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점도 인종차별 논란을 극대화했다.
이에 1993년부터 시상식을 생중계해온 NBC는 지난해 5월 HFPA 회원 구성의 다양성 부족 등을 이유로 올해 시상식 생중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톰 크루즈는 지금까지 수상한 골든 글로브 트로피 3개를 반납하며 거부 운동에 불을 지폈다. 스칼렛 요한슨, 마크 러팔로 등 유명 배우들도 HFPA 비판에 동참했다.
뒤늦게 HFPA가 개혁안을 통해 신규 회원 충원을 통한 다양성 확보 계획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워너브라더스, HBO 등 헐리우드 제작사를 비롯해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올해 골든글로브에 공식 출품하지 않았다. 후보 선정은 출품 여부와 관계 없이 이뤄졌다.
이를 의식한 듯 올해는 인종과 성별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최종 수상자를 선정했다. 미국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이 영화에서 3만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리아 역을 차지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인 레이철 지글러는 마리옹 꼬띠아르, 제니퍼 로렌스, 엠마 스톤, 알란 헤임 등 유명 배우들을 제치고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니타 역의 아리아나 데보스도 커스틴 던스트, 언자누 엘리
1987년 뉴욕을 배경으로 성소수자의 삶을 그린 드라마 '포즈'의 Mj 로드리게즈는 TV시리즈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트랜스젠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트로피의 영예를 안았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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