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사 김정희 '세한도'.<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
최근 전남도립미술관에서 20세기 한국 대표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1903~1981) 서화 '묵죽(墨竹)'을 보고 그의 필력에 새삼 놀랐다. 화폭 왼쪽에 '내가 한때 재미삼아 그린 작품인데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이다. 이 그림을 대하고 보니 서글프게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무신년(1968년) 중추절에. 소전'이라는 한문(漢文)이 씌여 있다. 65세 소전은 왜 많은 사람들이 들떠있는 추석날에 회한에 젖었을까.
↑ 소전 손재형 '묵죽'.<사진제공=전남도립미술관> |
그가 소장했던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국보)' 역시 선거 자금 때문에 팔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권력욕에 가산을 탕진한 사람으로만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남도립미술관 전시 '소전 손재형'은 정치에 가려진 서화가의 진면목을 재조명해준다. 전시장에 펼친 서예와 문인화 작품 40여점의 예술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한국 서예 발전에 공헌한 소전의 삶과 철학을 되짚어 보게 한다. 그는 1945년 8·15 광복 직후 과거 일제강점기 사용하던 서도(書道) 대신 서예(書藝)를 쓰자고 주창했다. 예로부터 선비가 갖춰야 할 여섯가지 교양이던 육예(六藝) 중 서(書·쓰기)와 예(禮·예의범절)에서 따왔다.
↑ 소전 손재형 |
특히 기존 서예계에서 관심이 없었던 한글 서예의 가능성을 열었다. 1956년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기리고자 진도 울돌목에 세운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문 탁본이 한글과 한자 혼용 서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소전 손재형 '벽파진 충무공비 탁본'.<사진제공=전남도립미술관> |
소전은 서예 뿐만 아니라 격조 높은 문인화를 많이 남겼다. 매화, 대나무, 난초, 국화 등 사군자와 괴석, 소나무, 초충도, 금강산과 다도해를 그린 수묵 산수화 등 수준급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 소전 손재형 '초충도'.<사진제공=전남도립미술관 |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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