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중봉 성파(性坡)스님은 평생을 용맹정진한 수좌이자 한국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예술가다.
성파스님은 이날 종정으로 추대된 뒤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고불식에서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두해 두고 말로 많이 하는 것보다 말과 행을 같이 하는 수행 중심으로 앞으로도 소임을 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님은 또 코로나를 염두에 둔 듯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항상 동체대비 사상으로 호국불교의 역할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영축총림 통도사 최고 어른인 스님은 최근 동안거 결제 법어에서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 수행할 것"을 명했다. 스님은 "목숨을 아끼지 말고 조사의 공안을 참구하되 내일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면서 "사람 몸 받았을 때 일대사를 마쳐야 한다"면서 정진을 독려했다.
스님은 예술가적 행보로도 이름이 높다. 통도사 내 암자인 서운암(瑞雲庵)에 머물며 천연 염색, 옻칠, 한지공예 등 불교 미술 영역에서 수준높은 활약을 펼쳐왔다.
스님은 100m가까이 되는 한지를 직접 만들고 그위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완성한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높아 '성파체'라 불린다. 8만 대장경을 도자기판으로 굽기도 했다.
옻칠 장인으로도 이름이 높다. 옻칠로 사찰 서까래와 기둥을 꾸미기도 하고, 나전과 결합시켜 작은 운동장 만한 옻칠화도 선보였다. 옻칠로 익살과 멋이 담긴 서민들의 모습을 그린 '옻칠민화'는 전시때마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올 4월에는 통도사 연못 속에 옻칠 기법으로 재현한 반구대 암각화를 실물크기로(4m30cm X 7m86cm) 수중 전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행자로서 예술 분야에 족적을 남긴 것에 대해 스님은 "과거 전통 사찰은 건축, 미술, 공예의 산실이었다"며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은 사찰의 의무"라고 말해왔다.
지난 11월 초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통도사를 방문해 성파 대종사를 찾아 담소를 나누고 서운암과 장경각을 둘러본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스님은 홍 전 관장과 이 부회장에게 직접 염색한 명주 목도리를 선물하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일행이 통도사를 방문한 것이 미술에 관심이 많은 홍 전 관장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조계종 종정은 종단의 최고 어른이다. 조계종단 헌법인 종헌은 "종정은 본종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실무를 총괄하는 총무원장이 종무행정을 대표한다면 종정은 종단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한다.
종정은 종헌·종법에 따라 소속 승려에 대한 포상과 징계의 사면 및 경감, 복권 권한을 행사하고 원로회의 제청을 받아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종정은 수행자들에게 동·하안거 결제, 해제 법어를 내려 가르침을 전하고, 출가수행자에게 계(戒)를 전하는 전계대화상 위촉권도 가진다.
종정은 승려가 된 햇수인 승랍 45년 이상, 세속 나이로 70세 이상, 수행 계급을 뜻하는 법계가 대종사 이상이어야 한다. 임기는 5년이며 한 차례 중임할 수 있다.
이번 종정 추대회의에는 새 종정 후보로는 성파스님과 함께 공주 학림사 오등
현 종정인 진제 대종사는 지난 2011년 13대 종정에 취임해 한 차례 연임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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